[Opinion] 나도 떠나보면 너를 알게 될까? [도서]

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 거야
글 입력 2018.11.21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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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아무리 재미있게 본 드라마, 영화라도 두 번 보지 않는다는 규칙이 있다. 왠지 모르게 처음보다 감흥이 덜하기도 하고 처음 느낀 감정을 끝까지 간직하고 싶기 때문이다. 책 또한 이미 한 번 본 책을 또다시 보기보단 아직 읽지 않은 새로운 책을 꺼내 드는 편이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해 같은 책을 두 번 보는 일은 거의 없다. 책을 사는 일은 더욱 드물다. 내 것을 가지고 싶은 소유욕으로 이삿짐을 늘리는 것보다 여러 손을 거쳐간 손때 탄 도서관 책을 대출하는 편이 여러모로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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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판 <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 거야>



그런 내게 <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 거야>라는 책은 항상 예외이다.


고등학교 2학년, 도서관에서 발견한 생선 그림 하나와 이렇게 오랫동안 인연을 유지할 줄은 그 책을 집어 든 순간조차 알지 못했다. 그때를 기점으로 스무 살, 스물한 살, 그렇게 일 년 단위마다 책을 빌렸다. 같은 책을 매년 읽는 것도 모자라 기어코 책을 사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그동안에 재발행 된 표지는 생선 그림을 지워버렸다. 내가 이 책을 사랑하는 이유에는 단순한 생선 그림 하나도 몫을 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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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 전 <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 거야>



그러다 우연히 들린 인사동의 한 중고서점에서 개정 전의 생선 그림을 발견한 순간, 속으로 유레카를 외치며 집어 들었다. 정말 소장하고 싶은 책은 사는 편이 좋다는 생각을 심어준 책이자 그렇게 산 유일한 책이 바로 <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 거야>이다.

 



생선의 여행



내가 이 생선 표지를 유난히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작가의 별명이 생선(Fish)이기 때문이다. 그는 생선(Fish)이라 불리길 원했다. 눈꺼풀이 없어 눈을 감을 수 없는 생선처럼 어떤 일이 있어도 눈을 감지 않겠다는 의지의 반영이었다.


생선(그의 바람대로 그를 생선이라 표기하겠다)은 방송국 작가에서 한순간 백수가 되어버린 서른에 미국을 횡단하겠다며 무작정 떠나왔다. 그는 방송국 작가이기 이전에 대중음악가로 ‘델리 스파이스’와 같은 뮤지션을 매니지먼트 하기도 하고 '항상 엔진을 켜 둘께' 등을 작사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여행기는 관광이나 맛집이 아닌 분위기와 그에 맞는 음악 위주로 흘러간다.

그의 이야기는 직접적이지 않다. 샌프란시스코가 어떻고, 뉴욕이 어떻고, 어디서 뭘 먹었더니 얼마가 나왔는지, 어디서 무얼 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 보다 그가 그 순간 느낀 감정과 대기를 감성적으로 전달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여행 에세이의 핵심과도 같은 관광명소로 가는 안내지도, 맛집 지도는 없고 그가 찍은 엉성한 사진으로 각 도시만의 분위기를 전달한다. 그 사진들은 한눈에 도시를 대표할 만큼 잘 찍은 것은 아니지만 그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포착하는데 중점을 두어 더할 나위 없이 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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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좋아하는 이유가 단지 생선 그림이나 여행 경험담을 늘어놓기 때문은 아니다. 같은 책을 주기적으로 펼치게 하는 힘은 생선의 찌질한 모습이 8할의 몫을 차지한다. 기분이 우울해서 입을 다물고 있다가 장애인으로 오해받고 숙박료를 할인받거나, 바람이 부는 방향에 맞춰 소변을 본다거나 하는 일들은 아무리 그래도 너무 솔직한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러나 아주 작고 사소한 것들로 여행을 채워 나가는 그의 방식은 유명한 박물관이나 핫플레이스에 가는 것만이 여행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마치 정오쯤 일어나 수면바지 차림으로 슈퍼에 들르는 것처럼 한국과 별다를 것 없는 일들이 그곳 또한 어떤 이들에게는 일상 터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래도 가끔은 그가 겪는 일들이 한국의 일상보다도 더 지독해 보이기도 한다. 이방인이기 때문에 난감한 일이 생기고 어떻게든 해결하고, 누군가를 만나고 다시 헤어지는 것의 반복이다. 떠나온 곳에서 온 연락을 기다리다가 전 여자친구의 이메일을 보기도 하고, 돈을 주면 섹스해주겠다는 여자의 말에 흔들렸다가도 자존심을 찾는 그의 궁상맞고 처량한 모습이 솔직하다. 이 모든 것이 '현실을 뒤로 한 채 여행을 떠난 주인공의 운명적 스토리' 같은 진부함이 아니라서 더 매력적이다.

누군가는 무모하다고 대책 없다고 얘기했지만 그의 여행은 그렇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깃발을 흔들며 주어진 쇼핑시간이 끝났다는 가이드의 외침에 따라 버스에 타는, 그런 집단에 소속되지 않았기 때문에 겪을 수 있던 일들이었다. 드넓은 사막 한가운데서 차가 망가지기도 하고 드라이브를 나왔다가 숙소로 가는 길을 잃어 울기도 하고. 수많은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그는 이 기억들을 되새기며 살아가기로 다짐한다. 여행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은 '경험'이고 꿈같던 여행이 끝난 뒤 집에 돌아왔을 때에는 이 기억들을 곱씹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너무 되감아 테이프가 너덜거릴 때까지.



"다른 사람들은 나보다 높이 올라가고 있는 것 같아."
 


"하지만 사람이 살아가면서 꼭 위로 높아지는 것만이 정답은 아닌 것 같아. 옆으로 넓어질 수도 있는 거잖아. 마치 바다처럼. 넌 지금 이 여행을 통해서 옆으로 넓어지고 있는 거야. 많은 경험을 하고, 새로운 것을 보고, 그리고 혼자서 시간을 보내니까. 너무 걱정 마. 내가 여기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다른 사람들이 너보다 높아졌다면, 넌 그들보다 더 넓어지고 있으니까."



여행을 떠나려 준비하는 것도, 떠나서 일정에 맞춰 움직이는 것 모두 견딜만하지만 여행 마지막 날에 집으로 돌아가는 기분은 참을 수없이 묘하다. 마찬가지로 생선도 여행을 하다 문득 현실로 돌아갈 시간을 걱정한다. 적은 나이도 아닌데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건 아닌지 지금이라도 여행을 마무리하고 돌아가야 하는지. 그런 고민에 빠진 작가에게 건네진 위로의 말은 바다를 건너 나에게로 왔다.


아직 혼자 여행하는 것이 두려운 내가 생선처럼 무작정 떠날 수 있을까? 그러지 않을 자신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대리만족처럼 이 책을 몇 번이고 들여다보고 있는지 모른다. 올해도 그렇게 책을 덮으며 어디로든 떠나보자 다짐한다. 조금 더 넓어지고 싶은 나도 떠나보면 너를 알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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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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