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요가 매트만큼의, 딱 그만큼의 세계 - 2018 서로단막극장 ‘소꿉놀이’

글 입력 2018.11.16 23:44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포스터.jpg
 
 

첫 작품이었던 <말없이>에 이어 지난 금요일 저녁, 서촌공간 서로에서 열린 ‘2018 서로 단막극장- 우리서로각자서로’의 두번째 작품인 <소꿉놀이>를 감상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일반적인 서사적 연극이 아닌, ‘응용연극’의 카테고리 안에 속한다는 것이다. 아직까지 국내에서는 꽤나 생소한 개념인 응용연극은 ‘시민 연극’, ‘실용 연극’이라는 명칭으로도 일컬어진다. 이는 극작가의 창작을 통해 만들어진 극본과, 극본을 그대로 이행하는 ‘수행자’로서의 배우로 대표되는 기존의 서사적 연극 양식의 개념과는 그 성격이 매우 다르다. 응용 연극에 참여하는 이들은 창작과 연기까지의 전 과정을 공동으로 수행해 나간다. 응용 연극은 곧 ‘연극’이라는 예술을 매개로 개인 혹은 사회 변화를 이룬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모든 과정을 통칭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작품 또한 ‘말없이’와 마찬가지로 한 시간 여 정도의 러닝타임동안 진행되었으며, 극은 자신의 실명을 극 중 이름에 그대로 사용한 3명의 등장인물이 진행해 나가는 3인극 형식으로 전개되었다.



꾸미기_ttKakaoTalk_20181116_231255552.jpg
 



‘요가 매트만큼’의 세계에서



‘서로 단막 극장’의 첫 작품이었던 <말없이>에서처럼, 극은 뚜렷한 표지가 없이 관객 입장이 채 끝나지 않은 시간서부터 세 주인공이 등장해 계속해서 요가를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요가를 계속 하던 세 사람의 30대 여성은 이윽고 자신이 요가를 하는 이유를 각각 말한다. 공통적으로 그들에게 하나의 ‘세계’로 표현되는 ‘요가매트’ 위에서 그들은 몰입한다. 그리고 곧 서로의 요가매트를 합친 후,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요가동작을 계속해 나간다. 그렇게 세 개의 요가매트, 아니 세 개의 서로 만난 세계 위에서 그들은 하나가 되고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고민이 펼쳐진다.
 



어딘가로 사라져버린 ‘나’



세 주인공들은 각자의 삶 속에서 서로 다른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남편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느끼며 결혼 생활에 애를 먹는 30대, 어린 아들과 갈등하며 소통에 애를 먹는 30대, 결혼과 자립 등을 주제로 엄마와의 소통에 애를 먹는 미혼의 30대까지. 가족 구성원으로서, 그리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그렇듯이 그들에게도 마찬가지로 당연히 해내야 하는 일인 동시에 가장 어려운 일인 것이다.


이처럼 자신만의 것,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한 세 30대 여성들의 고민과 현실은 극 내내 진행되는 다양한 대사와 행동, 무대공간의 구성 등을 통해 끊임없이 이어진다. 특히 세 인물은 계속해서 서로 번갈아 가며 관객을 향해 방백을 던지는데, 그 때의 방백은 단순한 인물의 자기 고백에 그치지 않고 관객을 향한 ‘소통’의 가능성을 내포한다. 배우들은 관객들과 눈을 맞추며 방백을 한다. 단순한 대사를 넘어선 ‘자신의 이야기’를 건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 끝에는 슬프게도 항상 예전과 달리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만 ‘나’의 자아가 있다. 그것은 프로젝터를 통해 무대 벽에 투과되어 나오는 영상을 세 인물이 모여 앉아 관객과 함께 감상하는 장면에서 상징적으로 제시된다. 영상에서는 여성의 음부 변화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표현한 삽화가 연속적으로 제시된다. 그리고 주인공들은 이 영상을 보며 삽화를 설명하듯이 또 다시 방백을 던진다. 젊었던 어느 날, 예쁜 복숭아와 같았던 자신의 모습은 30대가 넘고 결혼과 출산을 경험하며 볼품없어져 버렸다. 급기야 세월이 더 흐르고 나서는 ‘상해버릴 만큼’이 됐다. 그래서 결국 그녀들은 자신이 변해버린 모습이 추해 스스로 그를 막아버리고 말았다고 읊조린다. 바로 어디론가 영영 사라져버린, 오랫동안 싱그러울 것만 같았던 ‘나’의 모습이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나’의 모습인 것이다.



꾸미기_ttKakaoTalk_20181116_231255144.jpg
 


 

‘소유격’이 아닌 ‘주격’의 누군가로



곧 그들은 서로 시선을 마주치지 않고 이리저리 무대 곳곳을 오간다. 그 모습은 마치 작은 세포들이 혈관 속을 오고 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기혼자이든 미혼자이든 간에 그 자체로 혼란스러운 ‘대한민국 30대 여성’이라는 인생의 시기, 현재 시대 30대 여성들의 모습이 이러한 등장인물의 행동들 속에 고스란히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이윽고 세 인물들은 다시 번갈아 가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번엔 ‘역할극’의 형식이다. 한 주인공이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면, 다른 한 명의 주인공이 그와 갈등을 겪고 있는 대상의 역할이 되어 ‘극 안의 역할극’을 진행해 나간다. 서로가 서로의 남편과, 아들과, 엄마가 되고 이를 통해 주인공들은 실제 자신들의 삶에서 갈등이 어떤 양상으로 펼쳐지는지를 실감나게 보여준다. 특히 미혼의 30대 여성인 한 주인공이 엄마와 극도의 대립을 펼치며 무대를 계속 바쁘게 뛰어다니는 모습에서는 혼란스러운 그녀의 마음 상태, 그리고 결코 개인적이지만은 않은 보편적인 30대 여성들이 겪는 인생의 혼란스러운 모습이 극대화된다.


사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딱 하나’일 지도 모른다. 갈등의 양상을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모든 주인공의 이야기 끝에는 누군가로부터 이해받거나, 인정받거나, 위로받고 싶은 마음들이 있다. 그것들은 곧 자아가 사라져버려 역할의 이름으로만 불리워야 하는 ‘나’의 모습이 아닌, 진짜 ‘나’의 모습으로서 위로받고, 이해받고 싶은 마음인 것이다.


연극의 끝 무렵, 그들은 다시 요가매트를 펴고 요가를 시작한다. 그리고 말한다. “어느 순간서부터는 내가 무엇인지 모르겠더라고요. 누군가의 아내, 엄마이기만 한 걸까. 나는 ‘누군가의’ 무엇이 아닌, 그냥 ‘나’로서의 ‘누군가’. 스스로의 모습으로 여기 있는데.”


결국 ‘나’를 찾고 싶은 그녀들은, 그래서 더 이상 소유격으로서의 이름이 아닌 ‘주격’으로서의 나를 되찾고 싶은 그녀들은 극의 막이 내릴 때까지 다시금 스스로에게 ‘딱 요가매트만큼의’, 작고 좁은 세계를 잠깐이나마 선물한다. 마치 처음 극의 시작처럼 말이다.


그리고 나는 이런 그들을 보며, 구구절절한 열 몇 가지의 감상평을 늘어놓는 것 대신, 마치 이들처럼 언젠가부터 요가 매트 위의 시간을 사랑하게 된 나의 엄마에게 단 한 줄의 질문만을 전하고 싶어진다.


“그래서 엄마, 엄마는 거기서 세계를 찾았어? 요가 매트 위에는 어떤 엄마의 모습이 있어?”



 

김현지.jpg
 

[김현지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5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