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남과 북의 新사랑법, 러브 스토리

글 입력 2018.11.16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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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두산연강예술상수상자_이경성_러브스토리_웹용.jpg
 

 

Prologue.



비로소 남북 관계가 화해하는 양상을 보이며 이전과 다른 평화모드를 보이고 있다. 불과 몇 달 전, 최초의 북미정상회담이 싱가폴에서 열렸고 남북정상회담이 평양에서 성사되며 남북한의 평화분위기는 점점 무르익었다. 이러한 시류를 비추는 거울로서 통일을 주제로 한 연극이 많아졌다는 기사도 보았다. 그러나, 연극 <러브스토리>는 단지 정세가 평화를 지향한다는 추세와 사회적 맥락을 같이하려는 시대극이나 로맨스물은 아니었다.


뻔하지 않은 사랑이야기로 남과 북의 관계에 대해 집요하게 파고들어 상상력을 자극해주어 좋았고, 미지를 향한 호기심을 일깨워주어 좋았다. 그래서 이 <러브스토리>가 마음에 들었고 오래도록 기억하며 응원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도록 남아 통일 후에도 우리의 상상과 노력의 흔적을 보여줄 수 있도록.


 

 

Synopsis.


 

이번 작품은 지난해 <워킹 홀리데이 Walking Holiday>를 준비하며 걸었던 DMZ(비무장지대) 너머의 개성공단을 배경으로 한다.


어느 날 아무런 예고 없이 남측 정부에 의해 개성공단이 폐쇄되고, 함께 지내던 남측과 북측의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이별하게 된다. 이경성과 극단 크리에이티브 VaQi는 2004년 운영시작부터 전면 폐쇄된 2016년 2월 12일까지 개성공단 운영에 대한 일련의 과정을 북한 전문가, 개성공단 입주 기업인,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남북출입사무소 직원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자료를 수집했다. 이를 바탕으로 개성공단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여다보며, 그 공간이 어떻게 ‘인간적 관계’를 만들어 내고 감정을 발생시켰는지 살펴본다.

- 공연 소개 中

 

 

 

알아가기


 

여기까지 읽고 나니, 개성공단이라는 장소에 대한 그림이 상세하게 그려지지 않았다. 공연 관람 전 몇줄의 소개로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접하고도 무엇을 보여줄 것인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런 관객처럼, 처음엔 그들에게도 낯설었을 개성공단을 사람들에게 설득력있게 설명하고 전달하기 위해 연출진과 배우는 장소에 대한 탐구를 시작했다.


매일 아침 개성공단에 관한 뉴스를 검색하고 읽어보고, 미지의 공간을 열심히 상상하느라 그들의 몸과 마음은 이미 개성공단에서 몇날 며칠을 보냈다. 열리지 않는 문을 두드려 개성에서의 시간을 체험해보기 위해 접근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정보를 모으고 이야기를 만들어갔다. 다행인 것은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던 9월 이후로 북한이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여 정보의 양이 많아졌고, 국내 지도 앱을 통해서도 북한을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정치·군사적인 이유로 구글을 통해 볼 수 없었던 북한의 모습을 멀리서나마 접하게 되며 그들의 상상에는 디테일이 더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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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공간에 대해 이토록 탐구하고 조사하며 토론을 이어갔던 것은 개성공단의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세 배우가 각각 하나의 인물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보여주는 <러브스토리>는 기존의 연극이 창작의도를 전달하는 것과는 방법을 매우 달리한다. 극단 VaQi만의 색으로 배우 자신이 만든 인물을 하나하나 묘사하고 이야기를 만들어 연기하는 모습을 무대에서 보여주었다.

 

 

 

상상하기


 

연출진과 배우는 분명 상상으로 개성공단의 인물을 만들어냈지만 그것은 상상이라기보다 아주 구체적인 하나의 논리를 풀어가는 과정처럼 느껴졌다.


개성공단이라는 공간에서 생활하는 인물이라는 것은 처음에는 상념이었지만 구체적인 것들을 토론과 조사로 설정해가니 점차 윤곽이 드러났다. 최송아와 리예매가 남북출입사무소에서 개성공단까지 통과해 공단으로 가는 모습, 속옷 공장에서 김뿔이 성희롱을 겪다 편의점에서 일하게 되는 모습은 인물의 생활반경을 보여주었다. 모습이 아니라 장면이라 부르는 것은 그것이 허구로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배우들이 무대에서 인물을 만드는 과정을 설명하며 연기했기 때문인지, 디테일이 사실적이었기 때문인지 가상의 인물인 최송아, 리예매, 김뿔은 언뜻 배우들 그 자신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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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선을 다음으로 인물들의 성장 배경과 성격을 통해 개성공단에서의 일상을 보여주었다. 말로 설명하고 행동으로 인물을 보여주기 이전에 관객들은 사회적 맥락과 배경부터 만났다. 그 중 가장 인상적이었고 놀라웠던 사실 몇 가지.



“개성공단 안에는 북한 근로자 5만 5천 명이 있고, 남한 근로자는 3천 명까지 있었다. 서로 부대끼고 어울리면서 만났던 날마다작은 통일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개성공단의 시작은 평화를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북측도 평화를 재개하기 위해 부지를 내놓은 것이다. 경제적 관점에서만 시작된 것이 아니다. 적대를 넘어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서였다.”

 

“천안함, 연평도 사건이 있던 날에도 북측 사람들과 배구경기를 하고 놀았다.”



그리고 조금은 슬프고 부정적인 이야기들.



“북측을 볼 때 다름보다는 틀림을 발견하려는 사람이 많다.”

 

“2016년 12월, 개성공다닝 급작스레 폐쇄되며 생산한 물건뿐 아니라 개인 소지품도 모두 가져오지 못했다. 일주일의 대부분을 거기서 생활하니까 옷, 살림살이들이 많았는데 하나도 챙기지 못했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리움과 화합의 장으로 개성공단을 기억하고 있는 듯한 인터뷰 내용과 자료들이었다. 고향의 흙 한줌을 만져보려던 사명감, 이해심, 체제에 대한 이해가 사람 사이의 관계로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그곳의 사람들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로 상상을 전개해가는 과정은 생소함의 연속이었다. 하긴 매일 마주치고 스치는 것들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고민하기가 쉽지 않으니, 개성공단의 사람들을 상상한다는 것은 매우 낯선 감정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던 것 같다.


최송아의 활달하고 눈치가 빠른 성격, 불편한 다리. 모든 것에 서툴고 사람을 대하기가 어려운 리예매. 북한의 페미니스트(라고 딱 정의하기는 어렵지만)이며 rock을 사랑하는 김뿔. 그들이 갖고있는 습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등등. 자주 만나고 이야기하는 사람이라야 오랜 시간에 걸쳐 알 수 있는 것들을 조목조목 설정하고 소설로 써내며 왜 이렇게까지 힘들게 그들을 만들어냈을까. 그 이유는 사랑이라고 말한다. 개성공단에 대해 알면 알수록, 인물들에 대해 생각할수록 사랑이라는 감정이 배우와 인물들 사이에 생겨났음이 편지에서 잘 드러났다.


통일이 된다면 누구보다 강렬하게 가상의 인물들을 만나보고 싶다는 배우들의 편지가 공연장에 울리고 나서 극은 끝이 났다.


 

 

사랑하기


 

(단체 프로필)두산연강예술상수상자_이경성_러브스토리_웹용.jpg

 


“사랑은 서로 마주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다.” - 생텍쥐 페리


“무언가를 사랑하는 방법은 그것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 길버트 체스터턴


“사랑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오히려 훈육과 집중력, 인내심, 믿음과 나르시즘의 극복이 필요하다.” - 에리히 프롬


 

공간은 그곳을 이용하는 사람과 매우 많은 상호작용을 하며 비로소 완성된다. 공간도 인물을, 인물도 공간을 필요로 하기에 두 존재 사이에서 오가는 많은 호흡들은 서로를 채워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공간과 인물이 지금은 단절되었다. 개성공단과 그곳에서 근무하던 남북의 사람들. 단절된 남북 관계에서 피워내고자 한 사랑이야기가 나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지금까지 보아온 어떤 영화나 기사보다도 생생하고 친근하게 개성공단의 세 사람을 기억하고 싶다. 나 역시 그들을 만나보고 싶다.

 

 

[차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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