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 시절 내가 '스타리그'에 열광한 이유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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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입력 2018.11.12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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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역사를 한가지로 표현하면 무엇일까?"



얼마 전 문화콘텐츠 수업을 듣는 내게 주어진 과제였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의 '역사'를 나의 문화적 취향을 통해서 알아보는 과제였다. 나는 과제를 하기 위해 나의 과거를 찬찬히 들여다볼필요가 있었다. 생각해 보니 음악, 영화, 뮤지컬, 미술 등 꽤 많은 장르의 문화콘텐츠들이 나를 거쳐갔지만 이 장르들은 특정 시점의 내가 좋아하는 장르에 불과했고 '나의 역사'를 관통하기엔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나'라는 사람의 과거를 조금의 빈틈도 채울 수 없는 문화콘텐츠가 있다면 무엇일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우연히도 머리를 식히기 위해 간 PC방에서 찾을 수 있었다.

'게임'은 내가 컴퓨터를 처음 알게 된 5살 때부터 지금까지 내 인생을 빼곡히 채우고 있다. '바람의 나라' '메이플 스토리' '카트라이더 '워크래프트' '리그오브 레전드' 등 깊게 생각해보지 않아도 나의 인생은 수많은 게임과 함께한 역사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지금도 게임은 아직까지도 나의 중요한 여가활동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는 사람을 게임을 통해서 설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나를 거쳐간 수많은 게임을 통해 '나의 역사'를 설명한다면 확실히 '스타크래프트'는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에게 게임에는 '하는 맛' 과 '보는 맛'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 게임은 '스타크래프트'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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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스타크래프트를 하게 된 건 초등학교 2학년 무렵이었다.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와 게임을 해 승패를 가리는 '스타크래프트'의 게임 방식은 메이플 스토리와 같은 RPG 게임에 심취해있던 나에게 엄청난 몰입감을 가져다주었던 것 같다. 그렇게 스타크래프트를 처음 알고 고등학교 이전까지 나의 삶은 스타크래프트에 미쳐있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일대일 승부라는 점에서 패배의 원인은 오로지 나에게 있었기에 게임에서 졌을 때의 패배감은 어마어마했다. 그 시절 나는 주로 사촌 형과 게임을 했는데 한번 지고 나면 일주일 간 50판 정도의 게임을 하면서 승부욕을 불태우곤 했다.(물론 그때도 지금도 내가 사촌 형을 이긴 적은 손에 꼽는다.)

그리고 그때 '브루드워'란 가상 공간에 미쳐있었던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남자들에겐 특히 승부욕을 불태우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기 마련이다. 그중에서 특히 '축구 실력'과 '게임 실력'은 그 사람의 자존심 그 자체이기도 하다. 지금은 리그오브레전드가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지만 스타크래프트는 나를 포함한 '스타를 하는 사람'이라면 절대 양보하고 싶지 않은 영역이었다. '누가 제일 스타를 잘할까'라는 주제는 친구들 사이에서 매우 예민한 논쟁거리였고 반에서 스타를 제일 잘한다는 것은 친구들의 부러움을 받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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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점에서 한국에서 스타크래프트를 제일 잘하는 사람을 가리는 '스타리그'는 엄청난 인기를 끌 수밖에 없었다. 스타리그는 게임 전문 채널인 'MBC 게임'과 '온게임넷'에서 진행된 스타크래프트 브루드워 리그로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이러한 게임 전문 채널의 개국과 함께 시작된 '스타리그'는 가상공간에서 플레이되던 게임을 실제 현실로 끌어올리게 되었다. 많은 대기업들은 기존의 축구나 야구 같은 인기 스포츠가 아닌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임팀에 투자했고 스타성 있는 프로게이머들은 탑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실제 2004년 광안리에서 열린 SKY 프로 리그 2004 1라운드 결승전 경기에는 10만 관중이 모인 걸로 보면 스타크래프트의 인기는 여타 인기 스포츠와 비슷하거나 어떻게 보면 그 이상이었다. 살면서 연예인을 좋아해 콘서트를 가본 적도 방송을 일부러 챙겨 본 적도 없는 나는 내가 좋아하는 팀과 선수의 경기는 무슨 일이 있어도 챙겨보고 직접 경기장에 찾아가 마음 졸여가며 경기를 보기도 했다. '스타크래프트'가 전부였던 던 그때 나에게 '프로게이머'는 하나의 우상이었고 '스타리그'는 최고의 선수를 가려내는 연말 시상식과도 같았다.

그리고 나에게 게임을 하는 것을 넘어서 보는 것의 즐거움을 알려준 '스타리그'는 2012년 'Tving 스타리그'를 마지막으로 사라졌다. 스타리그가 왜 사라질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했지만 한가지 확실한 건 스타리그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예전만 못했다는 것이다. 나 역시도 고등학교에 가면서 이전만큼 '스타리그'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스타리그가 끝났다는 갑작스러운 소식은 나에게 아쉬움을 넘어서 어떤 '미안함'마저 가져다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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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99프로게이머 코리아 오픈 시절 스타리그의 경기장 모습


많은 스포츠들처럼 '스타리그'도 수많은 스타 팬들에 의해 유지될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스포츠들과 달리 스타리그를 보는 대다수의 팬들은 스타리그의 '밑바닥'부터 함께 해왔다. 1999년 '99프로게이머 코리아 오픈'을 시작으로 '스타리그'는 수많은 난관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처음 시도되는 인터넷 게임 방송은 모두에게 막막할 뿐이었고 경기장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탁구대에 컴퓨터를 놓고 리그가 진행되곤 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었다. 당시 프로게이머는 '게임중독자'로 그리고 게임은 '해서는 안될 것'으로 여겨졌다. 한마디로 당시 '스타리그'의 미래는 암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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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Y프로리그 2004 1라운드 결승전을 찾은 수많은 관중


하지만 스타리그는 불과 몇 년 만에 큰 성공을 거두었고 20년이 지난 지금 게임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 사람들에게 외면받는 스포츠 리그는 오랜 시간 유지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e스포츠를 처음 알린 스타리그의 성공은 관계자들과 종사자들의 많은 노력도 있었지만 스타를 사랑하는 팬들의 힘이 가장 컸다. 그래서인지 스타리그의 '밑바닥'부터 함께 해온 많은 스타 팬들은 다른 스포츠들과는 달리 '스타리그'에 엄청난 친밀감을 가지고 있다.

또한 단순히 리그를 유지시키는 것을 넘어서 e스포츠라는 산업을 발전시키고 성장시켰다는데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나 또한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스타리그'의 마지막이 '스타를 좋아했던' 나의 마지막으로 생각되고 내가 더 관심을 가지지 못해 스타리그가 사라진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스타리그는 나에게 단순히 게임 리그를 넘어서 나와 함께 자라온 오래전 친구가 돼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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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리그'는 끝나지 않았다. 재작년부터 아프리카에서 진행하는 스타리그인 ASL은 올해 6번째 시즌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나를 포함한 스타 팬들에게 무척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마치 오래전에 연락이 끊긴 친구와 우연히 만난 것 마냥 반갑다. 하지만 한편으론 2012년 '스타리그'가 떠난 것처럼 ASL 역시 갑작스럽게 떠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벌써 섭섭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예전처럼 슬플 것 같지는 않다. 오랜 친구가 갑작스러운 이별을 한다 해도 그 친구와 나눈 추억들까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스타리그'는 스타크래프트를 좋아하고 '스타리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다시 돌아올 것 같기 때문이다.


[오현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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