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집의 시간들>을 보며 생각한 ‘집’의 의미 [영화]

글 입력 2018.11.10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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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둔촌주공아파트 X 가정방문>
그리고 「집의 시간들」


제목부터 마음에 들었던 영화 ‘집의 시간들’을 본진인 서울도 아닌, 대구에서 보았다. 비는 추적추적 내렸고 나는 동성아트홀로 들어갔다. 5분 남기고 들어간 영화관에 놀랍게도 나 혼자였다. 영화 속에서나 보던 상황을 낯선 곳에서 누리니 묘한 감흥이 올라왔다. 멀리 여행 온 나에게 대구가 주는 선물로 여기며 감상을 글로 남긴다.


티저 예고편


일부러 시놉시스를 읽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집의 이야기인지 몰랐다. 때문에 두 번째 혹은 세 번째 집의 이야기가 되어서야 이곳이 둔촌주공아파트라는 것을 알았다. 아파트에 대해 잘 모르지만 주공이라는 이름에서 대규모 단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실제로 이곳은 거의 40 여년 넘게 5000여 세대를 품고 있었다. 중간에 떠나고 새로 들어온 세대들까지 포함하면 수만 명의 사람들이 이곳을 집으로 여기고 있었을 것이다.

73분, 약 8가족의 이야기를 9분씩 들었다. 특이하게도 주인공은 ‘집’이기 때문에 영화 내내 내레이션의 주인공들은 화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나는 그들의 목소리, 웃음 어리고 한숨 쉬고 아쉬워하는 말만 들을 수 있었고 눈으로는 그들의 집을 보았다. 남의 공간을 이렇게 내밀하게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지인의 집에 가면 예의를 차리기 위해 두리번거리지 않고 정해진 영역에만 머문다. TV에 나오는 연예인, 일반인의 집들은 보통 방송노출을 위해 깨끗하게 정리되었거나 연출된 공간만 나온다.

가족의 집들은 한눈에도 생활감이 가득했다. 책장 곳곳에 쌓인 물건들, 칸칸이 놓인 가족사진들, 추억이 얽힌 트로피, 생활도구, 화분, 취미도구 등등 시간의 나이테가 있었다. 어떤 집은 꽉꽉 눌려져있었고 어떤 집은 깔끔했고 어떤 집은 고양이가 살았다. 제각기 다른 가족들이었지만 모두가 둔촌주공을 사랑했고 앞으로 이런 집에서 또 살 수 있을지 아쉬워했다. 아직 살고 있는 중이었지만 그들은 그리움 속에 있었다.


업로드용둔촌주공아파트.jpg
둔촌주공아파트(출처 : 주거환경신문)


그들의 마음이 이해가 될 만큼 바깥 풍경은 평화로웠다. 거의 6층 높이의 커다란 나무들은 소음과 관음을 막아주었고 주민은 녹색을 보며 시각적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다. 1층에 줄을 서있는 꽃나무들과 아파트 사이사이의 자연스러운 산책로들이 아름다웠다. 이 모든 것은 일부러 만든 공원이 아니었고 시간에 따라 나무가 자라고 사람이 걷고 길이 생긴 것이었다.

재건축 후의 이곳은 어떻게 될까. 녹물과 바람 문제는 사라지고 좀 더 살기 편해지겠지만 둔촌주공이 아닌 그저 건물, ‘아파트’만 남아 있을 것 같다. 새로운 콘크리트가 쌓이고 있는 가운데 기존에 살던 저 가족들, 그리고 다른 가족들은 어디로 갔을까. 집이 사라진 가족들은 익숙한 동네를 떠나 다른 곳에서 새로운 고향을 찾았을까?

삶은 길고 한군데에만 머물 수는 없다고 하지만, 진한 삶을 떠날 때는 어쩔 수 없이 미련이 남을 것 같다.



나에게 집은?

둔촌주공아파트 사람들은 각자 경제적 가치, 녹음, 섞이기 힘든 신/구 주민, 산책로, 어린 시절의 추억, 오래된 집, 새소리와 사시사철 피는 꽃, 운을 틔어준 곳 등으로 이곳을 기억했다.

다큐를 보는 내내 자꾸만 들었던 감상은, 그렇다면 ‘집이라는 게 뭘까’, ‘나에게 우리 빌라는 어떤 곳이었지’ 같은 생각이었다.

집하면 떠오르는 것은 먼저 사람이 사는 곳이다. 사람이 살지 않으면 그것은 그냥 구조물일 뿐이다. 다음은 여기저기 물건이 쌓여있는 것이다. 손님에게 보여주기 위해 잠시 쓸고 닦을 수는 있지만 며칠 안가 다시 미로 같이 복잡해진다. 혼자 산다면 조절할 수 있겠지만 스타일이 다른 구성원이 모여 살아간다면 통일성이 유지되기 어렵다.

흔적 하나에 추억 하나가 남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아이가 자라고 집이 늙으며 물리적인 흔적을 남긴다. 해마다 높아지는 아이의 키 표시선, 습기 때문에 누렇게 변하는 벽지, 공간 확장을 위해 못질한 자국들은 인테리어 잡지에서는 볼 수 없는 삶이다.


꾸미기_업로드용누런 벽지.jpg
이런 것이 생활감이다


우리 집은 어떠했더라. 나는 이 동네와 평생을 같이 있었고 이 집에서 20년간 살았다. 사실상 기억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함께였다. 정말 어렸을 적에는 친가 쪽, 어머니에게는 시댁 식구들이 몇 명 상경해서 살았다고 들었다. 우리 가족들도 흩어져 산 적이 없어서 항상 북적북적한 곳이었다. 그런데 나에게 집에 대해, 동네에 대해 애정이 있느냐고 물으면 조금 다른 답이 나온다.

오래 살았지만 나는 둔촌주공 사람들 같은 감정이 없다. 익숙하고 편하지만 그뿐이다. 기쁘고 편안한 기억보다 슬픈 추억이 더 많다. 원인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안전하지 않은 동네, 불안정한 가정, 절대적으로 좁은 면적 때문인 것 같다.

오래전 일이기는 하지만 근처에 도둑 든 집이 꽤 가깝게 여러 곳 있었고 어린 나에게 사인첩 같은 말로 수작부린 사람도 있었다. 걸어서 15분 거리인 공원에서는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고 들었다. 이 사건들이 아마 8~10살 사이에 일어났던 것 같다. 이보다 더 어린 시절에는 나만 보면 따라다녔던 정신이 이상한 언니도 기억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 아이에 대한 호감이나 호기심으로 쫓아다닌 것 같지만 당시엔 호러 영화처럼 무서웠다.

이 모든 경험들이 쌓여 다 큰 지금에도 자꾸 뒤를 돌아보거나 혹시 모를 탈출로를 확인하는 버릇이 생긴 것 같다. 낯선 곳을 집보다 더 안전하게 느끼는 아이러니는 유년기에서 시작되었다.

집은 건축물뿐만 아니라 사람으로 완성된다. 그런 면에서 20년이라는 붙박이 생활에도 불구하고 집으로 들어올 때마다 살짝 불안한 것은 습관적인 감정 때문인 것 같다. 어떤 두려움, 이 문을 열면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는 걱정. 덜 섬세한 아이였다면 차라리 나았을 텐데 나는 눈치를 많이 봤고 타인의 감정에 쉽게 휩쓸렸다. 그런 시간들이 쌓여 마냥 편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나마 같은 집에서 계속 살았기 때문에 조금의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요즘 사람들이 서울에서 살기 위해 가장 먼저 포기하는 것은 거주 안정성이라고 한다. 매매가는 높고 전세는 거의 없고 월세만 수두룩한데, 그나마 있는 전세는 계약 갱신 시 가격을 높이고 맞추지 못하면 나가야 한다. 이런 강제적인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심리적 안정을 얻기는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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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더 높아졌다. 가격도, 매매가 대비 비율도
(출처: 미디어펜 / 자료=KB국민은행)


가끔 집에서 물건이나 사용 시간대 문제로 부딪힐 때면 독립하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 때가 있다. 지금처럼 서울 매매, 전세가 치솟는 때에 과연 갈 수 있을지 막막하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4명이 살기에 현저히 좁은 이 집의 공간 활용도를 어떻게든 높여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어린 시절에는 돈 문제로 집을 바꿀 시도조차 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다르다. 미니멀리즘 책도 찾아보고 인테리어 블로그도 뒤져보며 조금씩 사람이 살기 편하게 바꾸고 있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로 깨달은 것은 겉보기에 예뻐 보이는 것보다 각 구성원의 스타일에 맞추어 물건 배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어차피 배열은 흐트러지게 되어있다. 자주 사용하는 사람의 스타일이 그 공간에 짙게 남는다. 부엌은 엄마의 것, TV는 아빠의 것, 컴퓨터는 오빠의 것, 서재는 나의 것. 물론 다 공용이지만 그럼에도 최대한 존중해주는 것이 좋다. 같이 사는 집이니까 말이다.


업로드용공간지도.jpg
우리집의 공간 지분이지만,
사실 저렇게 나눠눴어도 서로 침범하고 산다.


이런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계속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있다. 나는 우리 집의 구조가 몇 번 바뀌었는지, 언제 벽지에 물이 들었는지 안다. 상장을 어디에 넣을지 여기저기 서랍을 뒤졌던 것과 앞구르기 연습했다가 머리를 찧었던 것과 문 틈바귀에 손가락을 찧었던 것을 기억한다. 옆집과 아랫집, 위집의 어떤 사람들과 언제 친했고 언제부터 무관심해졌는지도 알고 있다.

동네가 야단치는 소리, 고성방가, 늦은 밤의 피아노 소리, 방 바로 앞의 주차장 소리, 가끔 올라오는 담배 냄새, 경적 소리, 싸우는 소리, 떠드는 소리, 고양이 소리로 가득해도 이제는 익숙하다.

시간이 있고 그 속에 내 삶이 있다. 그래서 나에게 집은, 불편한 동반자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헤어질 수 없고 투덜거리면서도 서로 맞춰가는 곳이다.


당신에게 집은 어떤 곳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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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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