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이상 한파 10월 27일, 뜨거웠던 할로윈 [공연]

SFF 2018의 열기에 땀을 주룩 주룩 흘리고 온 썰
글 입력 2018.11.04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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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를 처음 봤을 때의 흥분을 꾸역꾸역 참아낸 지 20일이 되는 날이었다. 10월 27일 토요일 드디어 ‘할로윈 레드문: 서울 패션 페스티벌 2018’을 영접하였다. 쌈디를 너무 좋아하는 고향 친구와 함께 집을 나섰다. 10월의 날씨라고 하기엔 무척 싸늘했다. 옷을 얇게 입고 나온 것을 후회할 정도였다. 하지만 공연을 보는 내내 무대의 열기에 내 땀은 식을 줄 몰랐다.


도착하니 날씨를 무색하게 할 만큼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야외에 펼쳐진 팝업스토어에서는 개성 있는 직원들과 그보다 더 개성 있는 손님들이 옷을 둘러싸고 열띤 토론을 펼치고 있었다. 또 포토존에서는 할로윈 분장을 한 사람들과 사진을 찍기 위한 사람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체육관 앞에 마련된 디제잉 부스에서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즐겨 보고 싶었지만, 나는 런웨이 공연과 쇼를 좋은 자리에서 봐야만 했다. 스치듯이 사람들을 지나쳐 실내체육관으로 입장하니, 이미 그루비룸의 디제잉이 시작되어 있었다.


    


식케시크, 제시섹시



이번 Sik-K의 공연에서는 저번 프리뷰에서 예상했던 세 곡 중 아쉽게도 랑데부는 만나보지 못했다. 그래 그냥 내게 바로, iffy, 붕붕, party를 선보였다. 무대 내내 표정과 춤, 걸음걸이까지 모든 것이 시크 그 자체였다. 그러나 붕붕에서는 고등래퍼 방송에서는 볼 수 없던 에너지를 쏟아냈다. 무대의 끝에서 런웨이의 끝까지 날아다녔고, 온 관객들도 함께 붕붕 뛰었다. 런웨이 펜스 바로 앞에 자리를 잡은 덕에 내가 찍은 영상에 Sik-K의 모습이 정말 선명하게 담겼지만, 어디 올리지도 못하고 개인소장만 해야 할 거 같다. 소리를 너무 질렀다. 거의 울 거 같은 목소리로 계속 ‘오빠’를 불러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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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k-K가 우리 쪽을 봐줬다(고 믿고 싶다)


다음으로 등장한 제시는 사실 평소에 별 생각이 없던 아티스트였다. 그녀에 대해 생각나는 거라곤 언프리티랩스타에서 ‘니들이 뭔데 나를 평가해’ 정도였다. 하지만 실제로 보니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포스에 압도되었다. 한편 그녀의 멘트에는 엉뚱하고 귀여운 성격이 엿보였다. 특히 Gucci라는 곡은 들어만 봤었고, Down이라는 곡은 처음 들어보는 곡이었다. 제시는 이 두 곡에서 리듬에 맞춰 가볍게 몸을 흔들다가, 끝내주는 트월킹을 보여주었다. 그녀의 매력에 저절로 입이 벌어졌다. Sik-K에게 열광하는 여자친구를 향한 질투 어린 남자 분들의 눈빛이 엿보였고, 제시의 무대를 보는 남자친구의 눈을 가리는 여자 분들이 꽤 있었다. 친구랑 간 나는 두 아티스트의 무대 모두 내 두 눈으로 잘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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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영상을 캡쳐해서 화질은 깨지지만, 언니 멋져요
 



화끈한 변신, 선미와 쌈디



한 달 전쯤에 선미의 가장 최근 앨범의 타이틀곡이었던 사이렌에 한창 빠져 있었다. 선미의 스타일과 미모는 위험할 정도였고, 곡의 분위기와 안무가 일관성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이렌의 음악방송 클립을 모두 챙겨볼 정도였다. 그녀는 사이렌으로 등장을 알렸다. 실제로 무대를 보니, 화면에는 선미의 사랑스러운 얼굴과 끼가 제대로 담기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쉬웠다. 정말 예쁜 무대였다.


선미는 할로윈 컨셉에 맞춰 의상을 준비했다고 했다. 가슴에는 큰 리본이, 어깨에는 그녀의 몸집에 두 배가 넘는 퍼프와 셔링이 있는 반짝거리는 소재의 분홍 원피스였다. 백댄서들도 각자 만화의 공주님, 드라큘라, 미치광이로 분한 모습으로 춤을 추었다. 본인의 팀만 너무 과하게 준비한 거 같다며 연신 부끄러운 웃음을 보였다. 그녀가 춤을 출 때마다 어깨의 장식이 얼굴에 걸리적거리다가, 무대 중간에 이내 겨드랑이 부분이 찢어졌다. 관객들은 그녀가 어쩔 줄 몰라 하며 매니저와 대화를 나누는 모습까지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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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에서 막 내려오신 선미 언니
 


그리고 내 친구가 제일 좋아하는 래퍼 Simon Dominic이 등장했다. 그는 해리포터를 연상케 하는 귀여운 남색 교복을 입고, 백팩을 메고 나왔다. 스피커에서 ‘Simon Simon Dominic Simon D.O.M.I.N.I.C. oh oh’이 흘러나오자 마자, 관객들은 가장 큰 함성을 질렀다. 축제의 뒤로 갈수록 스탠딩석에 더 많은 사람이 몰렸고, 쌈디는 가수로서는 거의 끝 순서라 단연 열기가 뜨거웠다. 특히 ‘정진철’이라는 곡의 무대는 기대하지 않았는데, 볼 수 있어서 행복했다. 쌈디의 삼촌에 대한 실제 사연을 다룬 이 곡의 가사를 처음 접했을 때 타격감이 꽤 컸었다. 색다른 방식의 자기노출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정말 음원과 다를 바 없는 라이브를 보여주었다.


또한 그의 무대 매너는 관객을 갖고 놀았다. 그가 향하는 구역의 관객들은 그의 손짓, 몸짓에 맞춰 일제히 함성을 쏟아냈다. 공연에 대한 노련미가 남달랐다. 쌈디가 마지막으로 택한 곡은 11년 전에 발매한 ‘Lonely Night’라는 곡이었다. 이 곡에서 그는 매력적인 중저음의 보컬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쌈디의 무대를 마지막으로 체육관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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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을 마시며 멘트를 하는 Simon Dominic



저마다의 걸음걸이 - GREEDILOUS, O!Oi, D-ANTIDOTE



GREEDILOUS는 (남성복도 만들지만) 기본적으로 여성복에 집중하는 브랜드이다. “여자에게는 극적인 아름다움이 세상이 끝나도 존재한다.” 여성이 가진 아름다움과 그 가치에 대한 그녀의 주관은 매우 뚜렷했다. 그리고 이는 살아 숨 쉬는 ‘색감’과 사람의 몸이 가진 약점은 보완하고 강점은 살려주는 ‘디테일’에서 드러났다. 특히 GREEDILOUS의 패턴은 화려하지만 뻔하지 않아서 조금은 충격적이었다. 새로운 옷이 등장할 때마다 각기 다른 패턴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박윤희 디자이너의 옷은 어느 하나 허투루 만든 것이 없었고, 따라서 그녀의 옷과 옷을 입은 모델들은 함부로 빛이 났다. 2018 F/W는 ‘마리 앙투아네트’에게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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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REEDILOUS에서 인상 깊었던 당근 코트
 


O!Oi는 키치하고 젊은 스타일을 선보였다. 우리 또래 학생들에게 여러 면에서 부담스러울 수 있는 디자이너 브랜드에 대한 접근성을 한층 발전시켰다. 패딩 점퍼, 더플 코트, 아노락, 후드티, 힙색, 슬링백 등 데일리룩으로 활용할 수 있는 아이템을 선보였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일상적인 아이템을 멋스럽게 표현하고 소화할 줄 아는 디자이너와 모델들의 역량도 돋보였다.


아쉽게도 D.GNAK의 쇼를 보지 못해서 쇼는 D-ANTIDOTE가 마지막이었다. D-ANTIDOTE은 헤라서울패션위크의 2018 F/W 컬렉션에서 선보였던 필라(FILA)와의 콜라보와 현진영의 음악을 테마로 삼은 런웨이를 다시 한 번 보여주었다. 레트로 무드의 스포츠 웨어가 주를 이루었고, 형형색색의 겨울 아우터가 런웨이의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쇼 마지막에는 그들만의 감성으로 마치 대제국을 형성한 듯한 의기양양함으로 로고가 박힌 큰 깃발을 흔들었다. D-ANTIDOTE의 쇼는 특별한 무언가가 하나 더 있었는데 뒤에서 이야기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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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NTIDOTE의 모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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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NTIDOTE의 피날레
 


디자이너와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가 옷의 디자인에서 엿보인다면, 모델들의 개성은 자기만의 독특한 걸음걸이와 표정에 드러난다. 실제로 심리학에서는 의사소통에서 표정, 눈빛의 응시, 몸의 움직임 등 비언어적 표현에 대한 연구가 활발한데, 대부분의 연구에서 비언어적 표현이 언어적 표현만큼이나 강력하다고 말한다. 특히 이번 학기에 수강하고 있는 ‘대인관계심리학’이라는 전공수업에서 접한 걸음걸이에 대한 연구가 굉장히 흥미로웠다. 결론을 말하자면, 걸음걸이만 봐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보인다는 것이다.


정말 신기했다. 모델들이 걸친 브랜드의 특성에 따른 차이도 있었지만, 모델들 저마다의 개성도 뚜렷했기 때문이다. 우선 박윤희 디자이너가 이끄는 GREEDILOUS의 뮤즈들은 우아하게 걸었다. 그들의 발걸음이 그리는 곡선이 곧 여성의 아름다움이었다. 그러나 모델 저마다 아름다움에 대한 정의는 분명 달랐을 것이다. 누군가는 콧대 높음에, 누군가는 상냥한 미소에, 누군가는 주위를 둘러보는 여유에 초점을 맞췄다. O!Oi의 모델들은 당돌하게 걸었다. ‘매 시즌을 소비자에게 새롭게 인사를 건넨다는 마음으로 준비한다.’는 정예슬 디자이너의 마인드답게, 옷도 모델들도 틀에 박힌 길을 거부하는 듯 보였다. 모델들의 얼굴근육과 다리의 움직임, 팔의 흔들림이 제각기 다른 저항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특히 노란 비니와 흰 뿔테 안경을 쓴 모델 혼자만 통통 뛰며 걷던 게 참 인상 깊었다. 마지막으로 D-ANTIDOTE의 쇼는 좀 더 독특했다. 모델들이 춤을 추거나, 마주 오는 모델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는 등 자유롭게 런웨이를 활보했다. 음악 또한 힙합이었다. 쇼의 마지막에서는 4명의 모델이 후드티의 모자를 덮어 쓰고 현진영의 ‘흐린 기억속의 그대’에 맞춰 춤을 추었다. 시종일관 시크한 표정으로 휘적휘적 런웨이를 거닐던 모델들이 추는 춤이라니. 할로윈에 걸맞은 이미지 대변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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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동적인 D-ANTIDOTE의 모델 오빠

 



2018 할로윈, 안녕!



지면 상 언급하지 못했지만, 가수들의 무대와 런웨이뿐만 아니라, 유명 DJ의 디제잉 공연도 있었다. 특히 DJ Dropgun은 서커스단과 함께한 강렬한 공연을 선보였다. 이번 SFF 2018은 일관성 있는 컨셉, 깔끔한 진행과 운영, 기승전결이 살아있는 공연 구성으로 전체적으로 완성도가 높았다. 옷을 좋아해서 보러 왔든, 핫한 아티스트의 무대를 보러 왔든, 그냥 할로윈을 즐기기 위해 집을 나섰든 간에 관계없이 관객들을 하나로 묶는 힘이 있었다. 그렇게 우리가 지금 이 계절만의 일탈과 낭만을 즐기게 해주었다. 달콤한 하루였다.


모든 공연을 다 보고 싶었지만 친구의 버스 시간을 맞추느라, 아쉽게도 축제의 끝까지 함께하지 못했다. 체육관을 나섰다. 축제 열기에 땀을 뻘뻘 흘리고 있다가 밖으로 나와 예상치 못한 한파를 경험했다. 실내외 온도차이로 인해 더욱 추위가 극대화된 것 같았다. 그렇게 추운 10월 밤은 처음이었다. 소리 지르고 뛰고 노래 부르며 한바탕 논 것이 꿈만 같았다. 덕분에 중간고사의 스트레스는 체육관에 떨쳐버리고 나왔다. 지하철역에서 친구와 인사를 했다. 친구는 다시 집으로 내려가고, 나는 남은 토요일을 즐기러 이태원으로 향했다.


   

[최희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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