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angle] 완벽한 날 2-1. 소소

소소할 뿐인,
글 입력 2018.10.20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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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날 1.



*



소소한 아침

소소한 인연

소소한 이야기


소소할 뿐인,



여름빛 물 2-1 title.jpg
 

{Untangle}

-여름빛 물-

완벽한 날 2-1. 소소




[7월 4일]


9시에 알람이 울렸다. 알람을 맞춘 이유는 단순히 조식을 먹겠다는 알 수 없는 의지. 아침 먹는 날이 일 년에 손에 꼽으면서도 이런 날에는 괜히 아침을 먹어야 할 것만 같다. 하지만 잠이 이겨버렸고 나는 한 시간 더 자는 그사이에 아침 먹는 꿈을 꾸고 있었다. 음식 담는 것에는 조절하지 못하는 만큼 접시에 도넛 두 개 식빵 두 개 스콘 두 개 시리얼 한 그릇 가득 담고 티비를 틀어 놓고 아침을 먹는 이들의 테이블에서 조금 벗어나 앉아서 먹으려고 했다. 노란 아침 햇빛이 묘하게 연두색 공기를 밝히고 있었다. 빨간 줄무늬 접시에 담긴 빵들은 끈적끈적하게 설탕에 지배당하고 있었다. 까슬까슬한 나무 테이블. 이제 먹어볼까 생각하는 찰나에 나는 다시 깼다. 9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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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704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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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늦었어...'


하고 더 자려고 하자마자 깨닫는다. 지금 몸만 피곤하지 잠은 다 깼다고. 그러니까 누워있어봤자 나는 몸만 괴로울 뿐 잘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몸을 일으켰다가 그대로 앞으로 숙여서 저린 다리를 조금이나마 당겨준다. 얼굴을 확인하고, 아니 아침부터 얼굴을 확인하는 것도 처음이었다. 확인할 수 있던 게 처음인 건가. 너무 부어있다고 생각한 걸까. 세수를 하고 조식을 먹으러 나간다. 내가 일어난 두 번째 이유다. 조식이 10시까지인 줄 알았는데 10시 30분까지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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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보니 어제 잠깐 마주쳤던 분이 조식을 드시고 계셨다. 바다를 보러 나가려고 할 때 베란다에서 책을 읽고 계셨던 분이었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이곳에 오래 계셨던 것만 같은, 이라고 생각이 문득 들었던 분. 아래층에서 음악 소리가 올라온다. 북카페가 문을 열었나 보다. 밖은 비구름이었다. 오늘 일기예보가 들어맞고 있었다.


혼자 여행 온 것도 처음, 조식을 먹는 것도 처음이라서 어떻게 할지 방황하다가 식빵 한 장을 꺼내 토스트기에 넣는다. 사실 나는 토스트기 마저도 처음이다. 만화에서 손잡이 같은 걸 내렸던 것 같다. 그래서 내리고, 음 뭔가 가만히 있기도 뭐해서 접시를 가져다 놓고 테이블 아래 차곡차곡 쌓여있던 책을 괜히 들춰봤다.


대화는 내가 태워버린 토스트로 시작한다.




털컥!



설거지 소리만 울리던 조용한 거실에 토스트기가 요란하게 소리쳤고, 식빵은 탄 빵이 되어 올라왔다. 눈에 들어온 까만 무언가에 상황을 이해하고 "망했다..."라고 외치려는 찰나,



"저기…. 어떡해요 식빵이 탄 것 같아요"


"헉 정말요…? 어떡하지…. 그냥 먹어야 하나...."


"탄 건 버리시고 다시 한번 해보세요, 여기 취소 버튼 누르니까 시간 안 채우고 바로 나오더라고요"


"에효 식빵 하나가 아까워져 버렸어요..."



대화 사이에 웃음도 간간이 오가며 나는 까만 벽돌을 버리고 빵을 다시 토스트기에 올렸다. 그분은 오늘 나가시는지 가방까지 밖으로 나와 있었다.



"얼마나 있다 가세요?"


"저는 2박 3일 있다가 가서 내일 돌아가요"


"정말요? 부러워요"


"언제 오셨어요?"


"저도 어제 왔다가 오늘 가요"


"그렇구나…. 어제 오자마자 느꼈잖아요, 왜 2박3일만 예약했지 더 길게 했어야 했는데"



알고 보니 그분도 어제 오셨던 것이었다. 그분이나 나나 하루 인상에 이 완벽한 날들에 반해버린 것 같다. 아주 짧은 인연인지라 소소하게 내가 어제 오자마자 나간 이야기로 이어진다. 나는 바다에 다녀왔다고 했다. 그분이 언제라고 말씀해주셨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지만, 그분도 바다에 가서 맥주를 마셨다고 하셨다. 그런 이야기가 오갈 뿐이었다. 짧은 인연, 짧은 순간, 짧은 공감도 진해질 수 있는가 보다. 저도 어제 귀여운 강아지랑 맥주를 마셨어요, 라고 타이밍을 놓쳐서 속으로 말한다.



"아, 그 뭐지 이 책 재미있게 읽었어요, 이건 만화책이긴 하지만..."



아까 책을 뒤적거리던 나를 보셨는지 반대편 테이블에서 책을 꺼내며 말씀하신다. 이것도, 이것도, 이것도, 계속 나온다.



"와 여기 있는 책 다 읽으셨나 봐요"


"어제 딱히 할일이 없다 보니 여기 있는 책들 거의 다 읽었어요"


"추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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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먹으면서 읽어봐야겠어요. 탄 빵으로 시작한 대화를 책으로 마무리하고 그분께서 체크아웃을 하러 나가시기 전, 마지막은 미소로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그분이 하신 말이 떠올라서 토스트기 취소 버튼을 눌렀다. 딱 좋게 구워졌다. 괜히 시리얼도 먹어야 할 것 같아 시리얼도 조금 담아 먹었다. 치에코씨의 하루를 살펴보며 아침 식사를 했다. 기억나는 건 "달도 언젠가 자신이 죽을 거라고 생각할까"라는 말.


혼자 있는 거실. 아침을 먹으며 달그락거리는 소리만 조용히 울리는 동안 조용한 틈 사이로 내가 머무는 방에 적혀있던 메리 올리버의 문장이 머릿속에서 계속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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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물쇠 채워진 시간. 단단한 이십 대’


그는 왜 이십 대를 이렇게 표현했을까. 그러면서 나의 이십 대가 계속 궁금해진다. 나는 나의 이십 대를 뭐라고 말할지 말이다.



*



정말 든든한 아침.


까맣게 타버린 토스트로 얻은 대화와 책이

오늘이라는 완벽한 날의 아침을 채우고 있었다.

까만 토스트마저도.


준비를 마저 하고 바로 아래층 북카페로 가서 시간을 보내기로 한다.



*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요"


구름이 가득 낀, 예상대로의 칙칙한 날씨였다. 덥지 않은 날씨에도 차가운 커피잔은 이슬을 마구 만들어내며 작은 쟁반을 연못으로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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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깐 리뷰 글을 쓰다가, 책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부분이 있어 필사를 했다. 들고 온 책은 한 챕터만이 남아 이 부분은 이따 저녁에 맥주 한 잔 하며 읽기로 했다. 이곳에 와서 읽을 수 있는 책들을 만나고 싶었다.


작가님들의 사인이 담긴 책꽂이를 서성이다가 아래 책상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책을 만났다. 김은미 작가님의 '이야기를 그려드립니다' 였다. 제목 그대로였다. 이야기가 그려진 그림이 담긴 책이었다. 그 자리에서 다 읽었다. 특별할 거 없는 평범한 시장의 이야기였다. 평범하고, 평범했다.


평범한 이야기가 끌린다. 요즘 그런 평범한 이야기가 더 특별해 보인다. 그리고 이따금씩 이런 평범한 이야기를 담아내는 이들이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왜 이렇게 많이 드는지 모르겠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세상이 '특별함'의 의미를 일상과 전혀 다른 곳에서만 찾고 있다고 느껴지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믿는다, 평범함과 특별함은 전혀 다른 이야기가 아니라고. 그 이야기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읊어 주고 들어주는 것 자체만으로도 특별하다고. 그래서 모든 사람이 특별하다고 흔히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 라고 처음으로 그 마음을 선명하게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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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할머니를 따라 시장에 가 본 기억. 중학생 때인가, 아무 생각 없이 친구랑 궁금하다면서 친구 동네 장터에 구경하러 가서 너무 많은 사람에 숨 막혔던 기억. 시골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며 찹쌀 도넛 먹겠다고 장터 날짜에 선생님을 속여서 병원 외출증을 써서 친구와 나갔던 기억(아마 분명히 선생님도 우리가 불쌍해서 이따금씩 속는 척하면서 보내주셨던 것 같다. 근데 학교에 소문날 정도로 정말 맛있는 찹쌀도넛이었다!). 내겐 없던 것 같던 시장에 대한 기억이 읽으면서 마구 떠올랐다. 그리고 아마 그뿐인데 책에 담긴 이야기들이 모두 공감된다. 사람 이야기라는 게 그런 건가 싶었다. 책 속에는 할머니 할아버지 이야기가 많아서 괜히 우리 외할머니가 생각났다.


책을 읽고 나서 전시되어있는 원화를 살펴본다. 나는 그림이 인쇄되어 담긴 것과 손수 그려진 원화의 모습이 다르다는 것을 안다. 그러니까 전해지는 무언가가 다르다는 것 말이다. 굳이 (재미없게) 희미한 나의 지식을 동원해 인쇄 원칙적으로 말하면, 무엇보다 인쇄하면 CMYK로 인쇄되기 때문에 꽤 많은 밝은 원색들이 쉽게 죽어버린다. 예전에 밝고 쨍한 예쁜 색감의 작품이 도록에는 칙칙해져 버린 채 인쇄된 것을 보고 많이 안타까웠던 기억이 있다. 어쩔 수 없는 인쇄의 한계지만 안타까운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니까 원화는 책마저 담을 수 없는 더 온전하고 소중한 무언가들을 지녔다. 그림에 스며든 채 남겨진 붓의 흔적으로 작가님의 손길도 느낄 수 있다. 희미한 듯 선명한 듯 작가님의 수많은 손길이 흔적으로 남겨진 작품을 보면서 작가님이 이 그림을 그리는 시간과 과정이 어땠을지 상상해본다. 그림은 멈춰있지만 그렇게 시간이 느껴지기도 한다.


파란 파라솔 아래 걸려 있는 아이의 파랗고 하얀 원피스와 옷들이 담긴 그림이 가장 마음에 남는다.


그리고 작가님의 후기도 마음에 남는다. 말소리를 바깥으로만 내지 않았을 뿐 그렇다고 내 속까지 조용했던 것은 아니었다고, 항상은 아니지만 내 속도 나름 시끄럽고 쨍했다는 작가님 자신의 이야기가. 이 소개가 꼭 나 같기도 해서 공감이 되었나 보다. 지금 내가 글을 쏟아내는 것을 보니 나도 그런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님의 작품이 계속 이어지기를 글 끝에 응원을 남기며 책을 덮었다.



*



뽀작뽀작



카페에 들어온 어린아이의 신발 소리에 차분했던 카페 분위기가 귀여운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손님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시계를 보니 3시였고, 생각해보니 어제부터 시계를 거의 안 보고 있다. 정말 흘러가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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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밤(refr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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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음 가는 대로 그림 하나를 완성했다. 여름밤이라며 무작정 그리기 시작한 걸, 마지막까지 별 마음 두지 않고 펜이 가는 대로 그려서 완성했다. 덕분에 오랜만에 마구 빛나는 그림을 그리게 된 것 같다. 완성하고 나서 보니 내가 그림을 처음 그렸던 순간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내 그림은 마음 가는 대로 이어지면 숨 쉴 틈 없이 반짝이는구나, 그냥 생각한다.


지금은 고민 중이다. 어제 자기 전에 그리자며 연필로 끄적인 게 두 개나 돼서 뭐부터 그려야 할지 말이다.



*



sum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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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예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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