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진짜사나이 300>: MBC가 군대를 우려먹는 법 [문화 전반]

군대 강요하는 사회
글 입력 2018.10.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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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예능 <진짜 사나이>가 ‘또’ 돌아왔다. 이미 지난 시즌 1, 2에 걸쳐 군 미화, 출연진 특혜, 리얼리티 논란 등으로 많은 소란을 일으켰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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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들이 ‘군인 아저씨’인줄만 알았던 고등학생 때는 헨리가 그 유명한 ‘넥쓸라이쓰!!!’를 날릴 때 배꼽을 잡고 뒹굴었건만, 20대가 되고 보니 마냥 웃을 수가 없었다. 나의 친구들과 동생들이 ‘왜 내 청춘의 소중한 2년이 날아가느냐’고 울부짖으며 도살장 가듯 끌려가는 뒷모습을 바라보았고, ‘의무’라는 명색 하에 노동의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한다거나 훈련 도중 다쳐서 골골대는 모습을 목격했고, 어느덧 제대한 그들이 일명 ‘군대 썰’이라며 전래동화 이야기하듯 전해주는 온갖 부조리한 사건들을 듣고 나니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진짜 사나이>라는 프로그램이 대중의 시야를 흐리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진짜 사나이>속 군대는 그 조직이 가진 어두운 조각들은 모두 잘라내고 그나마 가진 밝은 조각들만을 한껏 모아다가 붙여놓은 몽타주이다. 정당하지 못한 대우, 신체적/정신적 폭력, 심지어는 사고사까지 그 종류도 다양한 외면당한 조각들은 참으로 굳건하게도 본인들의 세력을 지키고 있었지만 공영방송 MBC는 밝은 빛 몽타주만을 대중의 눈앞에서 흔들어대는 데 급급했다. 대중이 그것을 그대로 수용했던 그렇지 않았던 간에, 이는 명백한 군대 미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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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시즌 3격인 <진짜 사나이 300>이 시작된다고 했을 때 내 맨 처음 반응은 이것이었다. ‘감히 어딜 또?!’ 그래서 x같은 군대미화 좀 그만하라는 주제로 글을 쓰려고 했다. 그런데 프로그램 관련한 이런저런 기사를 찾아보고, 실제로 방송을 보고나니 그 주제를 다룰 수가 없어졌다. <진짜 사나이 300>은 군대미화를 하지 않았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군대미화를 참으로 영리하게도 피해갔다.



‘군대미화’ 비난을 피하기 위한 MBC의 영리한 행보


시즌 3의 출연진들은 ‘직업’군인을 양성하는 육군3사관학교, 즉 ‘자발적으로 지원한 자’들의 무리로 섞여 들어간다. 이러면 군대미화 비난을 던지기도 좀 애매해진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휴전상태, 즉 명백히 따지면 전시상태인 대한민국에서 군대는 분명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재 남북관계가 어떻든 간에) 여전히 존재하는 우리의 공식적인 적, 북한으로부터 국민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서 국가는 군대라는 방어시스템을 필요로 하지 않을 수 없다.

둘째. 카메라가 비추는 무리는 철저히 개인의 자유의사를 기반으로 형성된 조직이기 때문이다. 이 집단은 의사와 상관없이 ‘징병당한’ 개인들의 무리가 아니다. 본인의 능력, 가치관을 자체적으로 판단한 후 사회가 필요로 하는 어떤 일을 직업으로서 해보겠다고 ‘지원한’ 개인들의 무리이다.

때문에 내가 <진짜 사나이 300>을 향해 비난의 화살을 쏘면 그 끝은 ‘어쨌거나 필요한 조직’에 ‘자발적으로’ 지원한 청춘들에게 닿게 되는 것이다. 뭔 말을 하기가 쉽지 않다. 참으로 영리하다. MBC.



사회로 퍼져 나오는 군대문화


하지만 아무리 ‘명백한 필요’와 ‘자발성’을 방패로 내민다 하더라도 <진짜 사나이 300>은 여전히 논란의 소지가 있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야 한다는 ‘공영방송’ MBC가 앞장서서 군대라는 특수한 조직 내에서만 공유되어야 할 군기, 전체주의, 상명하복 등의 군대문화를 사회로 흘려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어서 비로소 깨달았다.
가정이든 학교든 직장이든
우리 사회는 기본적으로
군대를 모델로 조직되어 있다는 것을.

상명하복, 집단 우선이
강조되는 분위기 속에서
개인의 의사, 감정, 취향은
너무나 쉽게 무시되곤 했다.

합리적 개인주의: 판사 문유석의 일상유감 中


나는 지금 군대라는 조직 자체를 부정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군대 내의 군대문화를 마뜩찮게 보는 것 역시 아니다. 수만 명의 개개인을 통솔하기 위해서는 엄격한 규율과 위계질서가 분명 필요했을 거라고, 일각을 다투는 전시상황에 대비시키기 위해 개개인의 사상을 하나로 일치시키는 것 역시 필요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군대라는 조직에는 특수한 상황적 배경이 깔려있기에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다만 내가 문제 삼는 것은 ‘군대 바깥의 군대문화’이다.

내가 나온 00여자고등학교는 특이하게도 이사장이 군인이었다. 살벌한 복장, 두발규정은 물론이거니와 운동회 때 운동장에 모인 수백 명의 여고생들이 이사장을 향해 ‘충!효!’하며 경례를 할 정도로 군대문화가 학교 곳곳에 배어있었다. 우리는 수련회도 평범하지 않게 보냈다. 매 년 수련회마다 행하는 ‘I can do it (We can do it 이었나...?)’ 프로그램은, 쉽게 말하면 유격훈련 축소판이었다. 수백 명의 인간이 하나가 되어 흙바닥에서 뛰고 뒹굴고 소리 지르는 장관 속에서 다름, 그리고 실수는 공포 그 자체였다. 맨 마지막 구호 붙이지 말라 그랬는데 붙이는 식의 개인의 작은 불복종은 곧 ‘처음부터 다시’라는 전체의 비극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 순간 나는, ‘박민재’ 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완전히 버렸다. 그저 전체의 일부로서 철저히 명령에 복종할 뿐이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남성들은, 이러한 사상일치 교육을 근 2년 내내 받는다.


‘개인주의’라는 말은
집단의 화합과 전진을 저해하는
배신자의 가슴에 다는 주홍글씨였다.
...(중략)...
그 불온한 단어인 ‘개인주의’야말로
르네상스 이후현대에 이르기까지
인류 문명의 발전을 이끈 엔진이었다.

합리적 개인주의: 판사 문유석의 일상유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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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한 쪽에서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하여 창의력을 키우라고 강조하면서 또 다른 한 쪽에서는 청춘의 반에게 ‘모두가 같아질 것’을 요구하는 명백한 모순의 사회이다. 그런데 공영방송 MBC에서 몇 백 명이 한 몸이 되어 움직이는 유격훈련의 현장이 버젓이 나오는 것을 보면 두 가지 요구 중 전자에 해당하는 부분은 그저 허울뿐이었던 건가 싶다. ‘의무’라는 명색 하에 노출된 전체주의에서 차츰 표백되어버린 개인의 개성을 얼른 원상복귀 시켜줄 생각은 못할망정 그 문화를 TV 앞의 민간인 시청자에게까지 퍼뜨리고 있으니 말이다.



워리어 300, 그리고 <진짜 사나이 300>


하여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대체 공영방송에서 이 프로그램을 다시 진행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높은 인기를 누린 시즌 1, 2의 영광을 다시금 누려보려는 의도도 분명 있겠지만, 내가 예상한 가장 큰 이유는 육군본부가 진행한 ‘워리어 300 선발’의 홍보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얼마 전 국군의 날 행사에서 ‘강한 군대’의 중요성을 피력했다. 평화 역시 우리의 힘이 전제가 되어야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발언은 육군본부가 ‘강한 육군’ 건설을 목적으로 올해부터 최정예 전투요원 300명, 즉 ‘300 워리어’를 선발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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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사나이 300>은 육군3사관학교에서 이런 저런 훈련만 받다가 끝나는 것이 아니다. 육군3사관학교를 거점으로, 멤버들이 워리어 300 선발에 참여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주된 컨셉이다. ‘300 워리어가 무엇인지’, ‘그 과정에 참여하는 지원자들이 얼마나 독종인지’등의 주요 전달사항은 연예인들이 한계를 넘어서며 흘리는 눈물에 섞여 자연스레 대중에게 가닿을 것이다. 이 얼마나 뛰어난 홍보의 효과인가.





결론적으로 나는 이 <진짜 사나이 300>이라는 프로그램이 대체 우리 사회에 어떤 순기능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혹자는 ‘예능은 예능으로서만 보자!’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한 시간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시청자를 실컷 웃게 해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이 콘텐츠가 대중에게 닿기 위해 사용하는 플랫폼은 전국 방방곡곡의 남녀노소 누구나 향유하는 TV이다. 현존하는 매체 중 가장 큰 파급력을 가졌을 바로 그 TV 말이다. 때문에 방송 콘텐츠는 단순히 '재미가 있느냐 없느냐'의 잣대로만 평가될 것이 아니다. 성인들에게 뿐만 아니라 어린이들에게까지 닿을 수 있으며, 그 아이들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 꽤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에 사회적 책임을 빼고는 논해질 수 없다.

이 프로그램은 12세 관람가이다. 중학생들이 이 콘텐츠를 접할 수 있다는 얘기다. 나는 <진짜 사나이 300>이 미래 주역들의 무의식 속에 군대라는 시스템을 당연시 여기는 결과를 낳을까봐, 그것이 두렵다. 징병제는 결국 언젠가는 필히 사라져야할 시스템이다. 필요성 이전에, 개인에게 너무나 많은 불합리한 일을 겪게 만드는 것이 군대이다. 군필, 혹은 예비 군필들은 그들 나름대로 근 2년 가까이 최저시급도 안 되는 대우를 받느라 고생하고 거부자, 면제자, 의무사항 없는 자들은 또 그들 나름대로 사회 안에서 교묘하게 형성된 군대 카르텔로부터 멸시당하느라 고생한다. 이 지난한 싸움을 끝낼 해결책은 군 복무 기간을 줄이는 것도, 여성 또한 군대에 가는 것도, 손흥민에게도 병역 의무를 지우는 것도 아니다. 징병제가 사라지는 것. 그것이 궁극적인 해결책이다.

그 다음 세대를 위해서라도 무조건 개선되어야 할 사회의 악습을 그저 답습하고 있는 <진짜 사나이 300>, 그리고 MBC가 난 마뜩치 않다. MBC는 상업방송이냐 공영방송이냐 왈가왈부 말이 많지만 그 모든 것의 이전에 어마어마한 힘을 지닌 '방송국'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있다. 그 점을 항상 인지하고 책임감 있는 행보를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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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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