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진부하다는 말에 담긴 의미 [기타]

글 입력 2018.09.26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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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부하다.


막 시작하는 사람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고 경력이 쌓여 좀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굴욕적이고 기분이 나쁘다. 진부하다라는 네 글자가 주는 느낌은 왠지 쓸쓸하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내 글이 남들이 쓰는 글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소리다. 요리하는 사람에겐 내 이름을 걸고 새 메뉴를 내놓기엔 부족하다는 이야기다.

사실 진부하다라는 단어를 쓰는 직업을 생각해보면 창의성이 필요한 곳이 많다. 사람을 사로잡아야 하는 광고 마케터, 작가, 미술가, 가수, 교사, 의사 등등. 이미 소비해버린 주제와 음, 색, 이미지는 새로움을 주지 못한다. 그렇다면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거나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새롭다고 느끼는 게 정말 새로운 것일까? 사실 이 세상에 완전히 새로운 것이라는 건 없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조차 진부하다. 5천만이 살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은 무수히 많다. 그러면 다르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뭘까?



진부하다 = 내가 가진 장점이자 제일 잘하는 것

나는 항상 오디션프로그램을 보면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다. 기타가 장점인 연습생이 다른 매력을 보여주기 위해 기타를 내려놓고 노래에 집중했을 때 심사위원은 말한다. ‘기타를 들지 않아 탈락시켰다. 너만이 가진 장점이 보이지 않는다.’ 다른 참가자에겐 이렇게 말한다. ‘매번 기타를 들고 노래를 하니 지루하다. 진부하다. 다른 매력을 보여 달라.’ ‘요즘 다들 비슷비슷하다. 다른 가수와 차이점이 없다. 너무 똑같고 진부하다.’ 연습생은 진부하다는 고칠 수 없는 문제를 안고 무대를 내려온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진부하다는 의미는 내가 잘하는 것이자 장점이고 나만의 색깔이다. 그러므로 나에게 네 글은 진부해라는 말은 칭찬이다. 내 글이 가지고 있는 문체와 특정 이미지가 있다는 이야기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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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부하다 = 변하지 않는 의미


다들 자기가 최초거나 최고인 사람이 되고 싶다. 제일 유명한 ‘용의 꼬리가 될 것인가, 뱀의 머리가 될 것인가’의 문제. 누군가가 이미 성공한 그 길을 따라가거나 나만이 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선두로 걷거나. 이미 성공한 길은 누군가에게 새롭지 않은 뻔한 길이 되기도 하고, 뻔한 길이기에 안도를 느끼며 그 뒤를 따르는 사람도 있다.

진부한 말은 새롭지 못한 말. 즉, 그전에도 계속해서 해오던 말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진부한 말이 사실 맞는 말이자 제일 듣고 싶은 말이다. 아직까지 그 진부한 말이나 글에 힘을 얻고 위로를 받는 사람이 있다. 다른 말로 빙 돌리지 않고 직설적인 그 진부한 말 한마디를 원한다. 우리는 새로운 것보다 익숙한 것에 기대고 안정감을 느낀다. 많은 사람이 낡고 오래된 것에 정을 느끼듯, 진부한 말. 이미 단어에 시간의 함축을 담고 있는 이 진부한 말에서 역시 정을 느낀다.

나는 오늘도 진부한 글을 읽고 쓰고 생각한다. 매일 새로워야 할 필요가 없다. 내가 가진 색깔로 내가 갈 수 있는 길을 묵묵히 갈 뿐이다. 그 길이 비록 진부할지라도. 나는 그 진부한 길을 열심히 걸어간다.


[백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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