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An Avenger of Mine : 가장 엄정한 심판자 [사람]

글 입력 2018.09.08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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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우리는 자신을 속이는 일에 능숙하다. 우리는 타인을 만족시키는 데에 프로다. 기뻐도 자랑하지 않고 슬퍼도 내색하지 않는다. ‘우리’는 나고, 당신이다.
 
한국에서 자라나 이곳의 규범을 습득할 때 가장 먼저 배우게 되는 것은 자신을 감추는 것이다. 기쁨은 잘난 체가 되고 울음은 나약함이며 꿈은 어리석은 것으로 치부된다.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진심을 감추고 숨긴 뒤 적절한 방식으로 포장하는 법을 익힌다.

그리고 자기 자신과 대화하는 법을 잊어버린다.



My story

KFC 팝콘치킨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던 어린 시절, 나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하루 빨리 보호받기만 하는 나약한 어린 아이에서 벗어나 TV 속 멋있는 어른이 되기를 바랐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름 앞에 명사가 붙는 것을 의미했다. 대학생, 변호사, 대통령, 연예인, 공무원 등 사회에 인정받는 당당한 직함을 갖고 있는 것이다.

좀 더 커서는 다른 조건들이 추가되었다.

타인과의 대화에 능숙할 것,
감정을 적절하게 표현할 것,
상황에 맞는 리액션을 선보일 것.

어린 시절의 솔직함을 대가로 이 조건들을 충족할 수 있었다. 미숙한 부분은 임기응변으로 헤쳐 나가거나 타인을 모방하여 채웠다. 이것이 사회의 일원이 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그저 세상에 적응하기에만 급급했다. 모범이 될 수 있는 주위 어른이나 올바른 길을 가르쳐주는 교육이 없는 환경에서 아이가 할 수 있는 것은 ‘비슷해지기’ 뿐이었다.

칭찬하는 어른을 만날 때, 부러워하는 또래와 대화할 때, 처음 보는 사람과 인사할 때마다 자리에 맞는 언행과 나의 위치에 걸맞은 행동을 하게 되었다. 가끔 참을 수 없이 솔직해지고 싶었지만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솔직함은 미덕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혼자 있는 순간에도 가면을 벗을 수 없다는 것을. 가면 뒤에는 얼굴이 없었고 텅 비어 있었다.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에 야금야금 먹혀버린 것이다.

그렇게 ‘나’를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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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 word

“감추다” : 한 번, 두 번 나의 진심을 감춘다. 세상은 웃고 나는 운다.

가족은 태어나서 처음 만나는 울타리이다. 가족 구성원에게는 밖에서 할 수 없는 말도 쉽게 할 수 있고 그들은 타인보다는 내 편을 들어준다. 그리고 그만큼 소중하기 때문에 큰 짐이 생긴다. 부모의 ‘정상적인’ 양육이 이루어지는 가정이라면 짐이 아니겠지만 안타깝게도 수많은 가정들이 각자의 비극으로 신음한다. 생각보다 더, ‘정상’은 높이 있다.

조금은 뻔한 비극으로 강제로 철이든 순간부터 나는 집안의 분위기를 살펴야 했고 상황이 별로다 싶으면 어떻게든 풀어줘야만 했다. 그 순간에 중요한 것은 내 감정이 아니었으므로 진심은 감춰졌다. 가정은 위태위태하면서도 평온했지만 나는 ‘나’를 잃어갔다.

배려 속에 피눈물이 있으면 그것이 바람직한 것일까. 나뿐만이 아니다. 가족을 이루고 있는 구성원들 모두에게 각자의 고충이 있었다. 어머니는 어머니 나름대로, 아버지도 아버지 나름대로. 만약 감추지 않고 서로 솔직하게 얘기해보았다면 지금은 어떠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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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하다” : 결국 모든 것은 돌아온다. 이자까지 붙여서 더 크게.

사건은 결코 한 순간에 일어나지 않는다. 하인리히의 법칙처럼 큰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는 반드시 그 징후가 나타난다. 의식 차원의 내가 타인과 만나는 동안 무의식 속의 나는 차근차근 반란을 준비한다. 반란의 징조는 다음과 같다. 대화를 하는 도중 안하던 말실수가 나오고 평소에 안하던 행동을 충동적으로 한다. 시작은 작은 실수들이기 때문에 컨디션 문제라고 생각하고 쉽게 넘어간다.

복수의 시작은 위화감이었고 그 과정은 몰락이었다. 나는 향상심, 열정, 희망을 잃어버린 채 삶 속에서 표류했다. 믿고 살아왔던 모든 것에 의문을 품게 되고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헤맸다. 그렇게 나는 나 자신의 가장 엄정한 심판자로서 미뤄왔던 대가를 치렀고 아직도 치루고 있는 중이다.

타인을 위해 살아가면 그 순간에는 괜찮을 지도 모른다. 착한 딸, 착한 친구, 착한 연인, 착한 동료, 착한 부모 등 상대방을 기쁘게만 해주는 나는 상대에게 참 좋은 사람일 것이다. 그리고 정말 ‘나’에게 나쁜 사람일 것이다. 평생 함께 할 대상이자 깊은 속사정 전부를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 외면한다면 도대체 누가 ‘나’를 알아줄까?



For you

‘푸르른 틈새’를 쓴 소설가 권여선은 고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자신과의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이
타인과의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한 시작점이다.
그를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고독하기’이다.”

자신을 속이지 않고 솔직해지는 것은 어렵다. 뭐든지 해본 사람이 잘한다고, 안 해본 것을 갑자기 하려하는데 그것이 잘될 일은 없다. 그러니까 시작은 천천히, 지금 내가 느끼는 것들을 인정하는 것부터 하자. 질투가 나면 질투 나는 대로, 외롭다면 안 그런 척하지 말고 인정하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면 일기를 쓰는 것도 좋다. 글을 쓰면 솔직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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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이지 말라는 것이 곧 가면이 나쁜 것이므로 없애야 한다는 말과 같은 뜻은 아니다. 사회 속에서 항상 맨얼굴로 살아갈 수 없다. 세상 살면서 언제든 솔직하게 자기감정을 말할 수 있는 슈퍼갑은 드물고 부드러운 관계를 위해 적당히 감추고 사는 것은 살아가는 요령일 것이다.

잊지 말자. 나의 얼굴에 신경 쓰기, 내가 좋아하는 것을 볼 때 어떤 기분이 들고 어떤 표정을 짓는지, 내가 슬플 때 자꾸 웃는 버릇이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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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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