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가족의 모순: 여자라서 행복하다는 거짓말 [도서]

글 입력 2018.08.30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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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라서 행복하다는 거짓말
신중선 소설 / 내일의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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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평온이
어느 누구의 고통을 강제 봉인시켜
침묵의 늪으로 침잠시켜 온 결과였는가를
파헤쳐 드러내는 것,
그것이 바로 페미니즘이다.

-해설 윤김지영(페미니즘 철학자)


페미니즘을 접하고 배울 수록 가부장제의 벽이 얼마나 견고한지 알게 된다. 가부장제 속,  결혼이라는 제도로 맺어진 '가족'이라는 명목하에 많은 여성들이 착취당했는지 깨달은 건 불과 몇개월 전이다. 깨닫고 나니 왜 그동안은 몰랐나 싶다. 사회는 미디어를 통해, 책을 통해 가족의 이상적인 모습을 제시해왔다. 가족의 가장인 아버지는 엄격하고 근엄하며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내조하고 아버지의 말과 행동에 순종한다. 아들은 아버지를 뒤이어 집안의 대를 이어야 할 존재이며 딸은 조신하게 잘 자라 좋은 곳으로 시집을 가면 된다. 말도 안되는 소리지만 몇년 전까지만 해도 이게 맞다고 생각했고, 그래야 한다고 느꼈다.

그동안 이상적이라고 느낀 가족의 모습은 아이러니하게도 누군가의 고통과 희생의 결과였다. 그 누군가는 '엄마' 혹은 '딸'의 이름을 가진 어떤 여성이다. 신중선 작가의 소설『여자라서 행복하다는 거짓말』은 이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룬다.「정희의 시간」「꿈이었다고 생각하기엔」「노래방 여자」「반칙왕」「아내의 방」「묘화는 행복할까」 괜찮아」까지 총 일곱 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소설 속 주인공들은 엄마로, 딸로 누군가의 아내로 때로는 아버지로 등장해 가족의 부조리함을 폭로한다. 이 중 3명의 인물을 좀 더 자세하게 얘기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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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의 시간」: 정희


예민한 코를 가진 정희는 일곱 살때 겪은 성폭력 가해자의 냄새를 온 세포에 각인한다. 정희는 그 가해자가 누구인지 알고 기회가 생긴다면 지목할 수도 있었지만 마을은 사건을 덮기에 급급했다. 심지어 정희의 아버지마저도 범인을 잡으려 하지 않고 묵인해버린다. '몹쓸 일', '재수없던 일'로 넘어가려 한 것이다. 마을사람들이 애써 묻으려 했던 그 사건은 고등학생 정희가  임신해 마을로 돌아왔을 때 다시 회자된다. 집안의 수치, 마을의 수치로 손가락질 당한 정희는 마을을 도망쳐 나오고 그 날 이후 원인 모를 분노에 시달린다.

정신과 치료를 받고 원인 모를 눈물이 자꾸 흘러 일상이 어려웠던 적도 있다. 정희에겐 상처를 회복하고 가해자를 벌할 기회가 없었다. 고향으로 귀환한 정희는 이제 누군가가 자신을 대신해 벌해주길 기다리지 않는다. 직접 칼을 들고 가해자의 가슴을 붉게 물들인다. 몇십 년 동안 그가 마을을 유유히 걸어 다녔을 것을 생각하면 노인의 죽음은 통쾌하다. 이제 마을은 더이상 전병 냄새를 맡을 수 없을 것이다.



「반칙왕」: 석영


소설의 제목인 '반칙왕'은 프로레슬러로 일했던 석영의 아버지에게 주어진 역할이었다. 더 이상 반칙을 할 수 없는 몸이 된 그의 아버지는 그동안 충실하게 이행해 온 생계부양이라는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게 된다. 반칙왕이 발견한 또 다른 반칙은 버스에서 연기를 펼쳐 보상금을 받아내는 것이었다. 석영은 그런 아버지를 부끄러워하지만 한편으로는 안쓰러워한다. 석영의 아버지 역시 싫은 소리를 하면서도 매번 경찰서에 자신을 찾으러 오는 딸을 알기에 제일 먼저 석영에게 전화를 건다. 아버지를 모시고 집에 돌아왔더니 어머니는 또 어떠한가. 경매에 넘어갈 위기인 집을 위해 딸의 전세금을 빼기를 부탁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집이 경매에 넘어가고 아버지가 버스에서 저지르는 반칙의 원인은 집안의 장남, 아들이다. 아들은 집을 내놓는 문서의 도장을 강요했고, 부모는 아들을 위해 딸이 그의 보금자리를 빼기를 요구한다. 어마어마한 반칙이다. '아들이잖니', '너는 딸이니까'라는 말로 그동안 석영이 당한 반칙은 이제 정당화 될 수 없다. 석영은 자신의 집 마당을 깨부수며 반칙에 대한 경고음을 울리지만 자꾸 아버지에 대한 연민이 눈 앞을 가로막는다.



「괜찮아」: 소영


출산으로 인해 소영은 잡지사 에디터에서 엄마가 되었다. 첫 아이 승우와 얼마 차이나지 않는 터울로 둘째 현우를 출산하면서 복직에 대한 소영의 열망은 거의 사그라들었다. 독박 육아에 지쳐있던 소영은 현우가 단지 잘 울지 않는 순한 아이라고 여겼을 뿐이다. 두 돌이 지나도 말문을 열지 못하기 전까지는. 현우가 자폐 판정을 받게 된 순간 소영은 자신을 탓한다. 의사의 한마디가 마치 현우를 임신했을 때 복직과 아이를 저울질 한 자신 때문에 현우가 병에 걸렸다고 말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현우의 아빠이기도 한)남편은 아이를 두고 소영과 자신의 결혼관계 유지여부를 거래하듯 말하곤 했었다.

그 날 이후 소영의 모든 일상은 현우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복합 장애를 가진 현우에게 모든 신경을 집중하던 사이 첫째 승우는 병원비를 걱정해 가게에서 물건을 훔치고 있었다. 소영의 가정에서 소영의 일상은 없다. 세 남자들로 둘러쌓여 아내로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아들을 잘 교육시키지 못했다는, 장애아를 낳았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고통받는다. 그렇지만 소영은 '괜찮아'라고 말한다. 괜찮지 않다고 말하면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

이 세편 외에도 나머지 소설들 역시 누군가의 삶을 다루며 가족의 불합리함을 외치고 있다. 일곱 편의 소설들을 읽으면서 가장 크게 떠올랐던 생각은 소설들 모두 어디에도 없을 것 같지만 어디에도 있을 이야기들이라는 점이었다. 이제 우리는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


가족이라는 이름 하에
여성의 억압과 희생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앞으로 사회는 어떤 가족의 모습을 지향해야 하는가?


[정선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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