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食일담] 내 통장을 털어가는 작은 악마들

디저트, 이렇게 비싸도 되나요?
글 입력 2018.08.28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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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디저트는 작은 악마 같다는 생각을 한다. 당으로 나를 유혹해서 순식간에 내 돈을 털어가는 악마. 나름 아끼려고 노력하고, 꼭 먹고 싶은 것만 먹고자 하는데도 월말이면 가난해지는 내 통장에 눈을 의심하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커피 한 잔에 4-5천원이고 케이크 한 조각이 6-7천원에 이르는 현실이니 밥값보다 훨씬 웃도는 비용을 디저트로 지불하게 되는 것이다. 그럼 밥을 굶고 대신 디저트로 삼시세끼를 먹을 수는 없을까, 하고 생각한 이 당찬 디저트 애호가는 하루 종일 케이크, 마카롱, 쿠키, 초콜릿 등으로 끼니를 채운 날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속이 니글거리고 입이 너무 달아서 힘든 것은 둘째 치고, 밥으로 세 끼 먹을 때보다 더 많은 돈을 썼다는 슬픈 후일담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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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으로 디저트는 비싸다. 이는 디저트가 음식에 속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음식은 기본적으로 배를 채우는 기능을 한다는 점에서, 다른 음식들에 비해 비싸다는 말이다. 디저트의 질량이나 부피는 예컨대 대학교 학식과 비교하면 현저히 작지만, 그 가격은 학식의 두세 배에 달한다. 동전보다도 작은 수제초콜릿이 개당 2천원이고, 지름이 기껏해야 탁구공보다 조금 큰 마카롱은 개당 가격이 2천원에서 3천원대를 넘나든다. 조각케이크는 그나마 맛없으면 3-4천원, 5천원대면 그냥저냥, 좀 잘 만들었다 싶으면 기본 6천원을 넘는다. 예전에 한 고급 디저트 카페에서 봤던 조각케이크는 한 주먹 정도 되는 작은 크기에 9천원이라는 놀라운 몸값을 자랑하기도 했다.

이처럼 숫자만 보면 디저트의 가격은 굉장히 비합리적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나는 디저트를 너무 많이 사먹는 게 비합리적일 수는 있어도 디저트의 높은 가격 자체가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디저트에 사용되는 재료비가 비쌀 수도 있지만, 그보다도 디저트에 들어가는 인력과 기술을 생각해보면 높은 가격이 조금은 이해된다. 간단한 디저트 하나 만드는 것조차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깨달은 건 내가 직접 제과제빵을 하면서였다. 쿠키, 머핀, 슈 등 뭐 하나 쉬운 게 없었다. 특히 마카롱이 가관이었는데, 팔이 빠지도록 머랭*을 치고 반죽끼리 달라붙지 않게 조심해서 짜고 건조시간까지 들여가며 정성스레 구웠건만, 결과는 꼬끄*가 아닌 웬 설탕반죽 덩어리뿐이었다. 결국 필링*을 만들 엄두도 못낸 채 설탕반죽덩이를 죄다 버리며 마카롱의 비싼 값을 마음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머랭 : 달걀흰자와 설탕을 섞어 거품을 낸 것  *꼬끄 : 마카롱의 과자 부분  *필링 : 마카롱의 크림 부분

품이 많이 들어서 비싸다는 논리면, 다른 음식들도 맛있게 만들기 어려운 건 다 마찬가지라고 반박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맞는 말이지만, 그럼에도 굳이 디저트가 높은 값을 받는 또 하나의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디저트는 음식 중에서도 ‘아름다운’ 그리고 ‘아름다워야 하는’ 음식이다. 디저트에서 예술성이란 다른 음식에 비해 유독 중시되는 요소이다. 인스타그램에서 일반적인 음식 사진은 맛있어 보이는 게 중요하지만, 디저트 사진은 우선 예뻐 보이는 게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로도 디저트는 다른 음식에 비해 색감이나 형태와 같은 시각적인 요소에 신경을 많이 쓴다. 먹기 아까울 정도로 섬세하고 고급스럽게 장식된 디저트가 게다가 예쁜 그릇에 크림이나 소스와 함께 플레이팅 되어 나오면, 이건 음식이 아니라 한 점의 예술 작품을 사는 것이라 생각하며 선뜻 높은 값을 내게 된다.

그러나 디저트 역시 음식인 이상 무엇보다도 맛이 가장 중요하다. 아무리 예쁘고 아무리 품을 많이 들인다 한들 맛이 없으면 비싼 가격은 전부 거품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맛의 측면에서도 가격이 아깝지 않은 디저트들이 분명히 있다. 아까 말했던 문제의 9천원짜리 쁘띠케이크가 그런 경우였는데, 처음에는 ‘쪼그만게 뭐가 이렇게 비싸’ 하며 속는 셈 치고 사본 디저트였다. 그런데 그 맛이, 정말 태어나서 처음 먹어보는 맛이었다. 그 작은 크기에도 시럽, 크림, 시폰, 잼, 쿠키 등이 층층이 쌓여있었고, 자칫 과잉일 수 있는 이 많은 재료들이 어울려 새로운 맛의 조화를 만들어냈다. 부드러운 바닐라와 독특한 허브향, 은은한 과일맛과 쿠키의 버터 맛까지, 한 입에 디저트 코스를 즐기는 기분이었다. 좋은 재료, 적절하게 조화된 맛의 균형, 거기에 셰프만의 독창성까지 깃든 디저트라면 9천원에도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것이다.

물론 디저트의 가격이 백 퍼센트 음식으로서의 가치만을 반영한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 가격에는 사회적으로 형성된 합의가 거품처럼 끼어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떡은 비싸면 안 되지만 쿠키는 비싸도 되고, 각종 반찬이 나오는 백반보다 케이크 한 조각이 더 비싸도 된다는 식의 암묵적인 합의일 것이다. 이는 한편으로 디저트가 사치재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살기 위해 꼭 먹어야 하는 음식이 아닌, 사치스러운 음식. 그래서 때로 디저트를 소비하는 것은 디저트라는 음식보다도 그것이 주는 분위기, 기분, 미감, 혹은 디저트의 비싼 가격 자체를 소비하는 것과도 같다.

그 와중에 명백하게 돈이 아까운 디저트들도 사실 많다. 만든 지 오래되어 퍽퍽한 케이크, 입천장이 까질 정도로 딱딱한 마카롱, 미친 듯이 달거나 기름 전 맛밖에 안 나는 쿠키가 그렇다. 그런 디저트는 아무리 저렴하다 한들 단 천 원도 주기 싫다. 한편 맛은 그럭저럭 평균인데 그에 비해 가격이 너무 비싼 경우도 있다. 마치 ‘디저트’라는 이름값을 믿고 장사하는 느낌이랄까. 물론 정말 잘한다는 집 중에서도 맛이 훌륭한 건 알겠지만 내 입맛과 도무지 안 맞는 곳도 있다. 이런 곳은 높은 값을 지불할 만하기는 해도 한두 번 가고나면 더 안 가게 된다.





단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디저트에 돈을 쓰는 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디저트의 가격은 합리적이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모든 디저트가 그런 것은 아니고, 사실 많은 디저트들의 가격이 비합리적으로 높지만, 분명 디저트로서의 자부심을 지키는 그런 훌륭한 디저트들이 있다. 다만, 디저트의 가격이 합리적이라고 해서 디저트를 무분별하게 소비하는 것까지 합리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디저트는 사치품이고, 당연하게도 우리는 소비에 앞서 각자의 예산제약을 고려해야만 하니까. 다행히도 나의 통장상태는 이제 조금씩 나아지는 중이니 아마 다음 회부터는 미뤄두었던 달콤하고 즐거운 디저트 이야기로 다시 돌아올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일러스트 해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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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랑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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