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클래식을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도서]

클래식 무식자의 클래식 음악 연표 입문기
글 입력 2018.08.23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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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정직한 내용의 책일 줄 몰랐다. 이름이 연표인 건 맞지만 그래도 나는 연도별로 연결성을 부각하는 이야기를 중간중간 넣는다거나 그 연도의 대표격인 작곡가의 비하인드 스토리라도 짚고 넘어갈 줄 알았다. 그런데 이 책은 제목 그대로 거대한 하나의 연표였다. 음악 애호가였다면 뭔가 이름들만 보고도 ‘아~’ 하며 그를 통해 자기만의 이야기로 뻗어나갈 수 있겠으나 안타깝게도 학창 시절 내내 전과목에서 음악만 유일하게 반타작이었고 매번 100점 맞았던 국어 모의고사에서조차 음악 지문만 나오면 틀렸던 전적이 있는 사람인지라 그 쪽으로는 아는 게 없다. 그렇기에 나는 이왕 본 이 책을 어떻게 활용할 지 고민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아마 나와 같이 이 책과 친해지는 데에 어려움을 겪고 계신 잠재적 독자가 계신다면 참고해보셔도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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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래의 클래식 감상을 위한 준비

과거가 쌓여서 현재가 되고 미래가 되는 것이다. 전체적인 흐름을 알면 클래식 음악 자체를 보다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감상을 위해선 사전에 준비를 해야 한다. 교양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클래식 음악 연주회 몇 번쯤은 가 봐야 할 텐데, 그럴 때 꾸벅 꾸벅 졸고만 나와선 안 되지 않겠는가? 뭐든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므로 연주회 전에 이 음악은 어떤 시대적 특징을 갖고 있으며 그 곡을 작곡한 이가 동시대의 누구에게 영향을 받았을 지 정도는 알고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연주회에서 음악을 듣고 나서 누군가 오늘 뭘 들었고 어땠냐고 물어 보았는데 “피아노로 뭔가 익숙한 곡을 연주하긴 했는데 뭔지는 까먹었고 그냥 잔잔해서 좋았어~” 라고 대답한다면 단순히 분위기 좋은 곳의 푹신한 의자에 앉아 한 두시간 에어컨 바람 쐬고 온 거랑 다를 게 없다. 적어도 “모더니즘 시대의 노래라서 그런지 작곡가 쇤베르크의 개성이 뚜렷하게 느껴지더라. 저번에 들었던 라흐마니노프와 동 시대 사람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아.”
정도의 대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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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음악 애호가들과의 친목 도모

다들 어색한 자리에서 이름만 아는 것들의 이야기가 나왔을 때 대충 내용을 짐작해서 대화에 끼어들었던 경험이 한 번쯤은 있었을 것이다. 나 같은 경우는 중학교 때 도서부였기에 매일 점심시간에 책 정리를 했는데 덕분에 요즘 친구들이 많이 읽는 책은 무엇인지, 꼭 읽어야 하는 고전 명작은 무엇인지 그 제목만큼은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더군다나 책 뒤에는 으레 간략한 줄거리가 적혀 있어서 자주 보는 책들은 내가 읽어본 적 없더라도 자연스럽게 제목과 줄거리를 외우게 되었고 이렇게 얻게 된 넓고 얕은 지식을 통해 국어 선생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음악사도 마찬가지이다. 솔직히 나는 아직도 베토벤과 바흐와 같은 유명하신 분들 까지만 아는 데다가, 그들의 곡 느낌 차이도 구분하지 못한다. 그래서 ‘클래식 음악 연표’를 처음 읽었을 때 생소한 이름이 너무 많아서 머릿속이 잠시 혼란스러웠다. 클래식의 세계란 역시 우주처럼 넓음을 다시 한 번 실감할 수 있었다. 이 무한한 세계 속에서 아는 이름 두 세 개쯤 댈 수 있다면 얼마나 반갑겠는가.

소개팅 자리에 나왔다고 가정해보자. 소개팅이 싫다면 단순히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자리라고 설정해도 좋다. 어쨌든 그 자리에 놀랍게도 내 이상형이 서 있는 것이다! 그럴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상형과 좀 더 친해지기 위해 어떻게든 교집합을 찾아내려고 애쓰게 된다. 취미가 무어냐고 물었을 때 만약 그 사람이 클래식 음악을 듣는 것이라는 대답을 했다면? 나도 그렇다고 대화를 이어 나갔을 때 누구를 제일 좋아하냐는 질문에서 모짜르트라고 답하게 된다면 대답을 급조한 게 상당히 티가 나버린다. 적어도 “낭만주의 시대에 활약했던 멘델스존의 가곡이 취향에 맞더라고요” 정도의 대답은 해야 이상형의 흥미를 끌 수 있지 않을까? 꼭 그런 경우뿐 만이 아니라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그 작곡가 바로크 시대 사람 맞죠?” 하며 아는 척 할 수 있다면 누구와도 원활한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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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넓어진 음악 선택지

우리는 살면서 꽤 많은 음악과 함께한다. 의식하지 못했더라도 까페에서는 항상 음악이 틀어져 있고 텔레비전 속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끊임없이 음악이 흘러나온다. 클래식도 물론 예외가 아니다. 생각처럼 연주회에 가서 듣는 것만이 우리가 클래식과 만날 기회의 전부는 아니다. 나 같은 경우는 취미로 시작해서 이젠 알바로서 영상을 편집하는 일을 하는데 이 영상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바로 배경음악이다. 뒤에 음악이 깔려있지 않은 영상은 속이 없는 찐빵이나 다름없다. 이 음악을 선택해야 할 때 나는 많은 고민을 한다. 어떤 음악을 선택해야 영상의 내용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까 검색을 거듭하고 아는 음악적 지식을 총동원한다. 이 때 만약 아는 클래식 음악의 개수가 늘어난다면 내 선택의 시간을 단축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음악의 특징을 더 많이 파악하게 되었기에 보다 잘 어우러질 수 있는 음악을 선택하게 될 수도 있다. 영상을 만드는 일에만 해당되는 상황이 아니다. 식당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나 라디오를 진행하는 DJ, 아침마다 조깅하는 사람들도 본인에게 맞으며 그때 그때의 분위기나 느낌과 맞는 클래식 음악을 선택하기 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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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구석구석 살펴 보면 엮은 이의 애정이 가득 담겨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세심하게 앞 뒤 날개에 주요 작곡가의 연표를 보기 좋게 따로 정리해 놓은 것도 그렇고 인물, 시기, 장소 모두를 빠짐없이 기록한 부분도 그렇다. 우승이나 초연 시기, 관련 책 출판 시기까지 꼼꼼하게 챙긴 이 연표를 엮은 이는 클래식 음악을 정말 사랑하는 게 분명하다. 사랑이 아니고서는 이럴 수가 없다. 그만큼 이 책은 제 진가를 발휘하지 못하고 라면 받침으로 쓰이기엔 참 아까운 책이다. 나는 단지 세 가지 활용 방법만 발견할 수 있었지만 분명 다른 사람들에겐 더 많은 방식이 존재하리라 믿는다. 손바닥만한 크기의 책 속에 담긴 1500년의 클래식을 찾아내는 작업은 누구에게나 즐거운 과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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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음악 연표
1500년부터 현대까지

김동연 엮음
Franz 프란츠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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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혜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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