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다시 한번 별을 바라보게 되었노라 ,『보이는 어둠』 [도서]

그래서 우리 빠져 나왔도다, 다시 한 번 별을 보게 되었노라.
글 입력 2018.08.22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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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은 어느 순간 나를 덮쳐온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이후로 우울증에 대한 책을 본 건데, 다가오는 의미가 다르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을 읽을 때는 우울이라고는 느껴보지 못했을 때이다. 이후 갑자기 찾아온 우울이 나를 덮었을 때 이 책을 읽으면서 울기도 많이 울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무기력에 시달리고 있으면서도 꾸역꾸역 책을 넘겼다. 이 짧은 100페이지의 책에서 내가 힘을 얻을 수 있을까에 대해 의심이 들었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받고 싶다는, 조금이라도 뭔가 나아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들어가기 전에 이 책은 작가의 우울증 회고록이다. 그는 불우한 유년시 절을 보냈다. 그의 어머니는 유년 시절에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우울증을 앓았다. 이때의 영향으로 그는 우울증을 앓게 된다. 우울증을 앓은 사람이 우울증에서 벗어나기까지의 시기를 회고한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의 깊은 내면까지 묘사한다.



우울이 그를 삼키다 : 증상


우울증 초기 증상은 아침에 정도가 심해서 일어날 수조차 없다가 해가 저물어가면서 점차 나아진다고 하지만, 작가는 아침에는 정상적이었다가, 정오부터 침울함이 슬금슬금 다가왔다고 한다. 무기력, 어느 순간부터 그는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상을 받는데도 그는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무기력함만 느낀다. “육체적 심리적 혐오-뭐라고 규정하기는 힘들지만, 자부심의 상실 같은-는 우울증의 가장 보편적인 증세였다. 병이 진행되면서 나는 나 자신이 무가치하다는 느낌으로 인해 점점 고통받았다.” 라고 회고한다. 무기력, 이라는 단어는 내가 평소에는 그냥 쓰는 말이다. 아무 것 도하기 싫을 때 가볍게 쓰는 단어였다. 막상 깊은 무기력을 경험한다면 이 단어가 얼마나 깊이가 있는 단어이고, 절대로 경험하고 싶지 않은 단어가 된다.


모든 형태의 상실감은 우울증의 시금석이다. 이 병의 진행과정과 근원이 되는 것이 바로 상실감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시달리고 있는 장애의 근원이 유아시적에 경험한 상실감이라는 것을 점차 수긍하게 되었다. …(중략)… 나는 자부심과 더불어 자아 감각을 거의 잃어버린 상태였다.


우울증 환자에게 무기력과 함께 언급되는 단어가 있는데 바로 ‘상실감’이라는 단어다. 상실감이 우울증의 시금석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그리고 상실감으로 우울증이 찾아온다고도 생각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자신감의 상실 등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린 허탈감을 느끼고, 사람들이 자신이 버려질까 봐, 자기를 떠날까봐 두려워한다. 상실감은 우울증의 매 단계 지속된다. 무기력을 느끼고, 자살을 생각하고, 마지막에 이르러 미래에 대한 생각뿐만 아니라 모든 희망이 다 사라져버린다. 구원에 대한 신념, 궁극적인 회복에 대한 신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앞으로 더 나아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앞으로의 희망을 모두 잘라버리는 끔찍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읽다가 인상 깊었던 부분이 있었는데, 우울을 나타내는 단어의 미묘한 차이에 대한 부분이었다. 원래는 멜랑콜리아(melancholia)라는 이름으로 불렸지만, depression이라는 단어로도 불린다고 한다. 영어 뉘앙스의 차이인지는 잘 모르지만, depression이라는 단어는 경기 침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서 depression을 그저 ‘힘들고 어려운 시기’로 여길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직은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인생의 힘든 시기, 어려운 시기, 노력만 하면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너만 힘드냐?”라는 말로 상처 주기도 한다. 사실, 이 말은 우울증이 아니더라도 힘들어하고 있는 사람이 들었을 때도 정말로 기분 나쁜 말이다. 내가 이 말을 들었다면 아마 그 사람한테 마음의 문을 닫을 것이다. 이 말이 가장 상처를 주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우울상태의 호전


책의 초‧중반에서는 우울증에 대한 증상들에 관한 설명이 주가 이루었지만, 후반에서는 작가가 우울증에서 벗어나는 과정, 작가의 희망적인 말이 적혀있다. 작가는 자기의 유년 시절부터 자신의 곁에 있었다고 한다. 그는 어머니의 죽음과 부재로 정신이 황폐해졌다고 고백했다. 그의 고백을 들으면서, 나도 나의 우울함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기억을 더듬었다. 어느 순간부터 계속되는 실패와 좌절로 자신감을 상실했고, 세상과 신앙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면서 우울함이 시작된 것 같다. 희망찬 글을 쓰고,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밝게 옷을 입고 살았지만, 어느 순간 무채색의 옷을 즐겨 입고, 비관적이고 우울한 내용의 글을 쓰고, 보기만 했다. 어쩌면 그때부터 우울함이 내 몸을 서서히 휘감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내가 몰랐을 뿐.

**

이 책을 읽으면서 멀리서 보는 우울증이 아니라 한 개인이 느끼는 처절한 우울증을 보게 되었다. 무기력에서도 기록하려는 작가의 불굴의 의지가 느껴진다. 대단하다고 밖에 설명할 수 없다. 작가는 우울증을 극복하려는 노력에 초점을 두지 않는다. 누구의 책임으로도 돌리지 않는다. 무책임한 위로의 말보다는 자신도 그랬듯, 누구나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마지막에 던진다.


E quindi uscimmo a riveder le stelle.

그래서 우리 빠져 나왔도다,
다시 한 번 별을 보게 되었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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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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