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여성이 연기할 때 작품은 새로워진다, '비평가' [공연]

신선하고 명확해진 연극 '비평가' 재연 : 미로의 설계도를 제시하다
글 입력 2018.08.21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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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10년 만에 신작을 발표한 작가 스카르파는 공연 첫날 관객이 15분 동안 기립박수를 치는 성공을 거두고 10년 전 자신의 작품에 혹평했던 원로 비평가 볼로디아를 찾아간다. 다짜고짜 자신의 집에 쳐들어와 작품에 대한 비평을 쓰는 모습을 지켜봐야겠다고 우기는 스카르파에게 볼로디아는 성공을 자축하며 파티를 벌일 것을 권하며 집에서 내보내려 하지만, 스카르파는 요지부동이다. 결국 스카르파가 보는 앞에서 그의 작품에 대한 비평을 쓰게 된 볼로디아는 10년 전에 이어 작품에 대한 혹평을 적어준다. 스카르파의 신작과 연극의 본질에 관해 묻는 두 사람의 극렬한 언쟁이 시작되고, 볼로디아가 거짓됐다고 표현한 스카르파의 작품 속 여인에 대한 진실은 논쟁의 방향을 바꾼다.


작가와 비평가. 상호보완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상당히 껄끄러운 존재이기 쉬운 관계의 두 사람이 한 공간에서 만난다. 장소는 비평가의 작업실. 10년 전 모두가 호의적인 평가를 보냈던 작가의 첫 작품에 유일하게 혹평을 했던 원로 비평가와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작품을 내놓지 못하다가 마침내 신작을 발표한 작가. 이들의 만남이 이루어진 작업실이 격렬한 논쟁의 장이 되리라는 것은 누구든 쉽게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서로 신경전을 벌이며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며 대화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형식 또한 남성 2인극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형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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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흔하다면 흔한 이러한 구조를 연기하는 배우가 두 명의 여성 배우라면 상당히 많은 점이 달라진다. 우선 우리는 이제까지 여성 2인극을, 그것도 서로 팽팽히 맞서며 긴장감을 조성하는 형태를 쉽게 접하기 어려웠다. 대개 이러한 구조는 신체적, 사회적으로 권력의 우위에 있는 남성들에게만 주어져 왔다. 보통 상대방의 논리를 꺾으려는 말싸움을 벌이는 경우 그 주체가 소위 지식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작품 속 지식인들은 대부분이 남성이었다. 역시 두 명의 남성 지식인을 남성 배우들이 연기했던 초연이 재연에서는 두 명의 여성 배우가 이들을 연기하는 것으로 바뀌면서, 관객은 이 특별할 것 없는 구조를 신선하게 느끼게 된다. 여성 배우 두 명만 등장하는 연극에서도 언어와 사유를 통해 벌이는 지적인 싸움이(가운데 남성을 놓고 서로 애정을 갈구하는 형태가 아니라) 가능하다는 것을, 여성 배우들도 작품을 이끌고 갈 능력이 충분하다는 것을, 온 공연장을 그들의 존재감으로 가득 채워 100분이라는 시간을 몰입하게 할 여성 배우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내가 노래할 줄 알면 나를 구원할 텐데"


극 중 여러 번 등장하고 작품의 부제이기도 한 "내가 노래할 줄 알면 나를 구원할 텐데"는 자신의 주체성을 찾기를 원하는 한 여성의 말이자 극중극인 스카르파의 작품 속 여인의 대사이기도 하다. '비평가'의 작가 후안 마요르가는 스카르파의 작품에 대한 볼로디아의 비평이 적합한지부터 연극의 진실, 연극이 추구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를 두고 싸우는 두 지식인의 논쟁을 한 여인의 등장과 위의 대사를 통해 마무리한다. 스카르파를 통해 작품 속 여인의 정체를 알게 된 볼로디아는 연극의 진실에 대해 역설하던 자신이 정작 진실과 거짓을 혼동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작품의 초중반, 메타연극(연극의 본질을 묻는 연극)의 흐름으로 나아가던 이 연극이 무대 위에는 등장하지도 않는 한 여인의 등장으로 극적 반전을 맞이하는 이 전개를 두고 스카르파의 2막을 두고 한 볼로디아의 신랄한 비평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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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연에서 두 인물을 여성 배우들이 연기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그들은 남성 캐릭터로 존재한다. 그들은 각각 자신의 분야(작가와 비평가라는)에서 그 실력을 인정받은 지식인들이다. 그러나 진실로 존재하는 여성을 거짓이라고 단언해버리는 우를 범한 볼로디아는 말 할 것도 없이 스카르파 또한 여성을 이해하는 데 한계를 가지고 있음이 극의 곳곳에서 보여진다. 스카르파는 극중극의 권투장면을 재현하며 나이 들어 재빨리 움직이지 못하는 볼로디아를 할머니라고 조롱한다. 또한 그들의 대화 속의 멍청하고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진 사람들은 모두 여성으로 표현된다. 볼로디아에게 그의 비평이 자신의 '빵'을 빼앗아 갔다고 말하는 배우의 부인(이 여성은 명예보다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그에게 분노한다. 또한 누군가의 아내라는 직위로만 극 중에 등장한다.), 스카르파의 대본을 잘못 이해하여 극 중 여성을 정신착란증 환자로 연기했다고 매도당하는 여성 배우 등이 그렇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여성이 자유와 주체적 삶을 소망하며 자신만의 노래를 찾아 헤매게 했다는 데서 원작자가 대화를 통해 여성을 비하하는 두 남성 지식인의 한계를 보여주려 했다고 짐작할 수 있지만, 볼로디아에게 작품 속 여성의 진실함을 역설하는 스카르파 역시 그에 동참하고 있다는 데에서 과연 이런 점을 관객들이 잘 발견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더군다나 두 사람의 논쟁이 그들의 입을 통해서만 보여지는 여성 인물로 인해 극적으로 해소된다는 점은 또다시 여성 캐릭터가 도구적으로 소비되었다는 느낌을 지우기가 어렵다. 연극의 후반부 속 여성 캐릭터의 한계를 지적하는 극 밖의 이 비평이 스카르파의 연극 2막을 비판한 볼로디아의 비평과 연결되는 것이 작가의 의도였다면 관객에게 너무 모호하고 어려운 길을 들이민 것은 아닌지 지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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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아쉬움은 재연에 들어 여성 배우들이 남성 캐릭터를 연기함으로써 상당 부분 해소된다. 남성 2인극이라는 구성과 연극과 극 중 극을 잇는 오이디푸스 메타포(아버지-아들, 스승-제자, 비평가-작가를 잇는 남성들만의 연대와 도약)라는 고전적인 구조의 진부함은 여성 배우들이 남성을 연기하면서 상당 부분 해결되었다. 또한 현실적 억압 아래서 맨발로 돌아다니며 자유를 찾고 싶어 하는 여성 캐릭터는 남성 캐릭터를 연기하는 여성 배우의 존재와 연결되며 그 존재감과 가치를 증폭시킨다.

공연을 보는 동안에도, 보고 나와서도, 리뷰를 쓰기 위해 프로그램 북을 살펴보고 각종 정보를 검색하고, 머릿속으로 정리하고, 글로 작성하는 와중에도 상당한 골머리를 앓았던 관객이자 초보 비평가로서, 획기적이면서도 작품에 잘 부합하는 시도를 해준 재연 창작진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덕분에 정교하게 설계되어 더욱 맞추기 어려웠던 퍼즐의 도안을 찾아낼 수 있었다.





비평가
- 연극창작의 본질을 묻는 메타 연극 -


일자 : 2018.08.17(금) ~ 09.01(토)

시간
평일 8시
주말 4시
월요일 쉼

장소 : 두산아트센터 Space111

티켓가격
전석 30,000원

제작
극단 신작로

기획 : 두산아트센터, K아트플래닛

관람연령
만 13세 이상

공연시간
100분




문의
극단 신작로
02-742-7563





극단 신작로


극단 신작로는 '우리 삶의 조건과 풍경을 연극적으로 이해하기'라는 모토 하에 2007년에 창단되었습니다. 단체명인 '신작로'는 신작의 발굴과 새로운 연극 언어 개발에 노력하고자 하는 단체의 정신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지난 10여 년 간 극단신작로는 사회적 시의성과 연극의 실험성을 접목하여, 작품의 내용뿐만 아니라 공연 형식에서도 주제를 반영하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특히 2인극의 공연형식에서 꾸준한 성과를 보였습니다.  <비평가> 역시 2인극이자 메타연극이라는 특별한 형식의 작품으로서, 그간 신작로가 축적해 온 2인극의 창작 역량이 다각도로 발휘된 작품이라 할 것입니다.





<상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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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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