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작가 알아가는 시간 - 황정은] 덧없고, 하찮을지라도 [도서]

하나를 더하며 계속될 것입니다 - 책 "계속해보겠습니다"
글 입력 2018.08.18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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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황정은을 읽지 않는다면
처연하게 아름다운 세계를 놓치고 있는 것이다

_출판사 서평


애자는 말했다.

아무래도 좋을 일과 아무래도 좋을 것.
살아가려면 세계를 그런 것으로 가득 채우는 것이 좋다고.
필멸, 필멸, 필멸일 뿐인 세계에서 의미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그러니 애써봤자 고통만 늘릴 뿐이라고.

엄마 애자는 그렇게 어린 딸 소라와 나나를 붙잡고 말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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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답하는 책이다. 그런 애자의 물음에, 세상의 물음에. 애자는 자꾸 달라붙어 속삭인다.

허망한 것. 그게 인생의 본질이라고. 그러니 무엇에도 애쓸 필요가 없다고. 의미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그런 아주 달콤한 말을 한다.

그것을 살면서, 이들의 삶으로서 반박하고 증명해가는 두 자매 소라와 나나 그리고 나기의 이야기다. 아니 반박보다는 이제는 행복해지고 싶은 이야기라고 말하고 싶다.

책은 소라(小蘿)와 나나(娜娜)와 나기(鏍基)의 이야기로 나뉘어 있다. 이들은 차례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독특한 건, 우리가 제삼자로서 그들을 보는 것이 아니라 단둘이 있는 공간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친밀함이 든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소라의 이야기는 "내 이름은 소라"라고 하며 시작한다든지. 그럼으로써 나는 때때로 그들이 안타까웠다가 서글펐다가 이내 사랑스러워진다.



애자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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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애자의 말은 꽤 일리 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도 충격이라는 걸 적게 받을 것 같다. 기대는 버렸으니까. 세상에 무엇을 크게 바란 적이 없으니까. 상처도 덜하겠지.

우리는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말도 안 되는 일을 겪어왔고, 지금도 겪고 있다. 많은 허망한 죽음을 목도했다. 권선징악처럼 악인이 심판받는 그런 죽음이 아니라 너무 열심히 산 사람이었고,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고, 어떤 죄를 지은 것도 없는 해맑은 아이들이었는데도 불구하고 허망한 죽음을. 그걸 겪은 사람들은 아주 아팠을 거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했을 수 있겠지. 다 부질없다고. 인생이란 모두 허망한 것이라고.

왜냐면 애자가 겪었기 때문이다. 남편인 금주 씨가 공장에서 일하다 거대한 톱니바퀴에 말려들어 상반신이 갈려 나왔다. 쉬지도 않고 열심히 일하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죽음을 겪은 뒤 세상은 부질없어졌다. 사랑으로 가득하던 세상은 터져버렸다. 애자도 함께 망가져 버렸다. 열심히 일하면 좋은 날이 온다고? 그건 다 개소리. 그 뒤부터 시작된 것이다. 어린 소라와 나나를 붙잡고 애쓰지 말라 한 것이.

그래, 애써도 애쓰지 않아도 세상은 매정하게도 굴러간다. 버스처럼 잠시 멈췄다가도 이내 배경들을 뒤로하며 굴러간다. 못 탄 사람들은 남겨두고. 여전히 거기에 있는 사람들도 있는데 말이다. 그런 세상의 입장에 비해 사람은 덧없고 하찮은 게 맞을 것이다. 애자의 말처럼.



소라나나나기

자매의 어린 시절 얘기를 해보려 한다.

소라와 나나는 모든 것에 의욕을 잃은 애자 밑에서 자랐다. 사실 밑에서 자랐다하기도 뭐할 정도다. 두 자매를 키운 건 8할이 나기의 엄마 순자 씨기 때문이다.

다 쉰밥을 먹을 만하지 않냐고 스스로 세뇌하며 먹고 있던 두 자매 곁으로 와 자신의 반찬과 바꿔먹자던 옆집 아주머니. 정 많던 나기의 엄마. 두 자매의 유년 시절에 그녀가 있어 다행이었다. 나기가 있어 다행이었다. 옆집과 자매의 집에 벽이 있어 다행이었다.

그 벽이 무엇이냐고. 그 벽은 기묘한 벽이었다. 금주 씨가 죽고 애자와 새로 이사 온 곳은 하나의 벽을 두고 한쪽엔 화장실이, 한쪽엔 현관이 있어 각자의 집을 한 개씩 가진 것이 아니고 반씩 나눠 쓰는 집이었다. 이상한 구조. 그래서 그 벽을 통해 서로의 집을 넘나들 수 있었다. 그러니 서로의 집안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게 되었다. 그렇게 자매를 이 세상에서 성장시킨 건 엄마도 정부도 아닌, 가난한 손이었다. 자신도 먹고살기 힘든 지독히 가난한 손. 그럼에도 아침마다 나기의 도시락뿐 아니라 소라와 나나의 도시락까지 세 개를 만들어냈다. 그렇게 함께했다. 세상 입장에서는 살아있었는지 죽었었는지 모를 작고 하찮은 존재들이었으나 그 시절, 그리고 지금까지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었다.



묻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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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는 어릴 때 나기한테 뺨을 맞은 적이 있다. 나기네 집 수조에 담긴 금붕어를 괴롭혔던 일.


손바닥을 활짝 펴서 나나의 뺨을 때렸습니다.
한 대만으로 그치지 않고 몇 번이나 힘껏, 힘껏.
아파? 오라버니는 물었습니다.
아프냐고 재차 묻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런데 나는 아프지 않아.
내가 너를 때렸으니까 너는 아파.
그런데 나는 조금도 아프지 않아.
전혀 아프지 않은 채로 너를 보고 있어.
그럼 이렇게 되는 건가?
내가 아프지 않으니까
너도 아프지 않은 건가?
하지만 너는 아프지, 그렇지?
금붕어를 건드릴 때 너는 아팠어?
고개를 저었습니다.

같은 거야, 라고 오라버니는 말했습니다.
너하고 저것하고, 같은거야.
기억해둬,라고 오라버니는 말했습니다.

이걸 잊어버리면 남의 고통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는 괴물이 되는거야.

p. 130


세계를 아무래도 좋을 일과 아무래도 좋을 것으로 가득 채우는 것. 그건 곧 누군가의 외로움에, 누군가의 아픔에 상관없는 세상이 되는 거겠지. 그런 세상을 상상하면 갑자기 너무 외로워진다. 많이 슬플 것 같다. 그랬다면 소라도 나나도 없었겠지. 이미 그 어린 시절 쉰밥을 먹으며 죽어버렸을 테니까.

나기의 괴물이라는 말을 생각해본다. 그리고 묻는다. 나는 잊지 않았나 하고. 그러자 갑자기 뼛속부터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미 그런 세상에 살고 있었는지도 몰라서.

내가 중학생일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던 아이. 나도 여느 아이들처럼 방관했다. 그 아이 곁에 있으면 나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하고 그냥 피했다. 그 아이를 동정하면서 내심 마음속으로 나는 그렇게 되지 않을 거라는 이기심이 있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언젠가 내가 왕따를 당했을 때 알았다. 아무렇지 않아 보여도 마음속으론 이 시간이 얼른 지나가길, 누가 날 좀 도와주길 제발 바랐다는 걸. 나는 내 고통에 많이 아팠다. 참 간사한 입장인 게, 난 내 고통에만 아파했다는 것이다. 모두가 다 그러니, 나 하나쯤도 괜찮을 거라는 그 생각이 얼마나 나쁜 짓인지 겪지 않았을 땐 몰랐다.

어디서부터 그런 이기심이 싹텄던 걸까. 어린 시절 놀이터에서 개미가 보이면 밟고 놀았던 그때였을까. 우리가 별거 아니다, 보통이라 생각하는 것들에는 얼마나 많은 오류가 들어있는 걸까. 어디서부터 고장 났고 어떤 뿌리에서부터 썩었던 걸까. 그리고 그 썩은 걸 왜 우린 보려조차 하지 않았을까. 그러니 거기 계속 있지. 계속 있으면서 자랐지. 그렇게 시간이 갈수록 ‘척’만 배웠지 실은 남의 고통이 내 고통은 아니라고 여겼겠지. 그것이 다른 무엇보다도 그들을 더 작고, 약하고, 외롭게 만드는 거였다.  난 괴물이 되고 있었던 걸까.

나와 상관없다는 식의 세상. 너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 아니고 나의 고통이 너의 고통이 아닌 세상. 그건 정말이지 쓸쓸한 일일 것이다.



대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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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가 애자의 말에 대답한다.


인간이란 덧없고 하찮습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사랑스럽다고 생각합니다.
그 하찮음으로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으니까.

한편 생각합니다.

무의미하다는 것은 나쁜 걸까.
소라와 나나와 나기 오라버니와
순자 아주머니와 아기와 애자까지
모두, 세계의 입장에서는
무의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의미에 가까울 정도로
덧없는 존재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소중하지 않은 걸까,
생각해보면 도무지 그렇지는 않은 것입니다.

p.227


세상의 입장에서 인간은 덧없고 하찮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래, 우리는 너무도 작은 존재다. 근데 그렇기 때문에 아무것에도 애쓰지 말라 한다면, 그럼 그건 무엇일까. 어떤 세상인 걸까. 나는 어떤 상태인 걸까. 마찬가지로 아무래도 좋을 걸까.

그건 부정한다. 그런 건 싫다. 내가 이렇게 하찮은 존재여도 나는 꾸역꾸역 살아가고 싶다. 덧없고 하찮게. 아무도 있는 줄 모르고 특별하게 여기지 않는 발광이겠지. 그러나 해는 계속될 것이고, 우리의 이야기도 계속될 것이다. 그러다 보면 하찮은 인생도 하나를 더할 때가 있겠지. 가치가 있을 때가 있겠지. 그걸로 됐다.

계속되고 있는 생명.
계속되고 있는 사랑.
계속되고 있는 인연.

계속되고 있으니 그리 하찮은 것만은 아니겠지. 더불어 다짐한다. 우리끼리는 하찮아하지 말자고. 우리끼리라도 사랑스럽게 봐주자고. 약하고 외로운 존재가 되게 하지는 말자고.


*


글을 닫으며.

우리는 부조리한 사회 속에서 살고 있고, 하루에도 수십 개의 화살이 누군가를 쏴 맞힌다. 현재 현대문학에서 이러한 현실을 깊은 통찰로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황정은이라 생각한다. 무심하면서도 담담하지만, 그 속에 날카로움을 담는 말투는 그녀 특유의 화법이다. 난 그 화법을 사랑한다.

사실 난 황정은의 책을 애정하면서도 무서워한다. 그녀가 어떤 이야기를 해줄지 궁금하면서도, 그것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늘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내 구석에, 있는 줄도 몰랐던 부분을 후벼 파서 현실을 직시하게 만든다. 이번에도 물론 그랬고. 그렇기에 그녀의 글을 읽지 않을 수 없다. 지나칠 수 없다.



작가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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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황정은은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소설’, ‘올해의 문제소설’에 선정되고, 한국일보 문학상, 이효석문학상 등 굵직한 문학상 후보에 오르는 등 발표하는 작품마다 문단의 큰 주목을 받아온 작가다. 197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장편소설 『百의 그림자』『야만적인 앨리스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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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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