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뚱뚱한 여자의 아름다움을 모르는 당신이 불쌍해 [전시]

나나가 아름다운데, 내가 아름답지 못할 이유가 있나요?
글 입력 2018.08.13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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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그 사진]


‘니키 드 생팔’ 전시장은 사진 촬영이 가능했다. 신나서 사진을 무지하게 찍었고 핸드폰을 새로 산 지 얼마 안 된 터라 갤러리에는 전시 작품 사진이 가득했다. 내 남자인 친구가 핸드폰을 구경한답시고 갤러리를 봤을 때 걔가 본 건 나나 조형물이었다. 그리고 내게 잊지 못할 한 마디를 남겼다. “너무 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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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는 사실 이론적으로는 야해 보일 수 없는 구조를 지녔다. 내 친구의 이상형은 단 세 가지이다. 하얗고, 쌍커풀이 짙고, 마른 체형. 여기서 나나에게 부합하는 조건은 하얀 피부색뿐이다. 심지어는 검은 피부의 나나도 있지만 말이다. 우리는 흔히 마른 체형을 미의 기준으로 삼는다. 국내 최대 규모인 포털 사이트 ‘네이버’의 연예 기사 댓글 창을 보면 꼭 몸매 평가가 존재한다. 걸그룹의 모 멤버가 살이 쪘나, 안 쪘나로 싸움이 붙기도 하고 단순히 그들의 몸매만으로 그의 활동 기간을 가늠하는 이들도 많다. 비단 연예인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뚱뚱한 사람들은 대개 자기관리를 못한 사람으로 취급되며 특히 여성의 경우 살집은 곧 여성성의 상실로 대변된다. 이것은 구글에 ‘살찐 여자’라고 검색할 때 상위에 노출되는 제목들을 보고서도 짐작할 수 있는데, 그 내용을 보면 대충 ‘뚱뚱한 여자는 한심하며, 섹스 어필이 되지 않아 만날 수 없다’는 것들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내 친구는 나나를 야하다고 했다. 야하다는 것은 우선 이성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음을 전제로 한다. 분명 많은 사람들이 뚱뚱한 여자를 생각하면 전혀 성적으로 끌리지 않는다고 말했는데도 뚱뚱한 데다가 심지어는 형태도 두루뭉실한 나나에게서 여성성을 느낀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어떤 나나들은 심지어 완전한 사람의 상태도 아닌 굴곡 만을 강조한  것들이지만 사람들은 이 작품이 여성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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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은 아름답고 그렇기에 모든 여성 또한 아름답다. 세상 속 미의 기준은 결국 주관적인 것이다. 요컨대 이렇다. 데카르트의 유명한 말,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명제에서부터 출발해보자. (이것은 나의 생각이고 데카르트와는 만날 수가 없어서 아쉽지만 의견의 합치를 물을 수는 없었다.) 모든 것은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 존재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주체적인 내가 그 존재의 가치를 인식할 때부터 그 어떤 것들은 세상에 있을 수 있다. 나 같은 경우는 10년간 같은 동네에서 살았지만 관심이 없어서 본인 동네의 정형외과 위치도 최근에 알았다. 대강의 위치는 알았지만 막상 기억해 내려니 어딘지 머릿속에 존재 하지가 않더라. 즉, 내 세상 속에 정형외과는 사실 없던 것과 다름 없는 것이다. 결국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은 인식의 주체인 나인 것이고 그 말은 내 세상 속 미의 기준 또한 각각의 ‘나’가 되는 것이다. 세계 제일의 추녀, 추남이라고 손꼽히는 사람일지라도 누군가의 세상 속에 그 사람은 미남, 미녀일 수 있다.

뚱뚱한 여자는 게으르다고 한다. 맞을 수도 있다. 내가 살면서 제일 살이 쪘을 때는 남자친구와 1년 정도 사귀었을 때였다. 여유 시간만 되면 걔를 만나야 해서 운동할 시간이 사라졌고, 걔를 만나면 무조건 열량 높고 양 많은 외부 음식을 먹게 되었다. 내가 남기기라도 하면 남자친구는 떠먹여 주면서까지 내가 먹지 않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사랑했으니까 그랬을 테지만, 그 사랑은 나의 마음과 더불어 내 몸까지 살찌웠고 그 1년간 나는 거의 10kg가 쪘다. 그리고 그와 헤어지고 나는 마음고생과, 더불어 원래의 생활 패턴으로 돌아가게 될 수 있었고 그 10kg를 한 달 사이에 고스란히 뺄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 1년간의 나는 단지 게으른 것인가?

살이라는 것은 신기하다. 과식하지 않고 운동도 한 시간씩 하고 열심히 일과를 보낸다 하더라도,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산다면 나는 결단코 이상적인 몸매가 될 수 없다. 마르고 탄탄한 몸에서 필수적인 것은 일반 식을 포기하는 것이고 때로는 음식의 완전한 포기가 되기도 한다. 다이어트를 한 적이 있다. 누구나 한 번쯤은 해본 적 있을 것이다. 내가 맨 처음 시도한 것은 하루 섭취량을 줄이는 일이었다. 그런데 맛 없는 풀 쪼가리는 먹고 싶지가 않아서 무식하게 양을 확 줄여 버렸다. 귀찮다는 핑계로 점심 혹은 저녁을 걸렀다. 그런 내게 찾아온 것은 예민함과 없어지는 머리카락이었다. 미용실에 갈 때마다 숱이 많아 쳐 내야 한다는 말을 무조건 들었으나 다이어트를 한지 이주 정도 지난 뒤로부터 나는 내 머리카락이 많이 사라졌음을 실감했다. 타인에게 짜증을 부리는 일이 잦아졌고 감정 기복이 심해져 이유 없이 눈물을 흘릴 때도 있었다. 현기증이 난다거나 머리가 핑 도는 일도 생겼다. 그걸 인식한 순간부터 미친듯이 영양제를 찾아 먹었다. 빠지는 머리카락에 좋다는 비어헤페, 어성초환 뿐만 아니라 종합 비타민까지 거금을 들여 구입했다.

그렇지만 역시 가장 큰 효과를 본 건 밥을 먹는 거였다. 나는 건강을 포기하면서까지 마르고 싶지는 않았다. 혹자는 내 다이어트 방법이 문제가 된 것일 뿐이라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역시 빠른 시일 내에 가장 큰 효과를 보는 방법이 ‘안 먹는 것’ 임은 분명하므로 나는 하루라도 빨리 뚱뚱한 나에게서 벗어나고 싶어 그런 극단적인 방법을 쓴 것이다. 만약 내가 건강해지기 위해 살을 빼려 했다면 나는 천천히 건강하게 살을 뺄 수 있는 방법을 찾지 않았을까? 사회를 탓하는 게 아니라 사회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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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를 보고 아름답다고 하는 사람들이 모두 뚱뚱한 사람을 아름답다고 하지는 않는다. 나는 이 사실이 무척 모순적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나나는 뚱뚱한 여자를 표현한 것인데, 그런 나나에게서는 성적 매력을 느낄 수 있으면서 왜 그의 모델이 된 존재들은 부정하기만 할까? 하지만 이 글을 쓰면서 나는 다른 시야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뚱뚱한 ‘내’가 굳이 타인들에게 아름다울 필요가 있을까? 내 세상 속에서 나는 충분히 아름답다. 내가 마르든, 통통하든 그것의 아름다움을 선택하는 것은 세상의 주체인 ‘나’의 몫이다. 나나가 아름다운데 내가 아름답지 못할 이유가 있는가? 같은 대상이되 시선의 차이일 뿐이다. 세상은 결국 내가 보는 대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 뚱뚱한 나에게 자신의 기준을 강요하는 사람들에게, 나의 아름다움을 알지 못하는 당신이 불쌍하다고 가엽게 여기는 시선을 보내주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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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혜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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