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서울촌놈의 즉흥서울여행

가끔은 즉흥여행도 좋아
글 입력 2018.08.10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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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상공회의소에서 컴퓨터 활용능력시험(이하 컴활) 1급 필기를 봤다. 대학교 3학년인 내가 취업에 한 발자국 더 가까워진 순간이었다. 컴활 시험을 준비하면서 많은 심리적 변화를 겪었다. 컴활 시험을 공부할 땐 아무 생각 들지 않았다. 문제는 공부하는 시간 외였다. 아직 교환학생 신분이 끝난 지 1달도 되지 않았는데 나는 취업이라는 틀에 갇혀버렸다. 내가 과거에 했던 활동들이 취업에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 내가 앞으로 할 활동들은 취업에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 재보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대3병에 걸렸는데 동생은 고3이라 동생의 공부, 자소서, 보고서, 지원할 수 있는 대학 하나하나 내가 손을 봐주고 있다. 그래서 군인인 남자친구에게 찡찡댄 후 미안하면서도 슬픈 마음으로 컴활 시험장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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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계획은 컴활 시험을 본 시청 근처 예쁜 카페에서 동생 자소서를 봐주고 아트인사이트 글을 쓰는 거였으나 그 모든 것이 짐으로 느껴져 그냥 눈에 닿는 곳으로 발을 딛기로 했다. 그래, 난 이런 즉흥성이 너무나 필요했다. 마침 날씨도 기존과는 다르게 바람도 선선하게 불어와 걷기 좋았다. 높은 빌딩 밑, 몇 그루 나무가 심어진 곳에 직장인들이 바글바글했다. 나도 직장인이 되면 회사 앞 나무들 사이로 숨는 게 최선의 휴식이 되는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거대한 빌딩 숲 사이에서 작은 숲에 숨어든 듯 모인 사람들을 보며 즉흥 산책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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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닿는 대로 가다 보니 덕수궁 돌담길까지 가게 되었다. 남자친구가 군대에 있으니 사진 찍을 일이 없어 핸드폰 갤러리가 텅텅 비어있었는데 오랜만에 서울 중심부로 나와 사진을 찍어보니 즐거웠다. 서울은 외국이 아니라 길 잃을 걱정도 없고 익숙하면서도 낯선 곳이라 나는 이 즉흥여행이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덕수궁 뒷길은 내가 소유한 듯 사람이 없었다. 때마침 남자친구에게 전화가 와 평소처럼 조잘조잘 보이는 풍경에 관해 얘기하며 길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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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궁도 지났다. 경복궁, 덕수궁은 가봤는데 경희궁은 왠지 낯선 이름이다. 경희궁의 문은 여러 버스 정류장과 마주하고 있는 번잡한 곳에서 고고하게 위치했다. 외국인들이 높은 빌딩 속에서 고즈넉이 있는 한국의 전통건물들을 좋아한다고 했는데 나도 그 반전미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뒤로 슬그머니 보이는 산도 운치를 더했다. 시내 중심부에서 산을 볼 수 있다는 건 생각보다 세상에 흔치 않은 일이라는 걸 지구 반대편에서 생활한 후에야 깨닫게 되었다.

무작정 걷는 길에서 많은 걸 마주했다. 오르막길과 평지에서 차들이 교차하면서 막히는 모습(운전자들은 피곤했겠지만 제3자 입장에서 막히는 걸 보는 건 재밌었다), 누가 이 날씨에 따릉이(서울시에서 제공하는 공유 자전거)를 탈까 싶었는데 눈앞으로 지나가던 따릉이를 탄 사람, 더운 날씨에도 서울 중심부를 튼튼하게 지켜주는 의경들의 버스, 높은 빌딩들과 어울리지 않는 오래되어 보이는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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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상 걷다 보니 서울로가 근처에 있을 거 같았고 지도를 따라 난생처음 서울로에 도착하게 되었다. 서울역은 자자한 명성처럼 노숙자분들이 계셨는데 순간 좋지않은 치안으로 악명높은 로마 떼르미니 역에 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혼자 지나가려니 무섭기까지 했다. 지하보도를 통해 서울토박이인 내가 서울로에 처음으로 입성했다. 높은 곳이라 그런지 시원한 바람이 불어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려다보니 수많은 버스와 넓은 도로가 보였다. 이게 서울이구나 싶었다. 버스 색을 누가 정한 건진 모르겠으나 사진을 찍으니 쨍하게 나와 버스 색이 참 마음에 들었다. 10년 넘게 이 색깔로 운영되고 있으니 서울의 상징 중 하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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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을 하며 느꼈지만, 서울은 정말 크고 웅장하고 지역마다 개성이 넘치는 도시다. 그런 도시에 내가 살고 있다니, 아까는 이 혼잡한 사회 속으로 편입되는 게 겁이 나고 두려웠으나 지금은 이 복잡한 서울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눈을 돌리니 숭례문이 높은 건물들 사이로 빼꼼 보였다. 외국인 모드로 신이 나 사진을 찍어댔다. 전통건축물을 복원하는 것도 좋지만 현재의 이런 모습도 서울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쎄, 1시간 남짓 걸으면서 슬펐던 감정이 정화되는 걸 느꼈다. 처음 걸을 땐 이런 일상 속의 사치를 느껴도 되는 것인지 의구심이 들었다. 집에 가서 쓸 것들 마무리하고 공부해야 하는 건 아닐까 자기 검열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걷다 보니 그저 행복했다. 일상의 짧은 여행이 이렇게 즐거운 것일 줄 몰랐다. 서울 사람인 나에게도 서울은 너무도 다양한 곳이고 매력적이다. 그러니 지금 힘든 그대여, 지금 서울에 있다면 서울 아무 곳에서나 내려서 무작정 걸어보면 좋겠다. 마주하는 것 하나하나가 새롭게 다가오며 그대의 마음을 간지럽게 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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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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