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니키가 쏜 총이 지구를 한 바퀴 돌아 내 가슴에 꽂혔다 [전시]

글 입력 2018.08.09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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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ki de Saint Phalle.jpg
 
 
단순히 보도자료를 보고 난 뒤에 필자는 이렇게 생각했다. 니키 드 생팔은 전통적인 여성상에 저항하는 예술가일 것이다. 그래서 프리뷰를 쓸 때도 현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했다라고 썼었고 니키 드 생팔의 이러한 예술활동이 사람들에게 치유의 방법을 알려줄 것이라 기대한다고 적었다. 이 말은 전시를 다 보고 나서 반은 맞았고, 반은 틀렸다는 것을 느꼈다. 니키 드 생팔은 누보 레알리즘, 즉 현실의 사실적인 반영을 추구하는 전위적 미술활동을 통해 여성뿐만 아니라 틀에 갇혀 사는 사람들에 대해 저항의 총을, 혹은 분노의 총을 쏘았다. 그러나 결국엔 그녀는 그녀의 감정을 표출하는 것과 동시에 그녀와 비슷한 우울함, 무기력함을 느낀 사람들에게 위로를 건네기도 했다.

니키는 아버지로부터 받은 성 학대, 첫 번째 남편으로부터 강요받은 전통적인 여성상으로 인해 망가진 영혼을 미술로 치료하기 시작했다. 비록 그녀는 미술을 전문적으로 배우지 못했으나 예술의 동반자 장 틸겔리의 지원과 격려, 요코 마즈다 시즈에의 후원 덕분에 그녀의 큰 상상력을 예술로 펼칠 수 있었고 그녀 자신도 성장할 수 있었다. 총 3부, 개인적 상처와 치유, 만남과 예술, 대중을 위로하는 상징으로 나뉜 전시회는 그녀의 일대기에 따라 배치되지 않아 감동이 더 배가 되는 전시회였다.



개인적 상처와 치유

전시회에 들어가자마자 본 것은 니키 드 생팔이 총을 쏘고 있는 동영상이었다. 몇몇 사람들이 그녀의 특이한 퍼포먼스를 보기 위해 모여 있었고 니키는 과감하게 총을 쏘며 자신의 작품을 완성해나가고 있었다. 총을 쏠 때마다 깜짝 놀라는 관중 그리고 자신 있게 자신의 작품을 만들고 있는 니키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그녀가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퍼포먼스가 아닌 작품 자체에 담은 니키의 마음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아름답게 보이진 않더라도, 작은 피조물 하나하나에 그녀가 자신의 세상에서 느꼈던 것들에 대한 생각을 담았음을 알게 되었다.


Niki de Saint Phalle, Nana Fontaine Type, 1971, 1992 ⓒ 2017 Niki Charitable Art Foundation, ADAGP, Paris - SACK, Seoul.jpg
 

그녀의 작품 중에서 가장 유명한 ‘나나’가 사격회화 다음에 있었다. 뚱뚱한 체형의 나나는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의 몸매가 아니지만 ‘나나’는 그 자체로 매력적이었고 또 귀여웠다. 애인과 해변을 가는 듯한 그림이라던지, 한쪽 발만 들어서 춤을 추는 듯한 모습 등은 어떻게 보면 그냥 우리의 일상적인 모습이었다. 현재 자신의 모습 대신 되어야 한다고 여겨지는 모습 때문에 스스로 망가지는 여성이 아니라 내 몸에 대해서 그리고 나에 대해서 자존감이 높고 있는 그대로 자신을 받아들이는 여성의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보여주고 있었다. 니키는 ‘나나’의 얼굴을 만들지 않았는데, 여성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나나’를 보고 자신을 나나로 볼 수 있기를 바랐던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나나’ 조각품도 인상 깊었지만 ‘나나’ 그림도 이에 못지않게 큰 울림을 주었다. 니키는 그림만 그리지 않고 그 옆에 자신의 생각을 적어 이 그림을 그리면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 얘기해주고 있었다.



만남과 예술

니키의 뮤즈이자 예술의 동반자 장 틸겔리 그리고 니키의 작품에 빠져 20여 년 간 우정을 유지한 요코 마즈다 시즈에와 관련된 파트였다. 이 파트에 있었던 니키의 작품은 때론 일기 형식으로, 때론 에세이처럼 다가왔다. ‘I would like to give you everything’, ‘What are you doing my love?’, ‘Why don’t you love me?’ 등 사랑하는 사람을 염두에 두고 만든 작품들이 많았다. ‘머리에 TV를 얹은 커플’ 조각품은 특히 사랑에 빠진 사람들에 대해 현실적으로 만든 듯했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등지고 있다. 각자 머리 위에 TV를 얹고 있는데, 화면 속에는 상대방의 얼굴이 나와 있다. 사랑하기 때문에 서로를 그리워하고 또 애틋해한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타일로 만든 작품은 사랑의 시작과 끝을 이야기처럼 풀어서 보여준다. 놀러가기도 하고 러브레터를 쓰기도 하며 때론 다투기도 하지만 여행도 다니는 일반적인 커플의 모습.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점점 서로 어긋나기 시작하면서 눈물도 많이 흘리자 꽃처럼 활짝 피었던 사랑이 시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곧 연인은 헤어진다. 짧지만 굵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문득 니키와 장 틸겔리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다. 니키는 장 틸겔리로부터 치유를 받았고 그와 사랑을 나눴고 또 그에게 예술적으로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 보통 가부장적인 폭력에 시달린 후에는 사랑을 하기 두려운 법인데 오히려 니키는 더 좋은 영향만 받아서 그녀의 세계를 확장시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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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 마즈다 시즈에와 나눈 그림편지에서도 그녀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사람인지 볼 수 있었다. 비록 그 둘은 자주 만나진 못했지만 니키는 요코 마즈다 시즈에에게 꾸준히 감사 인사와 그림을 그려 편지를 보냈고, 결국 요코 마즈다 시즈에 후손이 지금까지도 니키의 작품을 잘 간직해서 오늘날의 전시를 열 수 있게 했다. 세상에 대한 억압을 자신의 상상력과 예술로 풀었던 니키는 혼자 성장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갖고 있었던 틀을 깨고 더 멀리 날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관계와 사랑, 이 둘이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 알려주는 듯했다.



대중을 위로하는 상징

마지막 3부는 니키의 개인적인 인생에서 벗어나 대중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돋보이는 파트였다. 배우를 지망했던 니키는 유독 신화에 푹 빠져 있었는데 이 때문인지 ‘토에리스’, 뱀, 해골, 부다 등 신학적인 소재를 이용해서 조각품을 만들었다. 조각품은 거대했고 니키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다채로웠다. 그녀의 세계관은 점점 확대되어 타로공원에서 그 정점을 맞이하는데, 비록 타로공원의 작품을 직접 전시회에서 마주할 수는 없었지만 영상과 밑그림으로 본 그녀의 작품들은 사람들에게 위로의 손짓을 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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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그녀가 가부장적인 사상에 맞서 저항하는 여성, 페미니스트에 가까운 예술가라고 생각했었다. 물론 개인의 아픔 앞에서 그녀는 분노를 표출했었지만 그 이슈에만 멈춰있지 않았다. 흑인에 대한 생각을 담고 있는 작품도 있었고, 혼돈과 질서, 자유에 관한 얘기도 적혀 있었다. 사랑을 할 줄 알고 받을 줄 아는 사람이자 저 멀리 일본에 있는 후원자와 지속적으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사람이었던 니키는 결국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에 있었던 것이다. 그 여정에서 자신을 믿고 나아갔기에 그녀 역시 상징적인 것을 만들어 대중에게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을 주고자 했다.

복합적인 이유로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니키는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들까지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었다. 그래서 이번 전시가 더 좋았다. 스스로를 믿고 자신의 틀에서 벗어나 발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이번 전시에서 배웠다. 다른 관람객들도 이번 전시를 통해 필자처럼 소소한 것이라도 무엇인가를 느꼈으면 한다.


[김민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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