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총을 쏘려다 사랑을 느끼고 돌아온, 니키 드 생팔展 [전시]

사랑을 표현한 샤갈:러브앤라이프전보다 더 사랑을 표현한 전시
글 입력 2018.08.08 23:56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1. 사격회화


니키 드 생팔전을 처음 관람했을 때 나오는 작품들은 그녀의 초반 ‘사격회화’ 작품이다. 그녀가 사춘기 시절 13살이 되던 해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했고, 그 뒤로도 남자들에게 받은 피해들을 향해, 권력을 향하여 총을 쏘는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녀가 직접 총을 쏘는 그림보다는 총을 맞은 대상들을 보여준다.


KakaoTalk_20180804_171004987.jpg
 

그 대상을 이루는 요소에는 공통적인 게 몇 가지 보인다.

첫 번째는 아이들의 모습이다. 갓난아이로 보이는 아이들이 여러 명 뭉쳐져 있다. 그 아이들의 크기도 다 다른데, 위의 하트 그림에서 왼쪽 아래편에 있는 아이들은 조금 큰 편이고, 가운데 있는 해골에 걸쳐진 아이들의 크기는 아주 작은 편이다. 아이들은 관절이 하나하나 연결된 인형처럼 다리와 팔들이 꺾인 형상으로 해골의 위를 흘러내리듯이 붙어있다.


KakaoTalk_20180804_171002869.jpg
 

아이들의 행렬을 따라가다 보면 해골의 입으로 들어간다. 기괴한 장면이다. 아이들은 표정이 없다. 보통의 아이들은 울고불고 웃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감정이 드러나야 하는데, 작품 속에 아이들은 눈코입의 위치는 새겨져 있지만 모두 피부색으로 같게 칠해져 있어서 보통의 아이 같지가 않다. ‘그걸’ 아이라고 표현해도 될까 싶다. 어쩌면 그녀의 죽어버린 유년 시절을 관절을 꺾고 무기력한 아이의 모습으로 표현한 게 아닐까 싶다. 아니면 상처의 조각으로 대변되는 감정을 사람으로 표현한 것은 아닐까.


KakaoTalk_20180804_171000446.jpg
 

두 번째는 총을 쏘는 군인들의 조각들이 있다. 군인의 조각들은 늘 혼자 존재하는 게 아니고, 촉수처럼 생긴 꼬불꼬불한 실들에 발과 팔 등 신체의 일부가 감겨 있다. 똬리를 튼 그 실들이 그들의 행동을 제어하는 것처럼 보인다. 군인들은 마치 전쟁상황인 것처럼 총구를 노려보고 최선을 다해 총 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왼편을 향하는 군인들이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일단은 내가 본 군인들은 전부 오른쪽에 적이 있는 것처럼 오른편만을 향해서 총을 쏘고 있다. 오른손과 왼손 중 우세한 손이 오른손이기 때문에, 총을 쥔 손이 좀 더 잘 보일 수 있는 방향으로 작품을 만든 것일 수도 있고, 또는 우세한 권력에 대한 저항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KakaoTalk_20180804_170959935.jpg
 

세 번째는 과녁과 구멍이다. 총을 쏘는 위치를 뜻하는 과녁, 그리고 구멍은 총을 쏘고 나서 비어버린 자리를 상징한다는 점에서 니키 드 생팔의 사격 회화적인 측면을 가장 잘 보여주는 듯했다. 그런데 의아한 점은, 그 과녁은 작품 속 군인들이 쏘는 목표물일까, 아니면 그림 밖에 있는 누군가가 쏘는 과녁일까?


KakaoTalk_20180804_170944696.jpg
 

‘붉은 마녀’라는 작품에서도 앞선 세 가지 포인트가 드러난다. 그녀의 다리 옆으로 작은 아이들이 흘러내리고 있으며, 허벅지와 양쪽 가슴, 그리고 성기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있다. 허벅지에 뚫린 커다란 구멍 속에는 여성의 상반신과 해골 얼굴이 들어있기도 하다. 비어 있는 것 속에 비어 있는 것, 왠지 모르게 작품을 바라보면서도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그녀의 마음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KakaoTalk_20180804_170945346.jpg
 

붉은 마녀의 팔에는 온갖 벌레들과 군인들이 붙어있다. 곤충, 벌레와 군인을 같은 자리에 위치시켜 그들이 비슷한 역할을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붉은 마녀의 머리는 꼬불거리는 촉수로 구성되어있다. 아까 하트 모양의 그림에서 촉수가 군인들의 몸을 휘감고 있었는데 그건 붉은 마녀의 머리카락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니키 드 생팔이 붉은 마녀라고 가정한다면, 군인들의 총격을 제어하고 싶다는 의미일까, 아니면 군인이 자기 자신이었을까. 자신을 군인이라고 표현하여 작품 속에 넣은 것일 수도 있겠다.


KakaoTalk_20180804_170959376.jpg
 

‘사격회화’의 맨 앞에 나온 작품은 실제로 작품에다가 물감으로 총을 쏘는 작업을 한 것이라고 한다. 위의 사진 속에 나오는 작품인데 전시장에 들어가자마자 나오는 작품이다. 조금 아쉬운 소리를 하자면, 이 작품이 처음 나오면 나를 포함해서 오디오 해설서를 대여하지 않은 사람은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전시회는 오디오 해설서를 빌리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 없이도 관람을 수월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마 하트모양의 그림이나 붉은 마녀와 같은 그녀의 사격회화 그림을 다 전시한 뒤 마지막으로 이 실천적인 사격 작품이 나왔더라면 좀 더 그녀의 마음에 공감하면서 작품을 관람할 수 있지 않았을까.



2. 나나


니키 드 생팔의 무의식을 들여다볼 수 있었던 곳이다. 전시의 해설에는 ‘나나’를 굉장히 밝고 긍정적이고 그녀의 아픔을 예술로 승화시켰다고 극찬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나나 코너가 사격회화보다 더욱 니키 드 생팔의 성적인 두려움과 자의식을 부정적이고 과장되게 표현한 것 같았다.


KakaoTalk_20180804_170944145.jpg
 

이 작품은 그녀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생각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녀를 빽빽하게 채우는 꼬불거리는 선들과 뾰족한 선들. 복잡한 색채. 악어, 호랑이, 뱀 등의 연관성 없어 보이지만 동물의 세계에서는 위협적인 육식동물들. 무기로 보이는 바나나와 포크, 그리고 총도 있다. 기타 수많은 것들이 뭉쳐서 그녀라는 거대한 것을 구성하고 있다. 멀리서 언뜻 보면 슈퍼우먼을 그린 것 같지만, 내부를 세세하게 따져보면 복잡하고 불안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도 슈퍼우먼처럼 보이는 이유는 교묘하게 태양과 하트같이 긍정적인 것을 붉고 눈에 잘 들어오는 색으로 표현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그녀도 부정적인 감정이 있는 것을 알면서도 복잡한 마음과 긍정적인 마음을 병행한 채로 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가능한 한 밝게 살기 위해 몸부림쳤던 거겠지.


KakaoTalk_20180804_170943279.jpg
 

나나 작품들은 가슴과 엉덩이, 허벅지가 지나치게 강조되어 있다. 상처를 받았음에도 여성의 풍만함과 다산을 상징하면서 그 긍정적인 에너지를 표현했다고 해설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건 자기기만으로 보였다. 밀로의 비너스상도 가슴과 배 등을 지나치게 강조해서 다산을 상징하는데 그건 일반적인 체형은 아니다. 외국인의 체형적인 특징을 고려해야겠지만 그래도 얼굴은 아주 조그맣게 거의 보이지 않게 표현했지만, 가슴과 배와 엉덩이를 아주 크게 부풀려 놓았다. 여기에도 화려한 색을 입혀서 밝고 경쾌하게 표현하려고 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그녀 속에 있는 여성이기 때문에 벌어진 상처 속에 갇혀있는 것 같다. 그러므로, 그 여성이 누구인지를 의미하는 얼굴을 거의 보이지도 않게 표현하고, 여성이라는 성적인 정체성만을 강조하는 조형물을 만들어놓았던 게 아닐까.


KakaoTalk_20180804_170942784.jpg
 

그녀의 작품들은 폴리에스터에다 페인트칠을 해서 표현을 했는데, 덕분에 허벅지로부터 흘러내리는 물감들이 마치 셀룰라이트처럼 보인다. 여성호르몬이 많을수록 인슐린 분비량이 증가가 잘 되고, 지방생성이 증가하며 셀룰라이트가 잘 증가하는데 니키 드 생팔이 의도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점도 실제처럼 표현된 것 같은 부분이었다.



3. 사랑을 담아서, 장 팅겔리


일주일 전 관람했던, 샤갈의 러브앤 라이프전보다도 더 사랑을 느꼈던 이유가 드러난 구역이다. 이 머리 위에 tv를 얹은 조각상을 살펴보자.


KakaoTalk_20180804_170941870.jpg
 
KakaoTalk_20180804_170940945.jpg
 

그녀가 사랑한 장 팅겔리와 니키 드 생팔이 등을 맞대고 앉아 있는 모습이다. 서로의 머리 위 TV에는 상대의 얼굴이 드러나있다. 주목할만한 점은 여전히 가슴이 아주 큰 자신의 초상을 나나로 표현해놓았지만, 이번에는 자신의 얼굴이 아주 커져 있다. 또, 장 팅겔리 머리 위에 있는 티비 속에 나나는 성적상징인 신체 부분이 더는 강조되어있지 않다. 단지 나나의 얼굴만이 비쳐 보일 뿐이다. 상대 남자가 자신에게서 성적인 것을 바라보지 않고, 니키 드 생팔이라는 온전한 자기 자신의 정체성만을 사랑한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이 작품을 보면서 나는, 니키 드 생팔이 사랑을 하면서 드디어 유년기의 상처를 극복했다는 것을 확신했다.



4. 기타 전시


KakaoTalk_20180804_170940086.jpg
 

그 전시 구역 뒤에, 요코와의 우정, 종교적인 세계, 타로 공원 코너가 더 있는데 정말 장 팅겔리와의 만남 이후에는 니키 드 생팔은 더는 총을 쏘지 않는다. 그녀의 작품은 점점 더 사랑과 우정으로 젖고 종교로 승화되고, 마지막에는 환상의 공원을 만든다. 세상에는 존재할 것 같지 않은 이상한 동물들에게서도 여전히 여성의 신체 일부가 강조되는 모습이 보이기도 하고, 철조망 사이사이로 군인들이 보이기는 하지만 그녀의 공격이 다소 순화된 것처럼 느껴진다.


KakaoTalk_20180804_170936375.jpg
 

타로공원은 가운데에 사면이 거울로 되어있고, 모서리에 커다란 의자, 소파를 놓아서 매우 안락한 공간으로 만들어두었다. 다만 사람들이 전시회 관람을 할 생각은 않고 셀카를 찍거나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기 바쁜 모습 때문에 전시회의 피날레를 아쉽게 마무리했다. 아무래도 전시회는 사진촬영금지를 해두는 게 제일 속이 편하고 집중해서 관람할 수 있는 것 같다.





프리뷰에서 언급한 적이 있지만 나도 세상물정 모르던 대학 새내기 시절 이름도 모르는 대학 선배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성적 취향 역시 삐뚤어져 소위 sm이라고 불리는 행위를 즐기게 되었다. 아니, 즐겼다는 표현은 맞지 않는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 행위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성행위를 즐기는 것은 나의 뿌리 깊은 죄책감에 맞서는 감정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과격한 행위를 하면서 남을 이용해서 계속 자신에게 고통을 준 것이다. 아프고 무섭고 두려웠던 시절들이다.

지금의 남자친구를 처음 만났던 약 1년 전에도 그랬다. 외모와 덩치 큰 몸매가 마음에 들어 적극적으로 대시하기 시작했고, 처음 성행위를 할 때 그에게 했던 말이 엉덩이를 때려달라는 것이었다. 당황하던 그의 얼굴이 생생하다. 의도를 갖고 접근했던 나랑은 달리 입을 맞췄을 때 순수하게 행복해하던 그 미소도 떠오른다.

그를 만나면서, 많이 싸우고 도망가고 잠수도 타고, 그런데도 끊임없이 나를 바꾸려 하고, 기다려주려 하는 그 모습에 나는 1년간 점점 변했다. 그를 ‘남자’로 보는 게 아니라 드디어 사람으로 보게 된 것 같다. 절대 사랑을 할 수 없을 거라고 믿었던 내가 사랑을 하게 되고, 남자를 사람으로 보게 되었고, 성행위에서 오르가슴이라는 벅찬 감각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더는 나에게 성행위는 죄책감에서 몸부림치는 행위가 아니라 사랑을 몸으로 표현하는 행위이다. 남자친구가 얼마 전에 나에게 “이제는 엉덩이 때려달라고 안 하네, 성적 취향이 변했어?”라고 물어보는 것에서 문득 깨달았다. 성적 취향이 변한 게 아니라, 상처를 극복한 거야, 오빠. 말하고 싶었지만 말하다가는 울 것 같아서 말하지 않았다. 정말 그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은 날,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모든 과거를 털어놓을 수 있게 되는 그 날, 그에게 전하고 싶다.

누군가는 내가 소설을 쓴다고, 거짓말을 한다고 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같은 상처를 안고 있는 사람은 그 트라우마를 절대 극복을 할 수 없을 거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나 역시 그렇게만 생각했었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을 설득할 생각은 없다.

단지 사랑의 힘은, 나를 진정으로 사랑해주는 그 힘은 정말 강력하다는 것.


[박지수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3.2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