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총구의 끝은 그를 한정 짓는 편협함을 향했다 [전시]

《니키 드 생팔展 마즈다 컬렉션》을 관람하고
글 입력 2018.08.08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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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성》의 저자 시몬 드 보부아르는 사회가 여성을 남성의 주변적 존재로서의 ‘제2의 성’으로 규정한다고 주장했다. 남성은 인간 개개인으로서 존중받지만, 여성은 그저 남성 그 외(外)의 존재에 머무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디어에 나오는 남성은 키가 큰 남성, 작은 남성, 살집이 있는 남성, 마른 남성 등의 다양한 모습으로 비춰지지만 여성은 그저 한 가지 외형을 가진 단일한 ‘여성’의 모습만을 요구받는다. 여성을 남성과 대등한 존재로 인식하지 않음에서 나오는 오류이다. 여성 혐오는 그렇게 주변화와 유형화의 형태를 하고 일상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니키 드 생팔에 대한 소개를 들었을 때, 나는 한 가지 생각에만 골똘했다. 누보 레알리슴*, 가부장제에 대한 반격, 사격 회화 등의 단어들을 포착하고 단숨에 파격적이고 저항적인 예술 활동을 전개하며 현실의 문제점을 고발하는 ‘신여성’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 외의 많은 소재들이 제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단어만을 보고 처음 보는 예술가의 모든 것을 단정 지어버린 것이다. 전시관에 들어선 후, 나는 그의 총구가 비단 가부장제뿐 아니라 그를 그렇게 한정 짓는 편협함을 향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 신사실주의. 현실의 사실적인 반영을 추구하는 전위적 미술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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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의 입구에는 총구를 정면으로 겨누고 있는 니키 드 생팔의 사진이 크게 장식되어 있다. 보는 이를 노려보며 정확히 정면을 바라보는 그의 총구와 날카로운 시선에 나는 한껏 경계 태세를 갖춘 채 전시관에 들어갔다.

전시는 세 가지의 섹션으로 분류된다. 가부장적 폭력으로 얼룩진 마음의 상처와 그것을 치유하는 과정의 예술 활동을 분류한 ‘개인적 상처와 치유’, 평생의 동반자이자 협력자 장 팅겔리와의 사랑과 영원한 친구 및 후원자 요코 마즈다 시즈에와 나눈 우정을 담은 ‘만남과 예술’, 마지막으로 유쾌하고 발랄한 표현으로 상상력을 자극하는 작품이 전시된 ‘대중을 위로하는 상징’의 세 섹션이다.



개인적 상처와 치유


전시의 시작은 작가의 대표적 예술 활동인 사격 회화를 중심으로 역시 파격과 저항의 정신이 드러나는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다. 니키 드 생팔은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받은 성적 학대와 결혼 생활 중 경험한 가부장적 여성상의 강요로 인해 심리적 상처를 경험했고,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미술 치료의 과정에서 예술이 갖는 치유의 힘을 경험하고 본격적으로 미술을 하기 시작한다.

상처에 잠식되지 않고 오히려 상처를 입혔던 것에 총을 쏘기로 한 그의 용기는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명랑하고 재기 넘치는 그의 작품세계는 상처로 인한 우울과 어두움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고통을 거침없이 극복하는 생기와 에너지를 힘차게 내뿜는다.

물감을 담은 여러 형상을 진열하고 관람객들로 하여금 총을 쏘게 한 후 터진 물감으로 추상화를 연출하는 ‘사격회화’는 니키 드 생팔의 대표작이다. 입구 부근에 전시된 사격 회화의 장대함은 전시의 시작부터 보는 이들을 압도한다. 마구잡이로 분사된 물감의 자국들은 어떤 방식으로 남겨졌는지 예측조차 불가능한 총격의 흔적에 불과하지만 저항을 넘어 분노마저 느껴지는 폭발적인 감정이 느껴진다. 성당에서 군인들이 서로 총을 쏘고 건물을 무참하게 파괴하는 모습을 조각으로 표현한 《대성당》은 일종의 성역에 해당하는 공간을 무너뜨리는 파격을 보여준다. 절대로 침범해서는 안 될 것처럼 견고하게 존재하는 가부장제를 대하는 작가의 자세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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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의 나나(백색의 춤추는 나나Nana Fontaine Type(Nana blanche dansante)
1971/1992, Lacquer paint on polyester, iron base , 100 x 147 x 56 cm
   
Niki de Saint Phalle, Nana Fontaine Type, 1971/1992
© 2018 Niki Charitable Art Foundation / ADAGP, Paris SACK, Seoul


하지만 이렇게 격렬하고 적나라한 저항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작가는 우울 속에 끝없이 침몰하지 않고 자신을 괴롭힌 상처에 유쾌하게 맞선다. 《괴물의 마음》, 《붉은 마녀》 등의 작품은 어두운 색감과 정돈되지 않은 요란한 표현이 인상적인데, 예쁘지 않고 추한 형상을 여성도 자유롭게 묘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여성에게 주로 요구되는 마른 몸을 탈피한 다양한 몸의 형상을 표현한 《나나》 연작은 거꾸로 서거나 마음대로 춤을 추는 등의 다양한 자세로 묘사되는데, 이 역시 여성에게 으레 강요되는 정숙하고 차분한 태도에 대한 저항으로 보인다.


 
만남과 예술


가부장적 여성상과 남성의 물리적·정신적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에게 씌워지는 대표적인 선입견이 있다. 남성을 싫어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물론 앞의 이유에 근거해서 남성을 싫어하는 사람이 실제로 있긴 하지만, 이러한 명제는 종종 인과관계가 도치되어 남성을 싫어하기 때문에(혹은 남성에게 사랑을 받지 못해서) 가부장제에 저항한다는 편견적인 말로 쉽게 남용되기 때문에 발언하기에 조심스럽다. 이는 ‘저항하는 여성’을 하나의 유형으로 단일화시켜버리는 일종의 혐오에 해당할 수도 있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러한 논리에 연유해서 작가의 정체성을 단정했고 예술적 스펙트럼을 한정 지었다. 그러한 선입견은 그녀의 사랑과 우정을 담은 두 번째 섹션에서 보기 좋게 깨졌다. 또 다른 누보 레알리슴 작가이자 니키의 동반자 장 팅겔리와 나눈 긍정적인 에너지는 그녀의 재치 있는 작품 세계에 애틋하게 녹아있다. 팅겔리를 향한 마음을 담은 작품에는 ‘내 사랑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나요?’, ‘당신은 왜 나를 사랑하지 않나요?’, ‘모든 것을 주고 싶어’와 같은 문구가 쓰여 있는데, 사랑에 빠진 사람의 순수한 마음이 여실히 드러난다. 팅겔리와의 사랑은 치유가 필요했던 니키의 미술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번 전시의 컬렉션 소장자이자 작가와 국경을 초월한 우정을 나눈 요코 마즈다 시즈에와 주고받은 그림편지도 인상적이다. 아기자기한 그림과 글자로 전달한 그들의 마음은 영어나 일본어를 모르는 사람도 무리 없이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쉽게 표현되어 있다. 그들은 하나의 언어로써 그림을 사용하며 넘치는 상상력으로 자유롭게 소통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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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만세Vive l’amour
1990, Offset print, 70×100 cm

Niki de Saint Phalle, Vive l'amour, 1990
© 2018 Niki Charitable Art Foundation / ADAGP, Paris SACK, Seoul



대중을 위로하는 상징


관람 전 작가에 대해 가졌던 편견이 산산조각 부숴진 섹션이다. 저항과 고발에만 몰두했을 것이라는 생각은 그가 표현한 치유의 상징을 목격한 후 말끔히 사라졌다. 작가는 자신이 미술로부터 느낀 치유의 힘을 표현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그것을 대중에게 환원하기로 했다.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 눈부실 정도로 아름답다.

치유의 방법이 흥미롭다. ‘길가메시’나 ‘토에리스’ 등 전설에 등장하는 신이나 가상 동물들은 일순간에 감상자를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세계로 데려다주며 상상력을 자극한다. 또한 설화 및 우화로부터 영감을 얻어 만든 조각 공원 《타로 공원》은 인간의 정신세계를 유희하듯 다루며 현실의 무거움을 잠시 내려놓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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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섹션에는 뱀 등의 동물들로 장식된 의자가 많이 놓여있다. 고대 근동의 그것이 연상되는 동물 장식의 의자는 동양적이면서도 신비로운 분위기를 조성하며 더불어 낯선 이미지에서 나오는 약간의 기괴함도 느껴진다. 그러나, 동시에 ‘의자’라는 사물의 속성에서 나오는 편안함도 느껴진다. 관람객이 실제로 앉을 수는 없지만, 본래 앉아서 쉬는 용도로 쓰이는 만큼 보는 이들로 하여금 안정적인 정서를 일으키는 것이다. 이렇듯 니키는 신비롭고 독특한 자신의 색채를 그대로 살리면서도 자신이 경험한 위로를 대중에게 전달하기 위해 섬세하게 힘썼다.



Opinion


여성에게 가해지는 억압과 폭력에 총격을 가한 그에게 공감하는 마음으로 관람을 신청했는데, 관람을 마친 후 내가 오히려 그의 총구가 향하는 곳에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색안경을 끼고 관람을 시작했던 나에게 과분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그의 색은 가지각색 찬란했다. 그는 관람객에게 총을 쥐여주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그림편지를 주고받으며, 혹은 공원을 지으며 여러 방법으로 상처와 치유의 과정을 표현했다. 그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은 아마 쉽지 않을 것이다. ‘제2의 존재’로 너무나도 쉽게 여성을 유형화하는 세상에서 니키 드 생팔은 그 어떤 유형으로도 한정 지을 수 없는, ‘유일무이한’ 예술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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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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