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 『젊은 예술가의 초상』 [문학]

글 입력 2018.07.30 01:05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3746045-large.jpg
 

두꺼운 책을 읽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 400p에 달하는 책을 읽는 동안 그만 읽고 싶은 생각이 계속 들었지만, 중간 중간에 공감하는 구절이 있어서, 끝까지 읽었다.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많긴 해도, 중요한 부분을 조금이라도 이해해서 작가가 말하고 싶은 걸 조금이라도 이해했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작가 제임스 조이스의 자전적 소설이다. 주인공인 스티븐 디덜러스가 국가, 종교에서 벗어나 예술가로 성장하는 이야기다. 어릴 적부터 엄격한 예수회 기숙학교에 다녔다. 그곳에서는 스티븐은 엄격한 교리를 지켜야 하며,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 지냈다. 그는 더더욱 학교에 적응하지 못했다. 예술가 기질이 있는 스티븐은 기숙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외로운 생활을 한다. 외로움, 아버지에 대한 환멸, 그리고 종교에 대한 불신이 그를 사로잡는다. 그리고 그는 결국, 거리의 여자와 관계를 맺는다. 그는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자신의 죄를 뉘우치지만, 그는 종교에 회의를 느낀다. 스티븐은 방황하다 자신은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는 걸 깨닫고는 종교에서부터 자유로워지고, 자신의 길을 걷는다. 스티븐의 삶을 살펴보면, 스티븐은 종교, 그리고 국가(민족) 어디에서도 자유롭지 못했다. 학교에서는 엄격한 율법 생활을 강요했고, 국가에서는 민족부흥 운동이라는 명목으로 그에게 조국을 참되게 대할 것이며 조국의 언어와 전통을 부활하는 사업을 도와주도록 명령을 받았다. 스티븐은 이런 목소리를 외면했고, 이 목소리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그것들이 부르는 소리를 듣지 않으며 혼자 있거나, 아니면 그 환영들이나 벗 삼고 있을 때에만 행복감을 느꼈다.

책을 읽으면서 스티븐이 나와 정말 많이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유년기부터 기숙학교에서 생활하면서, 스티븐에게 종교란 인생의 전부였다. 성직자가 되고 싶어 하던 스티븐에겐 더더욱. 엄격하고, 이해되지 않은 교리, 그리고 성직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종교에 회의를 느낀 스티븐. 나도 어릴 때부터 교회에 다녀서 교회에서 가르치는 모든 것들을 의심 없이 받아들였고, 믿었다. 하지만, 말씀, 그리고 사람들에 실망하고, 회의를 느꼈다. 딱딱한 교리, 엄격한 생활 등 점점 이게 옳은 것인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내가 믿어온 것들이 조금씩 의심으로 부서졌다. 그래서 스티븐이 점점 종교에 회의감과 환멸을 느끼는 모습에서 회의감이 드는 내가 보였다. 스티븐이 어떤 마음이었는지는 곧 내가 어떤 마음이었는지.

**

소설에서 기억나는 장면이 몇몇이 있다. 별 것도 아닌 것에 혼나는 아이들과 스티븐, 몇 페이지에 걸친 설교 내용, 그가 죄책감에 못 이겨 고해성사를 하는 장면, 신부와 면담하는 장면, 그리고 그가 민족, 종교의 틀을 깨고 예술가의 세계로 나아가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이 장면들이 스티븐의 내적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그로인해 스티븐이 예술가가 된 이유이기도 했다.
 

『모두들 공부를 계속해!』학감이 소리쳤다. 『게으름이나 피우며 빈둥대는 애들은 용서하지 않는다. 빈들거리며 나쁜 짓이나 꾀하는 애들은 용서 못해. 공부를 해라. 이 돌란 신부는 매일같이 너희들을 살피러 들어올 거다. 이 돌란 신부는 내일도 너희들을 살피러 올 것이니 그리 알아둬』

…(중략)…

『이리 나와, 디덜러스. 빈둥빈둥 나쁜 짓이나 꾀하고 다니는 놈 같으니라고. 네 얼굴이 그렇게 씌어 있다. 안경은 어디서 깼니?』
스티븐은 두려움과 조급함 때문에 눈이 캄캄해진 채 교실 가운데로 비틀거리며 나왔다.
『안경을 어디서 깼느냐고?』학감이 다시 물었다.
『탄재가 깔린 길에서 깼습니다』
『호호! 탄재가 깔린 길이라구!』학감이 말했다.『그 속임수를 내가 알고 있지』
스티븐은 영문을 몰라 눈을 쳐들었다. 그 순간 돌란 신부의 젊지 않은 회백색 얼굴이며, 양쪽 가장자리로만 머리털이 엷게 나 있는 회백색 대머리며, 강철 테 안경이며, 안경을 통해 내다보고 있는 빛을 잃은 눈이 보였다. 속임수를 알고 있단 말을 무슨 근거로 할 수 있었을까?
『빈들빈들 게으름이나 피우는 녀석 같으니라고!』학감이 고함질렀다. 『<안경이 깨졌습니다>라니! 예전부터 학생들이 즐겨 쓰던 속임수지 뭐냐! 당장 손을 내밀지 못하겠니!』



신부는 게으름을 증오했고, (자기가 볼 때) 게으름을 피우는 아이들을 이유도 묻지도 않고 혼내고 체벌까지 가했다. 스티븐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성경의 교리에 약간 어긋나는 글을 쓴 스티븐을 따로 불러 이유를 묻기도 했고, 안경이 부러져 공부를 못하는 스티븐에게 체벌을 가하는 부당한 대우를 당했다. 하지만, 그는 당돌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부당함을 교장 선생님에게 찾아가 고하는 모습 등 율법과 교리를 너무 중시한 나머지 오히려 스티븐이 종교에 환멸을 느꼈다. 그는 정신적 희열의 위험에 대해 사전에 경고를 받은 적이 있기 때문에 가장 미미하고 가장 하찮은 기도마저 그만두는 일이 없었고, 위험으로 가득 찬 성인의 경지를 성취하느니 차라리 꾸준한 고행을 통해 죄 많은 과거를 속죄하려고 애썼다. 그의 모든 감각은 엄격히 규제되었다.

외로움, 고독감 깊은 상념에 빠진 스티븐은 거리의 여자와 관계를 가진다. 그는 자신이 지은 죄에 죄책감을 가진다. 결국 그는 죄책감에 못 이겨 고해성사를 하고, 죄에서 자유로워졌고, 죄를 짓지 않으려고 스스로의 감각을 통제했다. 한편으로는 그의 의심, 냉소, 환멸, 회의는 점점 커져만 갔다.
 

그는 미사 집전 신부의 권능을 피하고 싶었다. 그 모든 막연한 화려함이 자기 한 몸에서 끝난다든지 그 의식이 자기에게 너무 분명하고 너무 돌이킬 수 없는 소임들을 떠맡길 것이라는 생각이 그를 불안하게 했기 때문이다.

…(중략)…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엄숙하고 질서정연하고 열정이라고는 없는 삶이요 물질적 걱정도 없는 삶이었다. 이런 것들을 기억하자 교육이나 신심보다도 더 강한 본능이 잠에서 깨어났고, 그가 그런 생활에 가까이 가려고 할 때마다 그의 마음속에 미묘한 적대적 본능을 발동시키면서 묵종하지 못하게 했다. 그런 생활의 냉기와 질서가 그에게 혐오감을 주었다.”


그런 스티븐에게 신부는 그에게 사제가 될 것을 권했다. 하지만, 면담을 하면서 그는 자신에게 맡겨질 모든 것들에게서 불안함을 느꼈다. 그러고는 자신의 길은 사제의 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는 그는 예술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이봐 크랜리』그가 말했다.『너는 내게 내가 무엇을 할 것이며,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이냐만 물어왔어. 내가 무엇을 할 것이며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지를 말해 주마. 내가 믿지 않게 된 것은, 그것이 나의 가정이든 나의 조국이든 나의 교회든, 결코 섬기지 않겠어. 그리고 나는 어떤 삶이나 예술 양식을 빌려 내 자신을 가능한 한 자유로이, 가능한 한 완전하게, 표현하고자 노력할 것이며, 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내가 스스로에게 허용할 수 있는 무기인 침묵, 유배 및 간계를 이용하도록 하겠어』


스티븐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 즉 있는 그대로의 자신 혹은 되고자 하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스스로 유배의 길을 택했다.


70cc68092081253dd7b38f8888ef846c_l1.jpg
 

  
너는 누구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니?


『젊은 예술가의 초상』의 원제는 『A Portrait of the Artist as a Young Man』이다. ‘초상’이라는 단어가 죽음과 관련된 말인 줄 알았지만, ‘portrait’ 이라는 단어를 보고 젊은 예술가의 모습이 담긴 이야기라는 것을 눈치챘다. 젊은 예술가 스티븐 디덜러스, 즉 제임스 조이스의 초상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하지만, 작가는 왜 초상이라는 단어를 썼을까? 단지 자기의 모습이 나왔다고 해서일까? 그 답은 마지막 부분에 직접 나타나있다.

“그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 즉 있는 그대로의 자신 혹은 되고자 하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던가? 스티븐은 얼마 동안 묵묵히 그의 얼굴을 지켜보았다. 싸늘한 슬픔이 그 얼굴에 드러나 있었다.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즉 자기가 두려워하는 자신의 고독에 대해서 말했던 것이다.” 그가 느꼈던 두려움을 그대로 썼기 때문에 그는 초상이라는 단어를 썼다고 생각한다.




오지영.jpg
 

[오지영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3.2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