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당신과 나 사이 : 기대를 버리고 적당히 거리 두기 [도서]

기대를 버리는 건 그렇게 거창한 것도, 매몰찬 것도 아니다.
글 입력 2018.07.25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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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섬>, 정현종


간결하지만 유명한 시, 두 문장으로 현대인의 값비싼 공감을 샀다.

나도 섬에 집착하는 사람이었다. 관계의 바다 사이, 섬에 과도할 정도로 집착해서 오히려 바다에 휩쓸리고 다녔다. 기실, 섬이라 명명한 것도 비가시적인 가치였을 뿐이다. 사람을 원한다면 그 사람에게로 곧장 가면 되는데, 왜 섬에 집착했는지 몰라. 그 사람과 친해지고 싶은 게 아니라, 그 사람과 친한 나를 보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제멋대로 섬을 만들고 명명한 건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아주, 잘 알게 됐다.

인간관계 얘기는 사랑 얘기처럼 너무나도 흔하다. 사랑도 관계의 일부기 때문이기도 하고. 너무나도 진부하고 상투적이지만 평생 멀리할 수 없으며 들을 때마다 솔깃해지는 이야기. 쉽게 인간의 희로애락을 불러일으킨다. 본질적인 문제는 항상 같기 때문이다. 인간관계에 지치고 상처받는 것. 저마다 사연은 다르지만, 상처받는 감정은 다들 익숙하기 때문에 쉽게 공감할 수 있다. 결국 인간관계 문제는 초월할 수 없으면서 평생 감내해야 하는 문제일 수밖에 없다.

관계 문제에 통달했을 것이라 생각하는 엄마 얘기를 들어보면 또래 연배에도 뒷담이 넘쳐나고, 양로원 노인분들 사이에서도 막내와 따돌림이 있다. 나이와 경험에 따라 관계 문제가 특별히 적지는 않다. 다만 얼마나 현명하고 능숙하게 대처하느냐 마느냐 문제일 뿐이다. 섬은 영토 문제나, 관계 문제나 논쟁은 영원할 것만 같다.

문득 관계에 대해 고찰하게 된 계기는 책 한 권을 읽게 돼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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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SNS를 달궜던 책이며, SNS를 통한 정보는 불신하는 경향이 컸던 내게도 솔깃했던 도서였다. 한 번쯤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 소개는 간략하게, ㅡ "정신분석 전문의 김혜남이 가족, 연인, 친구, 직장 동료 등 관계의 문제로 힘겨워하는 사람들을 위해 10년 만에 펴낸 인간관계 심리학 도서"

궁극적으로 책이 얘기하고자 하는 대충 이렇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친절할 수 없고 그럴 에너지도 없다. 그래서 상대방도 항상 무조건적으로 친절하게 대해주길 바라는 건 무리다. 사람에게 과하게 기대거나 기대하지 말기. 각 관계마다 거리 두기. 중요한 인연에게만 더 신경 쓰기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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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폭넓은 인간관계를 유지하면서 많은 sns 친구 수와, 좋아요를 훈장처럼 여길 때가 있었다. 내가 친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친분을 강요하고 과시했다. 관계도가 게임처럼 수치화되어있으면 편했겠지만 비가시적이기 때문에. 일단 나는 내가 해준 만큼 상대방에게 기대했던 것 같다. 지치고 실망하고 때론 화도 났지만, 근데 그건 내가 부러 만들어낸 감정이었다. 상대방이 애초에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지레 관계를 짐작하고 집착하는 건 지금 보면  좀 웃겼다. 뭐 혼자 그렇게 망상했으니 지치는 건 시간문제였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았지만, 나는 '나'에게 좋은 사람이지 않았다.

웃긴 게, 그런 와중에도 쉬이 내 바다로 향하는 섬을 내주지 않았다는 것. 나는 다른 섬으로 가고 싶으면서, 혹여 상처라도 받을까 싶어 내주지 않았다. 상처받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걸 감안하지도 않으면서 상대방에게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했나 ㅡ 코웃음이 나온다.

그렇게 한창 관계에 집착하다가 한 일 년에 걸쳐 서서히 놔 버린 것 같다. 그때 생각해보면 아무 생각 없이 지쳐서 자포자기한 수준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무의식적으로 알게 된 것 같다. 하여튼 어떤 결론을 내렸냐면, 사람에게 기대하지 않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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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무 웃긴 결론이기도 하다. 고독한 영화 주인공을 흉내 내는 것 같고. 아직 몇십 년 살아보지도 않았으면서 이렇게 단언하는 것도 참 애송이 같고 좋다. 너무 단정적으로 말했는데 상술한 도서의 맥락과 같은 말이다. 모든 사람에게 하는 기대를 버리고, 친한 사람들과의 기대도 살짝 버리고. 그냥 사람에게 하는 기대를 조금씩 조금씩 버려서,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과 나에게 다른 에너지로 쏟는 것이다.

기대를 버린다는 건 조금 슬픈 일이지만 어떻게 보면, 사전적 정의가 '사실 어떤 일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기다리다.'다. 풀어쓰면 그 사람과 친해지길 바라면서 기다린다는 말이고.. 결국 친해지고 싶은 사람에게 (내가 소중하다고 생각하거나 특별히 친해지고 싶은 사람들에게) 더 에너지를 쏟으면 되는 게 아닐까? 관계에 효율 운운하긴 싫지만 가끔 이성이 필요할 때도 있으니까, 아마 그게 더 효율적일 것 같다.

그래, 기대하면서 읽었던 책은, 충분히 내게 위로가 되었고 교훈을 주었다. 애써 도외시했던 것들을 주지시켜줬다. 내가 체득한 것들이 정답이 아닐지는 몰라도 틀리지는 않겠구나. 아직 깨닫지 못해서, 애써 쿨한 척 살아오고 떨쳐내려고 노력했던 것들이 맞았던 거구나. 이게 잘하고 있는 건지 불안하기도 했는데, 책을 읽음으로써 비로소 불완전한 나를 인정하니까 속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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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효율 운운하면서, 사람들과 거리 두는 건 쉽지 않다. 평생 해왔던 사람에 대한 기대를 버리는 일이란, 이사를 위해 잡동사니를 버리는 느낌 같다. 일말의 가능성을 점치고 당장 짐이 되는 걸 두고 본다. 또 거리를 두었던 사람들의 추억이 이따금씩 나를 찌릿찌릿하게 만든다. 물론 그 사람들을 그리워하는 게 아니라, 그 찬란하고 좋았던 추억 속의 내가 그려져서 그게 너무나도 행복해 보여서다. 그것 또한 그 사람이나 관계가 아니라 단지 나를 사랑했던 건데, 당장 내가 나를 인식하기 어려우니 굴절돼서 그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만 같다.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게 어렵더라.

입대를 앞두고, 이런 것들을 실현하고 있다. 학기 중엔 바빠서 만나지 못했던, 정말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이 반가웠다. 오히려 자주, 의례적으로 만났을 때보다 더 진솔하고 그 사람을 오롯이 볼 수 있었다. 당신과 나 사이, 오히려 거리 두고 나서야 사람들과 가까워졌다.




[오세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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