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신이 침묵하던 시대의 이야기, 소설 순교자 [도서]

글 입력 2018.07.25 0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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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순교자 3.png
 

누구나 한 번쯤 신의 존재를 생각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한계에 몰려 버티기 힘든 상황이 오면 더더욱 그렇다. 신을 의심하든, 신을 찾아가든. 김은국의 소설 < 순교자 >는 신을 찾는 사람과, 신을 의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배경은 6.25전쟁이 한창인 1950년 10월, 유엔군이 평양을 점령한 중이다. 대학 교수 출신의 지식인인 ‘나’와 그의 상관 장 대령은 북한군에 의해 자행된 종교 탄압 사건을 조사한다. 북한군에 납치된 목사는 14명, 그러나 처형된 숫자는 열둘. ‘나’는 처형의 현장에서 살아남은 두 명, 신 목사와 한 목사를 찾아가 그 날의 일을 묻고자 한다.
 
“열두 명의 목사들이 살해당한 밤,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가?”
 
그날의 후유증으로 넋이 나간 한 목사를 대신하여, ‘나’는 신 목사를 찾아가지만 그는 진실에 대해 함구한다. 장 대령은 교인들의 영향력을 군에 이용하기 위해, ‘나’는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만 한다는 신념에 따라, ‘나’의 친구이자 목사의 아들이며 냉담자인 박 군은 광신도인 그의 아버지의 마지막을 알기 위해. 여러 인물들이 각자의 목적을 가지고 그 날의 진실을 파헤치려 하고, 소설은 순교가 일어난 밤의 진실을 큰 축으로 이야기를 펼친다. 대부분의 미스터리 류 소설들은 천천히 서사를 쌓아가며 긴장감을 끌고 가다가 말미에 이르러 실마리가 풀리며 폭풍처럼 몰아치기 마련이다.

반면 < 순교자 >는 생각지 못한 전개와 속도감 있는 문장의 연속으로 독자들을 깊이 몰입하게 하다가, 소설의 중후반부에서 생각보다 빨리 비밀을 털어놓는다. 요컨대 그날의 진실은 정말로 중요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겉으로 보이는 미스터리 안에 작가가 끼워 넣은 진짜 메시지는 무엇일까? 비신자인 주인공 ‘나’는 신 목사와의 만남을 이어가면서 그들을 만나게 한 커다란 비밀 속 또 다른 비밀, 이 소설의 가장 핵심적인 질문에 도달한다. 신은, 그의 백성들이 겪는 이 고난을 알고 있는가? 신이 진정 존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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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종교는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토론거리이다. 달리 말하자면 그만큼 너무나 수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한 주제라, 더 이상 새롭게 이야기하는 일이 힘들고 담론이 진부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필자는 < 순교자 >가 ‘신이 존재하느냐’는 진부한 의문을 제기하면서 어떻게 진부하지 않은 결말을 낼지가 가장 궁금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 순교자 > 역시 완전히 새로운 답변을 내놓는 데에는 실패했다. 소설 말미에 이르러, 신 목사는 ‘나’에게 그가 오랫동안 품어왔던 신앙의 진리를 고백하고야 만다. 신도, 사후세계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순교자들의 죽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도 무엇도 아니요, 다만 헛된 개죽음일 뿐이라는 것을.

신 목사의 자기 고백은 이 소설이 차곡차곡 쌓아왔던 긴장감이 폭발하는 장면이다. 신이 있느냐, 인류가 아주 오랜 시간 고민해온 이 질문에 대하여 작가는 신 목사의 입을 빌려 ‘아니’라고 대답한다. 그렇다면 신 목사는 왜 그렇게 오랜 시간 신앙의 비밀을 숨겨가며 홀로 ‘앎’의 고통을 견뎌왔는가?

전지전능한 존재의 가호를 받고 있다는 믿음은 때로 현실의 고통을 견디게 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인간은 빵과 물로만 살아지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신이 실제로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신은 인간에게 삶을 지탱하는 희망으로서 기능한다. 교육을 잘 받은 지식인인 ‘나’는 진실은 오직 밝혀져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밝혀진 한 줌 진실이 과연 얼마의 가치가 있을까? 아니, 희망이 신의 모습을 하고 있다면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진실이 될 수는 있을까?
 
“제대로 역사학자가 되려면 누구든 인간 역사의 특수 사건들을 일단 초월해서 보편적인 것을 찾아봐야 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인류 역사에 언젠가 반드시 종말이 올 것인가 아닌가 하는 훨씬 큰 문제에 부딪힐 게 아닌가. 그러면 그는 역사가로서가 아니라 그저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더 크고 엄청난 문제에 직면케 돼. 그 녀석이 언젠가 그런 질문을 만나게 된다면 그 애와 내가 생각보다는 별로 멀리 떨어져 있는 건 아니구나 하고 인정하게 되겠지.”
 
냉담자로 돌아선 아들 박 군이 역사학자가 되었다는 소식에 그의 아버지가 신 목사에게 전한 말이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희망은 신이 내린 마지막 저주라고 한다. 신은 불을 훔쳐 달아난 인간에게 존재할 수 있는 모든 악을 주어 벌하고, 희망을 주어 그 지독한 현실에서 벗어날 수조차 없게 만들었다. 이렇듯 희망이 있어 절망하지만, 절망 속에서 다시 일어서게 하는 것도 희망이다. 그리고 이 희망이란 놈은 여러 형태로 변주되어 왔다. 여호와로, 부처로, 알라로, 한울님으로, 그 밖의 다른 것들로. 그렇게 해서 인류는 끊임없이 맥을 이어왔고, 이로써 역사를 이룬다. 신을 부정했던 박 군은 죽음을 얼마 남기지 않고 다시 신의 품으로 돌아간다.
 
신 목사는 신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지만, 그 자신의 믿음에 반하여 여전히 신을 찬미하고 기도하며 교인들을 축복한다. 기꺼이 스스로 앎의 고통을 짊어진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의 삶을 구원할 수 있으므로. 바로 이 순간 소설이 제시하던 질문들은 전부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그는 신적인 존재에 이른다. 신 목사와 헤어진 ‘나’는 휴전 이후 그의 행방을 수소문하고, 그는 신 목사가 북한 곳곳에서 동시에 목격되었다고도, 또는 북한 어딘가에서 처형당했다고도 하는 소식을 접한다. 마치 사흘의 죽음을 뒤로 하고 환생한 예수가 기적을 행하듯 말이다. 어쩌면 그의 이름자 ‘신’은 이를 암시하는 작가의 작은 힌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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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를 가지시오, 대위. 우린 절망에 대항해서 희망을 가져야 하오. 절망에 맞서서 계속 희망해야 하오. 우린 인간이기 때문이오. (중략) 나는 인간이 희망을 잃을 때 어떻게 동물이 되는지, 약속을 잃었을 때 어떻게 야만이 되는지를 거기서 보았소. (중략) 희망 없이는, 그리고 정의에 대한 약속 없이는 인간은 고난을 이겨내지 못합니다."

일제 강점기와 2차 대전, 동족상잔의 참상으로 얼룩진 한국의 20세기는 도덕은 없고 야만만이 남은 비극의 시대였다. 신이 침묵하던 때, 신보다도 더 신의 말씀에 따랐던 신 목사. 작가 김은국은 평범하고 나약한 인간 존재에 대한 신 목사의 깊은 연민과 사랑을 통해, 진실과 거짓의 한계를 뛰어넘는 종교의 본질을 담담한 시선으로 그려낸다.


[이채령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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