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기억이란 몸과 마음 속에 박히는 것, - [공연] 낯선 사람

글 입력 2018.07.24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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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낯선 사람


상처와 기억은 영원히 한 사람의 마음에 남아, 어떤 경로로든 끝까지 괴롭힌다. 지울 수 있는 상처란 없다. 남아있는 상처만 있을 뿐. 총성으로 시작된 이 연극은 총성으로 끝나게 된다. 같은 사람의 총이었지만, 마지막은 자신을 향한 총성임이 다른 점이었지만.

의화단 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무자비하게 사람들을 사형에 처하는 울리히, 그런 울리히는 죽음 앞에 담담히 책을 읽고 있는 천샤오보를 만난다. 왜 두려워하지 않지? 왜 무서워하지 않지? 궁금증이 생긴 울리히는 그에 대해 조사하게 되고, 그를 사형집행에서 풀어주기로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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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단 말이라도 해야 되는 것 아닌가?라는 울리히의 말을 무시한 채, 그곳을 빠져나온 천샤오보. 하지만 자신과 뜻을 같이한 동료들은 사정없이 죽어갔기 때문에, 그의 호의가 고맙지 않다. 그가 목격한 인간의 잔혹함과 잔인함, 그리고 무자비함은 손녀를 보게 된 지금까지 마음 속에 남아있다. 그리고 그 기억은 현재의 울리히와 천샤오보에게도 끊임없이 되살아나는 기억이다.

하지만, 그 기억을 자꾸 손녀인 바넷사가 살려낸다. 바넷사는 오페라 연습을 위해 동료를 집으로 초대한다. 바넷사가 맡은 역할의 죽음을 생동감 있게 연습하기 위해, 그녀는 할아버지의 총에 손대게 된다. 그 총이, 사실은 진짜 총이었으며 그 총을 들고 있는 것에 크게 화난 할아버지를 보며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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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의 장면은, 너무나 의도적이게도 혁명 지지자를 죽이는 장면. 그 속에서 천샤오보는 과거의 울리히와 자신을 연상한다. 또한, 그 총을 들고 있는 바넷사의 동료 역시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남자였다. 결국 둘은 연습을 그만두고 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바넷사는 할아버지에게 또 다른 역할을 부탁한다. 너무나 잔인했다. 사실 우리는 현실에서 누군가의 심정을 먼저 이해하고,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 바넷사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만약 내가 바넷사였어도, 할아버지에게 왜 그랬냐고 질책할 것이고, 동료에게 할아버지의 나약한 모습을 보여준 것이 더 신경 쓰였을 것이다. 하지만 천샤오보가 겪은 고통을 이미 알기에, 바넷사의 행동에 화가 났던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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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결국 누구의 관점에서 극을 이해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천샤오보의 관점, 울리히의 관점, 바넷사의 관점. 천샤오보의 상처와, 그것들의 잔상들이 몇 십 년이 지나도 이어지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의 고통은 그 자신만이 알기에. 울리히는 자신이 하는 일이 자신의 조국에 기여하는 일이라고 세뇌 받았기 때문에 사람을 죽이는 것이 끔찍함을 알면서도 멈추지 못했음을. 결국 훈장이라는 결괏값이 주어졌지만, 자신의 정신적 고통은 보상받았을 수 없었음을. 바넷사는 이때까지 누군가에게 전쟁에 대해, 운동에 대해 그 피해자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환경에서 살아왔다. 따라서 할아버지를 이해하는 것이 힘들고, 자신의 오페라 연극이 더 중요한 일임을.

마지막 자신을 향한 총을 쏘는 울리히를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한때, 사람을 죽이면서 보여줬던 뻔뻔한 모습들과 당당한 모습들이 그저 간호사들에겐 귀찮은 할아버지가 되어버렸다. 그러고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말았다. 천샤오보도, 울리히도 시간이 지나면서 정신적 고통을 가지면서 시간을 보냈다는 것을 너무나 사실적으로 드러낸 이 연극을 보고서, 각자의 입장에 대해 조금은 짐작해 볼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또, 그러한 상처에 대해 치유하고 사색해보는게 어떨까하는 질문을 던져준 연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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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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