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남성을 향한 총격, 니키 드 생팔전 [전시]

글 입력 2018.07.15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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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키 드 생팔 전, 마즈다 컬렉션
Niki de saint phalle works from the Masuda collection


2018년 06월 30일부터 09월 25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 미술관 1층에서 전시





처음에 문화초대 안내 메시지를 받았을 때는 모르는 작가라 전시에 가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아트인사이트 홈페이지에 들어와서 홍보 글을 보는 순간 온갖 남자들에게 총을 쏜다는 문구를 보고, 갑작스럽게 가고 싶어졌다.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고, 인권 문제에는 사실 별 관심 없는 사람이다. 현재 페미니스트의 움직임은 조금 과격하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내가 평생 남자들에게 사랑받는 여자였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오히려 나는 `남자`를 증오해야 하는 사람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1961년 나는 총을 쏘아댔다. 아빠, 평범한 남자, 위대한 남자, 중요한 남자, 뚱뚱한 남자, 그냥 남자, 내 오빠, 사회, 교회, 의회, 학교, 내 가족, 내 엄마, 나 자신을 향하여, 모든 남자들을 향하여. 나는 쏘았다. 그것이 재미있기 때문에 그리고 아주 끝내주는 감정을 주기 때문에 나는 그림들을 죽여버렸다. 그것은 새로운 탄생이었다. 희생자 없는 전쟁이었다.


아주 슬픈 이야기를 하나 하려고 한다. 아직은 내 안에서 아물지 못한 이야기를.

대학교 1학년 때였다. 경상도에서 20년간 살다가 서울로 올라온, 세상 물정 몰랐던 20살 때의 이야기다. 그때의 나는 서울의 온갖 새로운 것에 놀랐다. 과일 소주의 맛에 놀랐고, 대학교에 수많은 커플이 손을 잡고 다니는 광경에 놀랐다. 모든 사람이 사투리를 쓰지 않고 표준어를 사용하는 것에도 놀랐고, 선배들은 20대 후반인데 아직 학교에 있다는 것에도 놀랐다. 15학번인 나에게 08학번이라며 다가온 선배의 나이에도 놀랐고, 커다란 학교 강의실과 건물에도 놀랐다. 학교캠퍼스에서도 길을 잃기 일쑤였고, 학교 가는 길도 몰라서 산까지 올라갔던 기억도 있다.

학창 시절 공부를 너무 열심히 했던 나에게 술자리 문화는 정말 재미있었다. 다들 자기 일상생활을 살다가 저녁 7시, 8시쯤이면 모여서 술 한잔 하면서 서로에 대해 알아가기도 하고 술 게임을 하기도 했다. 거기에 술을 한잔 곁들이면 기분이 아주 좋아져서 새내기 때는 거의 매일 술자리에 참여했다. 좋아하는 선배도 있었다. 내가 보기에는 잘 생겼었다. 쌍꺼풀이 아주 진해서 눈알이 튀어나올까 봐 걱정스러울 정도였던 그 선배는 늘 나를 술자리로 불렀고, 내가 너무 재밌다며 결혼하고 싶다는 농담을 하고는 했다. 그 선배가 좋았기 때문에 나는 그 선배와 사귀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그런 술자리에서 매일 만나는 게 너무 재밌었다. 내가 술에 취해서 몸을 가누지 못할 때까지 마셔도 선배들은 늘 나를 기숙사까지 잘 데려다주었다. 학교는 거의 다니지 않고, 저녁이 되면 술이 깨서 다시 술을 마시러 가는 그런 생활을 했다. 학교수업을 가려다가 술에 취해서 강의실에서 쓰러진 적도 있다. 원어민이 진행하는 영어수업이었는데 원어민이 나를 집으로 보내라고 했단다. 나는 나보다 키가 작은 동기에게 업혀 질질 끌려서 기숙사로 옮겨졌었다. 그렇게 3월을 보냈다.

그러고 4월 1일 만우절 날. 그 날도 나는 좋아하는 선배가 불러 술자리에 갔는데, 그 선배 옆에 웬 여자가 앉아있었다. 그 선배는 영어 영문과에 아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그 자리가 너무 불편했다. 다른 선배들과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기는 했지만, 선배 옆의 그 여자가 계속 신경이 쓰였다.

결국은 막차시간이 될 때쯤 선배가 여자를 버스정류장까지 데려다준다고 하면서 둘이 같이 나갔다. 그리고 1시간, 2시간이 지났지만 결국은 돌아오지 않았다. 나도 집에 가고 싶었지만 이미 기숙사 통금시간은 지난 지 오래였다. 남은 다른 선배들과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언제부턴가 다들 자취방으로 떠나기 시작하셨고 처음 보는 한 남자 선배만 남았다. 다른 선배들은 그 선배에게 나를 기숙사 통금시간 때까지만 책임져달라고 부탁했다. 남아있던 그 선배는 그 날 처음 온 사람이었고 아무도 이름을 말해주지 않았다. 그 선배가 해장하자며 국밥집으로 나를 데려갔다. 그러면서 해장술을 권하기에, 나는 한 달간의 경험으로 한 잔만 더 마시면 취하겠다는 걸 알고 있어서 거절했다. 그런데 그 선배가 계속 마시라고 강요해서 그 한잔을 마셨고, 기억을 잃었다. 3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그때의 소주잔에 가득 담긴 소주 한잔의 맛을 기억한다. 굉장히 썼고, 달았다. 정말 마시기 싫어서 입안에 한참 머금고 있다가 지켜보는 그 선배의 눈 때문에 결국은 삼켰다.

나는 알코올성 치매가 좀 심하게 있어서 주량을 넘기는 순간 기억이 사라진다. 필름이 끊긴다는 말로 그것을 대신할 수 있을까? 내 성격은 그대로고, 하는 행동과 말도 그대로라고들 하지만 정작 나는 기억 자체를 못한다. 알코올성 치매의 원리는 원래 행동이 기억으로 전달되는 과정에 있는 뉴런들이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다. 남들은 기억이 가끔 끊기지만 나는 술을 좀 마셨다 하면 언제나 기억이 사라져버렸고 의식 자체가 없는데 `나`로 행동을 한다. 정말 거짓말 같은 일이다. 지금은 술을 끊어서 그런 일은 없지만, 당시에는 늘 술을 마시고 기억을 잃는 게 습관이었고 친구들, 선배들이 잘 챙겨주었기 때문에 심각성을 느끼지 못해서 같은 행동을 반복해왔다.

그때도 늘 그랬듯이 기억이 사라졌다. 그리고 가끔의 기억은 있다. 다음으로 기억나는 장면은 도서관 앞에 의자에 앉아서 "기숙사에 들어가야 해요."라고 중얼거렸던 거다. 그다음 기억은 택시 안이다. 어디로 가자고, 이름도 모르는 그 선배가 말했고 다시 기억이 사라졌다. 그다음 기억은 아직도 내 입으로는 담기 힘든 기억이다. 그 선배가 자신의 성기를 내 입에 물리고 있었고 나는 성 경험이 아예 없었기 때문에 음식을 씹듯이 그걸 씹었다. 엄청난 고무 타이어 냄새가 머릿속에 남았다. 질겼다. 그 선배가 비명을 질렀나? 그건 모르겠다. 다시 기억이 사라졌다. 그다음에 떠오른 기억은 침대에 두 팔을 엎드려있는 내 모습이다. 나는 수동적으로 그 기억들을 떠올릴 뿐이고 그 과정 속에는 나의 의식은 없다. 그저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그러고 있는 나를 지켜보듯이 나의 의지가 없었다.

다음날 정신을 차리고 눈을 뜨자 낯선 방이었고 낯선 침대였다. 내 옆에는 어제의 그 선배가 자고 있었다. 화장실을 갔더니 속옷이 온갖 피범벅이 되어있었다. 너무 쓰리고 아팠고 걷기도 힘들었다. 다시 방으로 돌아왔는데 휴대전화기 배터리가 없었다. 그 선배의 충전기로 충전해보려고 했지만, 아이폰이라 충전이 아예 안 됐다. 누군지는 알아야 할 것 같아서 방을 좀 탐색해봤는데 아무것도 알 길이 없었다. 정말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었다. 같은 과 선배인지도 사실은 잘 모르겠다.

방 구조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 속에 남아있다. 문 앞에 커다란 자전거가 있었고, 문의 왼쪽으로 화장실이 작게 있었던 반지하의 원룸이었다. 책상과 침대를 제외하면 거의 발 디딜 곳 없었던 그 집에서 벗어나 기숙사로 가려고 했다. 걷다 보니 또 길을 잃어서 주변 마트에서 길을 물어 겨우 학교로 갔다. 그 집이 어디 위치에 있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나에게서는 생전 처음 맡아보는 남성의 분비물 냄새가 났다. 기숙사로 오자마자 씻지도 않고 침대에 누워 잠들었다. 더는 수업을 가는 건 중요하지 않은 문제였다. 다시 일어나서는 나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화장하고 셀카를 찍었다. 그렇지만 더는 좋아하던 선배의 술자리에는 나가지 않았다.

그때부터 서서히 변했던 것 같다. 누구에게도 그 사실을 말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점점 우울해지고 차분해져서 눈의 생기를 잃어갔다. 없었던 일처럼, 그러나 어떤 일보다 사실은 생생한 아픔을 간직하고 있었다. 사실을 외면하고 그 감정을 외면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일이었는지 몇 년간 끝나지 않을 우울증을 앓고 있다. 몇 년 뒤, 나는 친구 두 명과 남자친구에게도 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고, 학교 상담소에 찾아가서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와 우울증 치료를 6개월간 받았다. 친구들은 자기들이 그때 뭘 하고 있었느냐며 자기 탓을 했다. 남자친구는 대신 욕을 해주었고 상담사 선생님은 그 일에 대해 열심히 말을 하려고 하지 않는 수동적인 내가 말을 한마디 겨우 할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그 모습들에서 많은 위로를 받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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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학교에서 그런 일이 있다면 바로 들고일어날 정도로 여성의 인권이 많이 나아졌다는 것을 안다. 아마 그 당시에도 내가 조금만 더 용기를 냈다면 그 선배가 신고당할 수는 있었을 것 같다. 당시의 나는 빠른 년생으로 학교에 들어와서 미성년자였고 미성년자 성폭행으로 경찰에 넘길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 선배를 알 방법도 좀 많았다. 이름은 전혀 몰랐지만, 군대를 다녀왔고 경영학과로 전과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 학교는 2, 3학년까지만 전과를 할 수 있는데 당시에 군대를 다녀오고 전과준비를 한다면 11학번~12학번 사이일 것이다. 그렇게 하나씩 추측하다 보면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아쉽다.

어린 나에게 그런 짓을 저지른 그 사람을 나는 꿈속에서 몇 번이고 죽였다. 그 사람의 특징으로 대변되는 `남성`이란 존재를 증오했다. 그래서 많은 연애를 했지만 나는 전 남자친구들을 사랑할 수 없었다. 그들과 사랑을 나누면서도 나는 그 과정에 죄책감을 느꼈고 그런 행위를 하는 자신을 스스로 증오했다. 내가 사랑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늘 전 남자친구들에게 잠적을 하기 일쑤였고 사귀면서도 사귀지 못했다. 늘 상대의 사랑을 회피했고 만나지를 않았다. 그리고 늘 먼저 감정을 잃었다. 사실 애초에 없었던 감정일지도 모른다. 한때는 단순한 관계만을 찾기도 했다.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남자들을 하루에도 두세 번씩 만나고 다니며 자신을 괴롭히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아빠마저도 두려워졌다. 어릴 때는 아빠와 성격이 닮았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서로 깊은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이해를 하는 존재라고 생각해 동질감을 느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아빠를 막연히 피하고만 있다. `남자`가 무섭다.





Niki de Saint Phalle, Nana Fontaine Type, 1971, 1992 ⓒ 2017 Niki Charitable Art Foundation, ADAGP, Paris - SACK, Seoul.jpg


"카드 놀이를 할 때처럼,
우리는 규칙을 모른 채 태어나는 것 같아.
하지만 어쨌든 손에 쥐어진 카드들을
제대로 써야겠지."

_니키 드 생팔


나는 다른 23살의 여자들보다 세상 물정을 몰랐기에 힘든 일을 더 많이 겪었다. 남들은 평생 한 번 겪으면 재수 없었다고 할 일들을 한꺼번에 거의 다 겪었다. 그러면서 심각한 우울증을 앓기도 했는데 그러면서 배운 게 있다.

어차피 인생을 살면서 겪을 일을 지금 겪는 거다, 라고. 그리고 나는 그런 과거에 의해 정의되지 않는다는 것. 과거들의 흔적이 쌓여 현재의 내가 되기야 하겠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내가 이런 일들을 이겨낼 수 있는지, 아닌 지이며, 어떻게 이겨내서 앞으로의 나는 어떤 모습이 될지, 라는 거. 정말로 내 앞에 놓인 것은 과거의 내가 아니라 현재와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 미래의 나이기 때문에 나는 그런 일들을 겪어도 더 우울함에 매도되지 않는다.

한때는 내가 상처투성이 인형같이 느껴져 더는 손가락으로 막을 수조차 없을 만큼 많은 상처들 때문에 아파하며, 불을 끄고 눈물로만 지내던 나날들도 있었지만 지금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앞을 보고 노력하며 살고 있다.

나를 모르는 누군가는 나보고, 너무 인생을 쉽게 살아서 아무것도 모른다. 세상 물정 모른다고들 한다. 정말 그럴까?

나는 내 삶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주변에 흐르는 대로, 앞으로도 지금까지보다 많은 상처를 받겠지만 나는 상처들에 좌절하지는 않을 거다. 그 고통은 과거의 나를 아프게 하고 힘들게는 했지만, 현재와 미래의 나에게까지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니키 드 생팔의 말들은 그런 나의 모습과 너무도 비슷해서 잠시 과거의 어렸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순수하고 그리운 어린 나. 하지만 어쩌면 아직도 그 모습과 똑같을지 모르는 현재의 나. 나는 내 삶을 사랑하고 있다.


[박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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