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성냥갑이 들썩이는 소리,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공연]

글 입력 2018.07.11 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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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삶을 살아가는 어느 순간 문득, 길을 잃은 듯 눈앞이 캄캄해지고 막연해질 때가 있다. 무언가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만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고없이 다가오는 공허함과 불안으로 나의 존재 자체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때. 분명 눈앞에 환하게 켜져 있다고 생각했던 불이 꺼지고 내딛는 한발 한발이 불안하게 느껴질 때, 당신은 삶에 대해 어떤 모습으로 맞섰는가.

 
 
현대사가 된 인생사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알란 칼손. 그는 어렸을 때부터 폭탄 제조 기술을 배워 일생을 폭탄과 관련된 일을 하며 살아가게 된다. 우연히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정치인, 학자들에게 도움을 주지만 그의 폭탄 기술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에게 떠밀려 때로는 원치 않는 일도 하게 된다. 그렇게 스웨덴에서 프랑스, 미국, 중국, 북한, 러시아 등지를 다니며 여러 곳에서 친구를 사귀고 세계사에 남을 중요한 순간에는 아무도 모르게 발자취를 남기기도 했다.

그의 100년 인생사는 곧 현대사가 되어, 누구를 만나도 들려줄 이야기가 한가득인 알란은 100세 생일날에도 자신과 함께할 술, 친구, 편안한 쉼터를 찾아 또 다른 삶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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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은 그 자체일 뿐


알란은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어머니가 하신 말씀을 새기며 일생을 그 말과 같이 살았다.
 

“사건은 일어난 그 자체일 뿐이야.”

 
일어난 일은 일어나버렸으니, 앞으로의 시간을 소중하게 너 자신대로 살아가라는 것. 그러나 극에서는 이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관객에게 전달하지는 않는다. 알란의 긴 이야기를 통해 그가 위기의 순간에서, 불안과 공포를 느낄 만한 사건에서 했던 말과 행동으로 자신이 들었던 어머니의 말씀을 보여줄 뿐이다. 수없이 죽을 뻔한 상황에 놓이면서도 되려 침착하고 유머있게 시간을 넘기는 알란의 무덤함이 관객에게는 그저 신기하게 보일 정도이다.

때로 그가 태어났을 때부터 100살이 아니었을지 생각하게 되는 특유의 여유로움은 주변 이들에게 감동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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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삶의 고비를 어린 나이부터 끊임없이 겪어와서 얻게 된 능력이라면 능력일 그의 성격에도 기준은 늘 있었다. 예의있게 사람을 대할 것, 무엇이든 똑같은 시선으로 바라볼 것. 이 두 가지를 잘 지켜 살아낸 것으로도 그는 좋은 사람들을 만나 우연한 기회에 공을 세울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충만한 삶을 사는 것에 많은 것은 필요치 않았다. 자신에게 중요하고 우선시되는 무언가를 지켜낼 수 있다면, 그것이 신념이든 사람이든 괜찮은 삶을 보낼 수 있다. 알란 칼손은 그런 사람이었다.

 
 
유일한 친구 볼로토프를 떠나보내고


모든 것에 크게 화를 내거나 울어본 적이 없었던 알란이 일생에 한번 크게 울고 분노한 사건이 있었다. 그가 키우던 고양이 볼로토프의 죽음. 온전히 알란을 따랐고 행복을 나누며 진심으로 아꼈던 유일한 친구가 죽자 알란은 모든 의지를 상실했다. 거대한 사건과 사람들 앞에서도 늘 당당했던 그에게 친구가 얼마나 소중하고 큰 존재였는지를, 한편으로는 긴 삶 동안 제대로 된 친구 하나 만들기가 무척 어려웠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지난 시간에 대하여, 자신을 괴롭히는 모든 것들에 대하여, 세상에 대하여 울부짖는 그의 모습은 마치 어린아이의 울음과도 같았다. 오직 볼로토프만을 위한 분노와 괴로움으로 외친 말들은 오히려 순수해 보이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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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삶은


알란은 기구하고 굴곡이 많은 삶을 살았다. 지금도 끝나지 않았다고 외치며 주머니 속에서 들썩거릴 그의 성냥갑은 알란을 또 어디로 데려갈지 알 수 없다. 어떤 일들을 마주하고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될지는 100년을 살아도 여전히 알 길이 없지만 삶에 대한 그의 태도는 언제나 같다. 사건은 일어난 그 자체야, 일어나버린 뒤에는 어쩔 수가 없지. 이런 알란이 혹자는 답답하고 대책없이 낙천적이며 비현실적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알란의 삶이 모두 맞는 결정으로만 채워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야기의 끝은 더욱 의미가 있었다.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습니까, 그때 어떤 말을 할 수 있었을까요 하며 조곤조곤 물어오는 것이 극의 의도와 더 가까울 것 같다.
   
알란의 삶을 보며 당신이 느끼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볼까요 - 당신의 성냥갑은 어떤 소리를 내나요?
 
 
[차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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