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뮤지컬은 고상한 취미생활인가? [공연예술]

무대 뒤의 씁쓸한 현실에 관하여
글 입력 2018.06.22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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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을 좋아하기 시작한 건 고등학교 3학년부터였다. 보고 싶었던 공연은 신도림에 있는 디큐브아트센터에서 열렸다. 대학 준비 때문에 지방의 학교에 다닌 나는 보러 가기 힘들었다. 그렇지만 방학 중에 잠깐 시간을 내어 서울에 가서 공연을 보았고 인터넷에서 공연 영상이나 넘버(뮤지컬 음악)를 찾아 듣기도 했다.

나는 새로 생긴 내 취미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그러나 뮤지컬을 좋아하는 사람은 주변에 거의 없었다. 트와이스를 좋아하는 친구는 뮤지컬 얘기를 꺼냈더니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우와 멋져! 되게 고상하네.”

뮤지컬이 고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이돌이 콘서트를 한다면 보러 가는 것처럼 나도 공연을 보러 가고 음악방송에 출연하는 것처럼 뮤지컬 배우들도 방송에 나와 홍보를 하고 프레스콜(공연 홍보를 목적으로 기자를 초청해 일부 장면을 시연하는 것) 영상을 올려주기도 하는데 왜 고상하다는 걸까. 이후에도 내 취미를 소개할 때 연극/뮤지컬 감상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비슷했다. “보는데 돈 많이 들지 않아요?”/“고급스럽네요.” 과연 내가 수준 높은 것일까. 그런 말들을 들으니 내가 비주류 취미를 갖고 있고 감성이 비주류라고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왜 뮤지컬이 비주류 장르인지 의문이 들었다.

뮤지컬 수요는 영화나 대중음악과는 다르게 적다. 애호가들의 수요가 절대적이며 그들은 한 공연을 반복적으로 보기도 한다. 제작사 쪽에서도 애호가들을 더 끌어들이기 위해 재관람 혜택을 만들기도 한다. 그렇다면 왜 수요가 한정적일까. 이유를 몇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뮤지컬이라는 장르 자체에는 제약이 많다. 노래, 춤, 연기를 아우르는 종합예술이다. CD로 들으면 되는 가수의 음악과는 다르게 눈으로 봐야 하는 예술이다. 그렇기에 일정 규모 이상의 공연장이 필요하다. 뮤지컬 공연장은 주로 도시에 있으며 대다수가 서울에 몰려있다. 서울에는 공연예술의 메카라고 할 수 있는 대학로가 있으며 공연장이 밀집된 거리가 따로 있을 정도이다. 그 외 지방에도 예술의 전당이 있지만, 규모 있는 대도시 외에는 공연장을 찾기 힘들다. 대전의 경우 소극장 공연을 제외하면 대극장 공연은 대부분 대전문화예술의 전당에서 열린다. 그만큼 지방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뮤지컬을 접할 기회가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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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가의 티켓은 대중들이 뮤지컬에 입문은 저해하는 제약 중 하나다. 대극장 뮤지컬 VIP석의 가격은 대부분 14만 원이다. 게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좌석 비용은 계속 인상된다. 심지어 개막 예정 뮤지컬인 ‘웃는 남자’의 경우는 관객이 많이 몰리는 금, 토, 일 주말과 그 외의 날의 가격을 따로 책정했다. 주말 공연은 현재 평균 VIP석 가격보다 비싼 15만원이다. 누군가에게는 보름치 생활비가 될 수도 있는 비용이다. 중소극장도 대극장과 같이 티켓 가격이 계속해서 오르고 있다. 제작사에서 마케팅으로 다양한 할인항목을 만들지만 여전히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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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석 가격 책정의 기준은 무엇인가. 제작사에서 한 작품을 올리기까지 투자하는 비용은 상당하다. 공연장·연습실 대관료, 배우·스태프 출연료, 무대·의상 디자인비용, 마케팅비용, 라이센스 뮤지컬(해외 뮤지컬의 저작권을 지급해 넘버를 한국어로 번안하고 한국인 캐스트로 공연하는 뮤지컬)와의 경우에는 라이센스 비용을 지급해야 한다. 이 모든 비용을 객석 판매로 회수해야 한다. 좌석이 고가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익을 남기지 못하고 폐막하는 경우가 상당수이다. 손실이 난다면 제작사는 빚을 안게 되고 해당 작품이 상업적 가치가 떨어진다고 판단해 무대를 더 올리지 않기도 한다. 한국에서 인기가 높은 ‘지킬 앤 하이드’(해외에서는 흥행이 한국보다 다소 낮다)나 ‘노트르담 드 파리’는 뮤지컬 시장에서 살아남은 작품이다.

기형적인 구조로 인해 제작사가 관객을 고려하지 않아 벌어진 사건도 왕왕 있다. 2014~2015년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10년 공연에서는 관계자가 관객을 희롱하는 글을 SNS에 게시해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 외에도 무대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 좌석을 합리적이지 않은 가격에 판매하는 등의 문제가 있었다. 애호가층이 공연을 볼 것이라는 제작사의 무조건적인 믿음으로 사건이 일어났다. 이것은 오히려 뮤지컬 팬들에게 실망감을 안기고 비싼 돈을 낸 관객이 더 이상 뮤지컬을 찾지 않는 역효과를 만든다.

뮤지컬 분야에서는 진입 장벽을 낮추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인기 연예인을 캐스팅하거나 익숙한 대중가요를 넘버로 사용해 사람들이 친근하게 볼 수 있는 작품을 제작한다. 뮤지컬 ‘그날들’은 故 김광석의 음악을 중심으로 내용이 전개된다. 그러나 뮤지컬이 특별한 날에 보러 가는 고급문화라는 인식은 아직도 강하다. 문화생활에는 등급이 없다. 뮤지컬은 겉으로만 화려할 뿐이지 무대 뒤에서는 진흙탕 싸움이 빈번하다. 대중이 즐겨 찾는 문화예술이 되기 위해서는 시장구조를 개혁하는 등의 과제가 남아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뮤지컬 종사자가 관객을 위해야 한다. 예술가에게는 소중한 하나의 작품으로, 관객에게는 만족도 높은 하나의 공연으로 남기 위해서는 큰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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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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