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이야기] 책갈피: '첫번째' 에필로그

이야기는 앞으로 나아간다
글 입력 2018.05.18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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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쌀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할 무렵 처음 세상에 나왔던 글이 계절이 두 번 바뀌고 끝났다. '이야기의 이야기'라는 다소 거창한 이름을 내세웠지만 취지는 단순했다. 내가 좋아했던 이야기를 돌아보고 그 속에서 새롭게 피어나는 이야기, 여전히 유효한 이야기를 찾아내 다른 사람과 나누어보자는 마음이 시작이었다. 그러나 이미 한 번 나를 통과한 이야기에서 또 다른 이야기를 발견하는 건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 고요히 가라앉아 있는 이야기를 다시 휘저어 들여다보는 일은 마치 오래 전 묻어 둔 타임캡슐을 파내는 것과 비슷했다.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과거는 내가 기억하고 있는 모습과 다를 때가 많았다. 잊고 있었던 이야기를 새롭게 발견하는 건 즐거웠다. 그러나 아무리 이야기를 휘저어도 특별히 나오는 게 없는데 글을 써야 할 때는 곤란했다. 더 이상 살아 있지 않은 것을 억지로 살아 있는 척하는 건 아닐까 의심스러웠다.

수많은 회의 속에서도 계획했던 여덟 편의 이야기를 모두 다룰 수 있었던 건 간간이 '잘 읽었다' 라고 말해 주는 사람들 덕분이다. '이야기의 이야기'는 읽는 사람이 없었다면 아무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불특정 다수에게 내보이기에 다소 부끄러운 이야기였지만 누군가 한 사람에게라도 가닿았다면 그것만으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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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라는 단어는 많은 것을 담고 있다. 처음과 중간, 끝이 있는 서사를 '이야기'라고 흔히 일컫지만 그저 두서 없이 말하는 행위도 우리는 '이야기한다'고 표현한다. 사람은 이야기를 만드는 주체이면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대상이기도 하다. 이야기 없이 삶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너무 큰 비약일까. 그만큼 사람은 이야기와 가까운 존재다.

어렸을 때 이야기가 재미있었던 까닭은 그것이 현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실화를 그대로 옮긴 게 아닌 이상 아무리 현실적인 이야기일지라도 결국에는 현실이 아니었다. 이야기는 일종의 도피처였다. 나는 현실에서 거울 속 내 모습을 똑바로 마주할 자신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거울을 보는 대신 수많은 이야기 속 인물에게서 나 자신을 찾으려 했고, 그 모습에 안도했다. 인물이 이야기의 한 중간을 가로질러 당당하게 걸어가는 모습을 보며 대리만족했다. 종종 이야기를 읽고 두근거리는 마음이 진정되지 않을 때면 현실에서도 모험이 펼쳐지길 기대하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현실에서 모험의 단서가 될만한 사건이 펼쳐질 때면 그걸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현실의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으로 살아남을 자신이 없어서였다. 있는 그대로의 나로는 항상 모자란다고 느꼈기에 나 자신으로 살기보다는 다른 사람을 연기하기에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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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 나는 내 모습대로 세상을 마주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이제 나 자신이 두려움이 많은 사람, 쉽게 불안해지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다른 사람이 되는 대신 내가 좋아하는 것, 안정을 주는 환경, 편안하게 여기는 사람을 현실에서 찾으려 애쓴다. 나는 자기계발서에 나오는 누군가처럼 매 순간 모험 속에 나를 던지면서 살아갈 수는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내 이야기 속에서 나는 꽤 매력적인 주인공이다.

예상대로 흘러가는 이야기는 많지 않다. 엄마는 나를 임신했을 때 내가 <빨간머리 앤>의 '앤'처럼 활발하고 상상력 넘치는 아이로 자라길 바랐지만 실제의 어린 나는 조용하고 모범적인 '다이애나'에 더 가까웠고, 2년 전만 해도 아트인사이트의 존재를 몰랐지만 지금은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구체화되지 않은 미래가 내 손이 닿기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가능하면 '나답게' 미래를 향해 손을 뻗을 것이다. 불안하다면 불안한대로, 두렵다면 두려운대로. 다만, 그런 것들이 핑계가 되지 않도록 노력한다. 이런 인물이 느리게 그려가는 이야기는 어떤 모습으로 펼쳐질지 궁금하다.

사실, '이야기의 이야기'도 그렇다. 시즌2 같은 걸 할 수 있을지 지금으로서는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첫번째' 에필로그라는 말을 붙인 이유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싶어서다. 닫힌 결말보다는 열린 결말을 좋아한다. '끝'이라는 단어로 앞으로 나아갈 수도 있는 길을 막아두고 싶지는 않다. 어떻게 될지 아무것도 알 수 없지만, 이야기의 앞으로 다시 한 발 내딛을 때까지 책갈피를 꽂아둔다고 생각하려 한다. '여기까지 읽었으니 다시 펼칠 때 기억할 것' 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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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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