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고도를 기다리는 것'에 관하여, 한 관객의 태도의 변화

'고도란 무엇인가'에서 '고도가 무엇이든'까지
글 입력 2018.05.18 0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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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도를 기다리며 > 


이 연극이 매력적인 것은, 답이 없다는 것이다.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정말로 정해진 ‘답’이 없다는 것, 그것이 이 연극이 갖는 특징이자 매력이라는 것이다.
 
 이 연극을 보러갈 사람들, 그리고 보러갔던 사람들은 모두 ‘고도’가 무엇일지 알아보려고 노력하고 생각하고 힘썼을 것 같다. 필자만 해도 그렇다. 대체 그 고도라는 것이 뭔지, 베케트도 모른다는 그 ‘고도’라는 사람과 의미를 알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고 귀 기울였다.
  
연극 내내 고고와 디디는 기다리기만 한다. 그리고 관객들은 그 기다림을 지켜보기만 한다. 많은 후기글들이 말하고 있듯이, 사건은 아무것도 없으며 지루하다면 지루한 내용이 아닐 수 없다.
 


연극의, 차밍 포인트.
   
그런데도 이 연극이 필자에게 재미있고 매력 있었던 이유는, 그 기다리는 와중에도 관객들을 즐겁게 해주는, 그리고 그 연극에 빠져 현실을 잊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고도를 기다리며> 느꼈던 것들 몇가지를 짚어볼까 한다. 필자와 같이, 연극을 보고 온 사람들에게는 아주 공감 받을 만한 것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고고와 디디,
멍청한 사람들의 아무말 대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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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인 고고와 디디는 똑똑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기억력도 좋지 않고, 이런 이야기를 하면 저렇게 답한다. 막연히 듣고 있자면, 뭐라는 거야 싶은 것이다. 요즘 말로, 아무말 대잔치였다.

사실 필자는 그것을 사랑한다. 이성적으로 보았을 때, 전혀 맥락에 맞지 않은 것들, 또 효율적이고 가치로 꽉꽉 들어찬 말을 주고받는 것이 아닌 것들을 사랑한다. 그런 것들이 더 재미가 있기도 하고, 또 일상적인 맥락보다 ‘아무 말’에서 생각할만한 거리들이 더 많이 나온다는 것을 오랜 경험 끝에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필자의 이런 생각들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바보와 천재는 닮아있다.”
   
진중권의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이라는 책엔 이런 말이 나온다. 그래, 그동안 우리가 사랑한 광대라는 캐릭터의 인기를 설명하는 말이다. 멍청함을 바라보며 생기는 ‘연민’때문이 아니라, 자기보다 부족한 사람을 보며 느끼는 ‘뿌듯함’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간혹 던지는 '메시지'를 우리는 사랑한다. 또 그들이 종종 던지는 생각거리들은 요즘의 말처럼, 종종 우리의 ‘뼈를 때리’곤 하지 않나. 우리가 광대를 사랑하는 것은, 그 멍청해 보이는 사람들이 사실은 가장 현명한 질문과 말을 던지곤 하기 때문이다. 바보와 천재는 꽤,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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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와 디디는 바보였다. 신발이 안 벗겨져 오랫 동안 용을 쓰고, 똑같은 물음과 똑같은 대답을 반복하고, 어제 만난 사람을 기억하지도 못하고, 우스꽝스러운 말들과 행동들을 반복했다. 그런데도 관객들은 그들의 우스꽝스러운 아무말을 들으며, 무언가를 느꼈다. 삶에 관한 성찰을 경험했다.



고도란 무엇인가로 시작해서, 고도가 무엇이든
   
앞서 말했듯, 필자가 연극의 시작부터 가지고 있던 생각과 고민은 ‘고도가 대체 무엇인가’였다. 고도고도고도, 그게 무엇이기에 그렇게 고고와 디디는 기다리고 또 기다릴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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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든 생각은 고도는 이상이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높을 고에 이를 도, 그들은 높은 곳에 이르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었다. 이상의 세계, 그것을 고고와 디디는 앙상한 나무 아래에서 목놓아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해방, 광복, 혹은 반으로 잘려진 나라의 경우라면 ‘통일’도 그 이상에 들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필자가 곧 이 생각을 접은 것은 ‘고도’는 프랑스 원어로도 ‘godot'이라는 단어였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단어가, 중국의 한자로 이뤄졌을리 없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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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가 ‘이상’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 또 하나의 근거는, 연극 속의 고도를 기다리는 고고와 디디의 ‘상태’였다. 고고와 디디는 지쳐간다. 현실의 세계의 시간으로는 3시간 동안, 그들의 세상의 시간으로는 2일 혹은 그 이상의 시간동안 내일은 꼭 오겠다는 고도씨를 기다리며 둘은 지쳐간다. 고도가 이상이라면, 마냥 좋은 무언가라면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불행 속에서, 허리띠에 목을 메 죽으려고 할까. 필자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 좋은 것을 바라는 사람들이라면 이 연극 속의 두 기다리는 사람들 보다는 조금은 더 긍정적인 모습이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아마 그것이 긍정적인 것이었다면, 베케트는 그 둘의 모습을 조금 더 예쁘게 그려 놓았을테다.

언급한 것처럼, 고고와 디디는 기다리기만 한다. 지나가는 행인을 만나도, 가만히 있다가도, 그들의 하루와 이틀은 언제나 ‘고도’를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그들은 그래서 지쳐가고, 불행하고, 점점 더 슬퍼져 간다. 기다림이란 게 그렇다. 처음엔 설레어도, 결국엔 슬픔과 무기력이 스멀스멀 기어오른다.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거야"

"그럼 2시에는?"

고도가 무엇인지는 필자도 잘 모르겠다. 이상, 혹은 더 뭉뚱그려 ‘목표’로 대변되는 무언가가 아닐까. 중요한 것은, 우리는 언제나 그런 목표들을, 이상을 바라보고 살라고 강요받곤 했다는 것이다. 목표 있는 삶이 긍정적이긴 하다. 결국엔 많은 것을 참고 견디며, 앞으로 나아가게 할테니까. 또 그 목표를 만나면 누리게 될 행복도  아주 대단할 것이다. 하지만 연극에서 우리가 본 모습은 무엇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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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으로 인한 고됨과 우울이었다.

기다림이란 참 힘든 것이다. 그 무언가를 기다리고 바라보느라 현재를 바라보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고고와 디디의 모습도 그랬다. 고도를 바라보기만 하는 시간들은, 무력하고 또 텅 비어있으며 행복하지 못했다. 극단적으로, 그들은 죽음을 생각하기도 했다.

삶에서 우리는, '대학교 입학, 취업, 결혼, 그리고 가정을 갖는 것' 많은 목표를 기다리고 바라본다. 그 시간의 일부는 행복했겠지만, 그 이외 많은 시간에서 우리는 확실히, 행복하지 못했다. 고고와 디디처럼,그 ‘높은 곳’을 바라보느라 일상과 현실의 무언가를 버려왔기 때문에. 솔직히, 무언가를 기다린다는 일은 지치고 피곤한 것이다.



한 관객의 태도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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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기다림을 보며, 막연한 바라봄을 바라보며 한 관객의 태도는 변화했다.

‘그들이 바라보는 고도란 무엇인가’에서, ‘고도가 무엇이든’으로. 고도가 무엇이든 상관없다. 그것이 아무리 좋은 것이더라도, 그것을 만나기 전까지의 자신이 불행하다면, 그만큼 그것이 가치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었다.

결국에, 연극에 나온 것은, ‘고도’가 아니라, 고도가 아닌 사람들의 모습이었으니까. 목표도 좋지만, 결국 고고와 디디가 목표를 만나지 못해 꽤 우울하고 불행한 모습으로 극을 마친 것은, 그렇기 때문이 아닐까. 목표 그 전의 시간들도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은 아니었을까. 그렇게 한 관객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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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들은 산울림소극장의 인스타그램과,
직접 찍은 사진을 첨부하였습니다.


[손민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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