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르센 벵거: 아스널 인사이드 스토리 – 벵거를 떠나보내며 [도서]

글 입력 2018.04.25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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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더 이상 볼 수 없는 '아스널의 감독' 아르센 벵거
 

 지난 주 목요일인 2018년 4월 19일,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이하 EPL) 아스널의 감독 아르센 벵거가 이번 시즌을 끝으로 팀에서 22년간 여정을 끝내고 감독직을 내려놓겠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전 세계 축구팬들과 벵거를 아는 많은 축구계 인사들은 벵거가 아스널을 떠난다는 소식을 듣고 큰 충격에 빠졌다. 아스널은 곧 벵거이고, 벵거가 곧 아스날이었기 때문이다. ‘애제자’ 티에리 앙리, 메수트 외질을 비롯해 항상 설전을 벌였던 라이벌 감독 무리뉴, 그간 아스날을 거쳐 갔던 수많은 선수들이 SNS나 인터뷰를 통해 벵거의 결정에 대한 아쉬움과 그에 대한 깊은 존경을 표했다. 필자 역시 아스널을 꽤 오랜 시간 응원한 팬으로서 사임 소식을 뉴스로 접하고 한동안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언제나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아스널의 홈구장)의 벤치 한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만 같았던 노신사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충격이 조금씩 가실 때 쯤, 자연스럽게 책장에 있는 책 한 권에 눈길이 갔다.  < 아르센 벵거: 아스널 인사이드 스토리 >는 영국 미러(Mirror)지의 아스널 담당 기자 존 크로스(한국 팬들 사이에서도 ‘십자가 형’이라는 애칭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가 쓴 아르센 벵거의 평전이다. 20여년간 아스널 담당 기자로 일하며 벵거의 시대를 처음부터 끝까지 가까이서 지켜보고,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팀 내부의 사정들을 자세히 기록해 출간 당시부터 큰 화제가 됐었던 책이다. 한국어판은 골 닷컴의 이성모 기자가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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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센 벵거: 아스날 인사이드 스토리


 책에는 벵거가 그간 아스널의 감독으로서 겪었던 희노애락이 그대로 녹아있다. 존 크로스는 프랑스 국적(당시엔 EPL에 외국인 감독이 거의 없던 시절이다), 무명의 선수, 변방리그의 감독이었던 그가 어떻게 아스널의 부회장 데이비드 데인의 눈에 띄어 아스널로 오게 됐는지, 술과 담배, 불량식품에 찌들어있던 당시 아스널 선수들을 어떻게 EPL 최강팀으로 바꿔놓았는지, EPL에 전무후무한 무패우승이라는 업적의 뒷 이야기들, 클럽의 역사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바꿔놓을 수도 있었던 05-06시즌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하이버리라는 홈 구장을 떠나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을 짓게 된 계기와 이로 인해 발생한 재정난에 벵거가 어떻게 대처했는지, 레알 마드리드를 비롯한 세계 유수의 강팀들의 감독직 제안을 왜 뿌리쳤는지, 그리고 재정난으로 인한 10년 무관(無冠)의 세월의 종식과 새로운 에이스의 영입에 이르기까지 20년간 벵거의 발자취, 그리고 그간 있었던 비화들을 글에 녹여냈다.

 아르센 벵거는 190cm가 넘는 장신, 경제학 박사, 5개 국어에 능통하며, 감독으로선 세계에서도 손에 꼽히는 연봉을 수령하고, 매주 주말마다 6만명이 넘는 관중의 환호를 받는 사람이다. 또, 축구선수들에게 식단관리, 마사지, 요가의 필요성을 최초로 강조했던 선구자이자 축구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사회운동가이기도 했다. 하지만, 벵거는 위대한 만큼이나 외로운 사람이었던 것 같다. 자신을 아스널에 데리고 온 절친한 인물 데이비드 데인이 보드진에서 쫓겨나듯 퇴진했고, 재정난으로 인해 자신이 키워낸 세계적 선수들(패트릭 비에이라, 티에리 앙리, 세스크 파브레가스, 로빈 반 페르시 등)을 다른 팀으로 넘겨야 했으며 이로 인해 팬들이 쏘는 비난의 화살을 모두 홀로 맞아야만 했다. 벵거가 오기 전 아스널은 유럽 무대 제패를 노리는 빅클럽이 아닌, 평범한 중상위권 팀이었다는 사실을 팬들은 자주 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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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날 부임 초기의 벵거. 훗날 벵거는 "내가 아스날에 충성하는 이유는 변방에 있던 나에게 감독직을 제의했던 것이 엄청난 도박이었기 때문이다. 아스날이 나를 감독으로 선임한 것은 용기가 필요한 결정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아스날에 내 흔적을 남기고 싶다." 라며 아스널에 대한 애정을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벵거가 아스널에 남은 이유는 단 하나, 아스날에 대한 애정 때문이었다고 한다. 벵거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22년간 일주일에 7일, 5일이나 6일이 아닌 온전히 7일을 아스널에 바쳤다고 회고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변방 리그의 감독이었던 자신을 믿고 기용해준 아스날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마지막 퇴진 순간까지도 그는 아스날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사퇴 기자회견에 벵거는 “아스날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께서 팀의 가치를 소중히 지켜주길 바란다. 아스날에 대한 나의 사랑과 지지도 영원할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The Professor, 교수님이라는 별명을 가진 벵거지만 실상은 ‘아스날 밖에 모르는 바보’였던 것이다.

 책의 내용을 떠나 팬으로서 필자가 벵거의 마지막을 맞이하며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12-13시즌 홈에서 치른 챔피언스리그 16강 뮌헨전의 기억이다. 전 시즌 득점왕이었던 반 페르시가 떠나고 졸전을 거듭하던 아스널이 당시 최강팀 뮌헨을 만났으니 어려운 경기가 예상되었다. 벵거가 퇴진할 때가 됐다는 이야기도 본격적으로 흘러나왔다. 벵거는 경기 전 기자회견에서 평소 그의 성격과는 전혀 다른 신경질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경기는 토니 크로스, 아르옌 로벤, 프랭크 리베리 등을 앞세운 뮌헨의 압도적인 우세 속에 1-3 패배로 끝났다. 이 경기 도중, 자신이 일궈놓은 팀이 무기력하게 스러지는 것을 보며 눈가가 촉촉해진 벵거의 모습이 중계화면에 잡혔다. 벵거가 팀에 보내고 있는 무조건적인 헌신과 사랑, 그리고 그로부터 온 상실감이 여과 없이 드러난 그의 표정에 마음이 참 아팠던,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아스널과 벵거에 대한 애정이 한 층 깊어졌던 기억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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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ci, Arsene


 이제 아스널과 벵거, 그리고 팬들은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 22년의 아르센 벵거 시대는 이제 단 세 번의 홈경기만을 남겨놓고 있다. 팀의 132년 역사에서 가장 위대했던 감독의 퇴진이 쓸쓸하지 않도록 선수들은 남은 경기들을 승리로 장식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팬들은 벵거의 응원가 ‘There’s Only One Arsene Wenger’를 목청이 터져라 부를 것이다. 아르센 벵거는 오랫동안 구너(Gooner, 아스널 팬들을 부르는 애칭)들에게 기억될 것이고, 영원한 거너스(Gunners, 아스널의 애칭)의 지휘관으로 남을 것이다. 또, 닿지 않겠지만 이 글을 빌어 아르센 벵거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전하고 싶다. 당신과 당신이 지휘했던 아스널이 나의 10대, 20대 초반에 함께 해줘서 행복했다고, 단순한 공놀이가 아닌 삶의 커다란 의미였다고, 존경했다고 말이다.


[류형록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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