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작품 뒤의 작가를 바라보다 [새로운 예술을 꿈꾸는 사람들]

퉁명스러움으로 성장하는 작가와 관객
글 입력 2018.04.19 0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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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작품 뒤의 작가를 바라보다
[새로운 예술을 꿈꾸는 사람들]


퉁명스러움으로 성장하는 작가와 관객


새로운예술을꿈꾸는사람들_main.jpg
 

<현대예술은 어렵다. 책을 완독하고 현대예술에 더욱 관심이 생겼지만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내게 현대예술은 여전히 어렵다. 어렵게 느껴지는 까닭은 다음과 같다.

- 메세지를 이해하지 못함
- 메세지의 배경을 이해하지 못함

그러나 위의 이유 때문에 현대예술은 그 배경과 메세지를 이해할 경우 더욱 매력적이다. 작가가 의도한 작품의 감상 방법을 알았을 때 관람객 혹은 관중은 밀려들어오는 감동과 깨달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항상 옳다고는 할 수 없다. 개개인의 감상방법은 모두 다르고, 작가가 의도한 방법만이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것이 또한 현대예술의 묘미이기도 하다.)



새로운 예술을 꿈꾸었던 작가들, '사람들'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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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Noguchi Museum Gallery, Area 1


최도빈의 [새로운 예술을 꿈꾸는 사람들]에는 대표적이고 역사적인 현대예술을 창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 중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작품의 창작자, 작가를 이해하는 것이다. 해당 작가는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예술가를 사사했으며 어떤 삶을 살다가 세상을 떠났는지. 작가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다보면 자연스레 작가의 사상과 관념을 바라볼 수 있었다.

이에 따라 이 작품은 어떤 맥락에서 만들어졌는지, 어떤 걸 의도한 것인지 읽고 나니 작품을 바라보는 시각이 명료해졌다.예를 들어, 자연을 닮은 추상 미술을 했던 이사무 노구치의 생과 사사한 인물들을 보며 노구치 미술관에 전시된 돌 작품들을 '자연을 담은 조각들이구나'하고, 그 속에서 느껴지는 구조, 안정감, 동시에 큰 돌이 주는 역동성을 느낄 수 있었다.



책의 구성, 그리고 비판


형식적 측면에서 보자면 책은 1) 우리 시대의 시각 예술, 2) 과거 시대의 시각 예술, 3) 공연 예술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각 부에 맞는 전시, 행사, 공연 등이 에피소드 별로 10-14페이지로 이루어져 있어 끊어 읽기 좋다. 각 전시마다 개별 이야기이기 때문에 두꺼운 비문학 도서를 읽다가 느껴지는 당황스러움(나는 '길을 잃는다'고 표현한다) 내지는 지루함을 느끼기 힘들다. 종이의 질이 매우 좋아서 작가가 직접 찍은 사진들 혹은 제공된 사진들이 고화질로 인쇄되어있다. 이는 예술 서적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예술작품에 대한 설명을 예술작품을 직접 보지 않고 읽기란 매우 어렵고 때론 지루한 일이기 때문이다.

책 제목처럼 각 전시에 대한 설명은 주로 사람에 대한 설명으로 이루어진다. 다양한 전시와 공연을 다루되 그 전시/공연 작품 자체와 함께 그 뒷이야기를 다양하게 소개하기 때문에 작품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고, 작품을 알지 못하더라도 숨겨진 이야기를 읽는다는 생각에 책이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하지만 저자의 계몽적 어투, 미국에 대한 다소 무책임하게 긍정적인 관점은 읽기 불편했다. 각 에피소드의 마지막 부분에 1페이지 이내의 분량에 작가가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부분이 있는데, 굳이 필요한지는 의문이다. 설명문에서 논설문으로 바뀐 듯한 느낌에 당황스럽기도 했고 몰입에 방해가 되기도 했다.

미국에 대한 다소 무책임한 긍정성은 미국의 개인주의에 대해서 설명할 때 나타난다. p.118의 '미국 사회는 꽤 철저한 엘리트주의 사회지만 적어도 서로 존중하고 소통할 줄은 안다. 큰 빈부 격차가 경제적 자유를 억누르지만, 행동하는 정치적 자유는 보장된다.'라는 부분이다. 미국 사회의 개인화에 대한 내용은 공감했으나 과연 미국 사회가 서로 존중하고 소통할 줄 아는지 의문이다. 경제적 자유와 정치적 자유를 분리할 수 있다는 생각은 나이브하다. 흑인 빈민계층의 정치적 자유가 백인 중산층의 정치적 자유와 실질적으로 동등하다고 볼 수 있는가? 각자의 목소리를 낼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마주하는 억압 세력의 권력도 동일한가?



추천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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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ociete Anonyme 패널, @ Yale University Art Gallery


현대예술은 어렵지만 '어렵다'는 생각의 벽을 넘어 현대예술이 주는 감동을 느껴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하지만 여전히, 해석을 읽어야 이해할 수 있는 예술이 바람직한지는 잘 모르겠다. 직관적인 감각을 자극할 수 있는 예술을 좋아하지만 현대예술을 보며 직관적인 감동을 얻으려면 곧 안목을 길러야 한다는 느낌이다. 관객이 더 부지런해져야 하는 예술이라서 매력적이지만 그만큼의 대중성의 한계도 있는 것은 아닐까.

예를 들어서 자연을 닮은 추상 미술을 했던 이사무 노구치의 돌을 보고 '돌'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자연을 담은 조각'으로 바라보는 것은 관객의 역량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전달이 대다수 관객에게 되지 않았을 때 가장 쉬운 방법은 서로를 탓하는 것이다. 관객의 역량 부족 혹은 작가의 독단, 역량 부족으로.

*

우리는 좀 더 부지런한 관객과 작가가 되어야하는가? 나는 퉁명스러움이 성장을 이끌어내리라 믿는다. 작가의 퉁명스러움은 (때론 관객을 내치겠지만) 관객을 성장시킬 것이고, 관객의 퉁명스러움은 작가를 성장시킬 것이다. 서로의 중심을 잃지 않는 선에서 끊임없이 만나다보면 어느새 서로를 이해하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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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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