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Hi, Pop! 팝 아트 거장들의 이야기 [시각예술]

글 입력 2018.04.08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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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아트(Pop Art)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강렬한 색깔과 반복적인 이미지의 나열, 상업성, 친숙함 등등...팝아트는 대중 예술인 'Popular Art'의 줄임말로 1960년대 뉴욕을 중심으로 미술관에서만 보던 작품들이 거리로 나와서 대중들에게 음미되었던 미술의 한 패러다임을 의미한다. 수많은 복제의 난무와 주변에서 흔히 보던 소재의 사용으로 팝아트는 기존의 고귀하고,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원작'이 중요한 예술의 '그들만의 세계'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Hi, Pop' 전시회는 이러한 팝아트 시대를 이끈 로버트 라우센버그, 로이 리히텐슈타인, 로버트 인디애나, 키스 해링, 그리고 앤디 워홀의 작품과 이야기를 각 개인의 특색에 맞게 전시했다. 지금부터 한 명씩 거장들이 어떻게 미술 작품으로 대중에게 다가갔는지 알아보자.



1. 로버트 라우센버그


로버트 라우센버그는 초기에는 추상 표현파 작품을 냈던 작가이다. 그러다 1953년 이후부터 그는 주변에서 사용되는 의자 같은 물체를 오브제로 사용하여 거기에 색채를 과감하게 집어넣기 시작했다. 회화와 오브제가 결합된 이러한 형태를 '콤바인 기법'이라고 하는데 이로써 라우센버그는 팝아트 역사의 시작을 알렸다. 그는 추상주의의 되는 대로 해석되는 어려움을 거부하고 대중문화와 소비사회에 주목하여 일상의 사물을 미술에 접목시키면서 '그림이 생활과 예술의 결합이며 나는 그것을 구분하는 사이에서 행동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1960년대 실크스크린의 사용으로 그의 사물 표현 방식은 더욱더 풍부해진다. 그는 여러 신문을 오려 붙인 다음, 색깔을 다양하게 사용함으로써 미디어에 대한 비평, 당시 미국의 정치적 이슈 등에 대한 자기 발언을 한다. 대중들은 그의 '미국에 대한 이미지'를 소비하면서 그의 생각에 동의하든 반대하든 해당 작품들을 두고 많은 이야기를 하며 그들끼리, 그리고 작품 자체 및 작가와 소통할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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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전시회에서는 주로 신문 기사에 실크 스크린 기법을 가미한 60년대 작품들이 주로 전시되어 있다. 그때 당시 신문기사나 잡지를 많이 사용한 그의 작품은 시간이 흘러 현대에 이르러서 정치적, 역사적 의미가 더 두드러져 보여 한층 더 가치 있는 예술이 된 것 같다.



2. 로이 리히텐슈타인


작품 '행복한 눈물'로 유명한 로이 리히텐슈타인은 만화 이미지와 벤 데이(망점) 기법으로 팝 아트 확산에 큰 역할을 한 작가이다. 처음부터 그가 만화적인 그림을 그린 것은 아니었다. 그의 아들이 '아빠는 왜 만화 같은 그림은 못 그리나요?'라고 물은 것에 응답하기 위한 시도가 그의 예술 스타일을 완전히 바꾼 것이다.

리히텐슈타인은 만화의 한 장면을 정한 뒤, 그것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리메이크했는데 검은 윤곽선과 강렬한 원색, 그리고 동그란 무늬의 망점이 그것이다. 만화를 망점의 인쇄 기술과 결합시킴으로서 무한하게 생산될 수 있는 대중문화의 특성 역시 예술이 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당시에는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가 사회적으로 두드러지게 일어났는데 그것의 대표적인 예가 만화이다. 그는 사회적 문제를 가볍고 우습게 다루는 만화가 대량 생산되어 값싸게 퍼지는 것에 착안하여 그것을 리메이크 한 후, 말풍선 내용을 자신의 사회적 문제의식이 드러나도록 바꿔 대량생산 방식을 쓰면서 역설적이게도 예술적 승화로서 대량생산을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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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사진이 바로 만화의 대량생산과 가벼운 표현을 비판한 유명한 작품 '쾅!'이다. '내 작품이 원래의 이미지에 가까울수록 그것을 더 위협하고 비판할 수 있다.'라고 말한 그는 전쟁을 다룬 해당 작품의 원본이 전투기가 폭격을 받아 사람이 죽는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가볍게 읽히고 값싸게 대량으로 팔리며 게다가 자신이 복제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하다는 사실이 만화가 얼마나 사람을 무거운 주제에 대해 가벼이 생각하게 하는지를 깨닫게 해준다.



3. 키스 해링


키스 해링의 사람을 그리는 방식은 아주 독특하다. 성별이나 인종을 알 수 없는 막대기 같은 사람들이 장난스러운 자세로 돌아다니거나 모여있다. 현재까지도 많은 상품에 쓰이는 그의 그림 스타일은 광고 포스터에 마커로 그림을 그리는 것부터 시작되었다. 이후 지하철의 검은색 광고판에 분필로 낙서 같은 그림을 그리며 마약이나, 원자력, 남아프리카 인종 차별 정책에 반대하는 등의 사회 비판 메시지를 담았다. 당시에 낙서 미술 자체가 성행했었는데 키스 해링 특유의 사랑과 평화, 평등을 상징하는 그림들은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 충분했고 심지어 낙서 미술가들을 잡으러 다니는 경찰들 사이에서도 키스 해링의 팬들이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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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 해링은 다른 팝 아티스트인 앤디 워홀과도 친분이 있었는데 그가 사망했을 때 그를 추모하기 위하여 평소 좋아하던 디즈니의 미키 마우스와 앤디 워홀을 섞어서 그의 사람 캐릭터들이 그를 존경하고 떠받드는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위 사진의 세 작품). 처음에는 쥐와 사람을 섞다니 앤디 워홀을 풍자하는 것인가?라고 생각했지만 설명을 듣 고나니 나이차가 30살 정도임에도 불구하고 성립되는 그들의 우정이 대단하고 부럽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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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 해링은 에이즈에 걸려 짧은 생을 마감했는데 평소 사랑과 평화에 관한 주제를 그렸던 화풍이 투병 이후 완전히 바뀌었다. 해당 사진의 그림들은 예수 등의 신적인 존재에 무작위 하게 죽음과 공포와 관련한 소재들을 나열하고 다소 잔인한 그림들을 그림으로서 병에 대한 공포와 신에 대한 원망 등이 담겨있다. 사랑을 표방한 천재 팝 아티스트도 죽음 앞에서는 나약해진다는 사실이 여실히 느껴졌다.



4. 로버트 인디애나


로버트 인디애나는 'LOVE'라는 작품으로 유명한 팝 아티스트이다. 'LOVE'는 60년대 미국의 크리스마스 카드로 나온 디자인인데 이듬해 조각으로도 만들어지면서 인디애나는 유명세를 탄다. 하지만 당시에는 글자가 저작권 인정을 받을 수 없어서 'LOVE'는 여러 상품에 쓰이기 시작한다. 때문에 그는 상업 화가라는 오명을 쓰고 말았다.

그의 작품은 강한 색채와 기하학적 무늬, 그리고 원초적인 문구가 특징이다. 인디애나는 어린 시절 가난하여 잦은 이사를 다니며 유목민 같은 생활을 했는데 그 생활이 그의 작품세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는 작품에 숫자 혹은 'EAT', 'DIE' 등의 본능적으로 다가오는 문구들을 사용했는데 숫자는 어머니의 생신, 떠돌이 생활 중 보던 국도의 번호 등을 의미하고 문구들은 어머니의 유언 (밥 먹었니?(eat), 가난한 생활에서 느낀 생존에 대한 욕구 등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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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사진의 25라는 숫자는 인디애나가 하루에 받을 수 있었던 용돈 25센트를 의미한다고 한다. 위의 다른 작가들이 사회적인 문제에 좀 더 관심을 기울였다면 인디애나는 자신의 힘들었던 어린 시절을 위로하는 차원에서 작품을 남긴 것 같다. 그리고 자신을 위한 위로는 또한 비슷한 상처를 받았던 작품 감상자들도 위로할 수 있으니 로버트 인디애나의 작품들은 실로 직관적이며 따뜻하다.



5. 앤디 워홀


앤디 워홀은 실크 스크린의 대가로 캠벨 수프, 마릴린 먼로 등의 작품으로 유명하다. 그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든 것을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가령 캠벨 수프는 우리나라의 D 참치 캔 정도의 집집마다 하나씩은 있는 제품이었는데 그는 여러 버전의 캠벨 수프를 그린 다음 그것을 진열대에 진열하는 것처럼 배치를 했다. 그리고 실크 스크린이라는 기계적인 방식으로 제작해 작가 자신이 작품에 드러나지 않게 함으로써 단 하나의 원작이 중요한 회화를 전면 부정하고 일상생활을 예술로 가져왔다.

또한 그는 마릴린 먼로, 케네디 등의 유명한 사람들의 죽음을 소재로 한 실크 스크린 작품들을 많이 '생산'해왔다. 유명인들은 그들만의 세계가 있을 것 같아 우리와 멀어 보였지만 그들이 죽은 후 워홀은 색깔 조합만 다르게 한 같은 그림을 대량으로 찍어내 무명과 유명의 경계를 허물고 그들과 조금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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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 스크린 방식은 한 공정에 한 색깔만을 넣을 수 있다. 의외로 제작자의 노력이 들어가야 하는 방식이라 생각하지만 회화에 비하면 확실히 기계적으로 움직이기만 하면 되는 듯하다. 실로 예술이 제품화가 되며 대중과 가까워지는 역사적인 발자취이다.

*

'Hi, Pop' 전시회는 이번 달 15일까지 운영을 한다고 한다. 팝아트 작품들은 1950에서 80년대 사이의 미국의 현실과 일상을 아주 가깝게, 직접적으로 보여주면서 작가 개인들의 이야기 또한 담겨 있어 관람이 즐겁다. 강렬한 색채와 두껍고 정갈한 터치가 매력적인 팝아트. 직접 눈으로 보고 많은 것을 느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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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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