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아프지만, 오늘도 웃습니다. '전화벨이 울린다' [연극]

감정노동의 시대, 누구를 위한 감정인가?
글 입력 2018.04.01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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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과 을이 아직도 첨예하게 드러나는 감정노동의 현실 속에서 목적과 수단이 도치되어버린 생존의 현장은 치열한 전쟁터에서 살아남는 것과도 같다. 연극의 실존적인 접근은 감정적 탈진으로 지칠대로 지친 감정노동자들의 삶을 무대 위에서 낱낱이 파헤쳐 보였다. 일방적인 친절과 인내로 개인의 통제와 선택의 자유가 결여되고, 감정노동이 만연한 서비스직의 사각지대에 놓인 그들의 삶은 고용의 불안정성과 직결되어 사회안전망에서 이탈된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연극은 정체성의 위기에서 혼란스러워하며, 더 나아가 존재의 이유에서 끊임없이 방황하다 끝내 죽음으로 마감한 한 감정노동자의 모습에서 고통스러운 삶을 벗어나려는 극단의 선택이 얼마나 잔인하고 비참한 결과를 초래하는 지도 보여주었다. 또한 서비스직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각계에 만연한 감정노동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삶도 이와 그리 다르지 않기에 불편한 진실은 더욱 무거운 마음으로 관람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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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벨이 울린다>는 너무나 겉잡을 수 없는 불길이 주인공을 삼켜버릴 것만 같은 긴박하고,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 주인공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헤매며 “불이야”를 외치는 것으로 시작한다. 주인공의 강렬한 등장은 짧지만 연극에 대한 전체적인 느낌과 분위기를 결정지으며, 뇌리에 깊게 박혔다.

아니나 다를까 주인공 수진의 삶은 겉잡을 수 없이 커져가는 불길같이 위험하고, 무서웠으며, 매일 그녀를 집어삼키는 듯 했다. 미친 듯이 울려대는 전화기와 줄어들지 않는 전광판의 숫자들은 수진을 성과와 경쟁에 집착하도록 만들었고, 이를 부추기는 회사의 분위기에 콜센터 직원들은 고통스러웠지만 늘 그랬듯 그러한 익숙함을 당연시 여겼다.
 
이 정도 학벌에, 이러한 사무실에서 이렇게 일하는 것은 그래도 다행이다라며 애써 스스로를 위로했고, 매일 시달리는 감정노동쯤은 괜찮다고 생각했다. 수진 역시 그렇게 여기며 잘 참고, 버텨왔다 생각했다. 그러나 등수로 매겨지는 업무 실적은 동료들과 확연히 비교되었고, 초라해져만 가는 자신의 모습에 실망한 수진은 끊임없이 자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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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도 이해되지 않는 자신의 모습에 수진은 매일이 괴롭고 힘들었다. 그러던 중, 옆집 배우 지망생 민규에게 연기를 배우면서 그녀는 가짜 얼굴, 가짜 목소리, 가짜 웃음을 만들어가는 일에 다시 익숙해져갔다. 자신을 완전히 잃은 모습에서 그녀는 팀 내 실적 일등이 되었고, 칭찬을 받았으며 가짜에 빠진 자신을 뿌듯해했다.
 
이제야 예전처럼 익숙해진 감정 노동에 더 이상 고통받지 않고, 잘 해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이 일이 가장 아무렇지 않은 것 같았던 동료의 죽음은 너무나 갑작스럽고, 충격적이었다. 누구보다 가장 뛰어난 업무량을 자랑하며, 늘 동료들의 부러움을 샀던 한 동료의 죽음은 수진에게 엄청난 혼란을 주었다. 작은 불씨가 순식간에 번져 모든 것을 집어삼키듯, 가짜가 어느새 진짜가 되어버렸을 때의 끝은 잔인하고, 절망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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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거울로 내 얼굴을 보면서도,
눈을 감고, 목소리만 남았어요.
누구 목소린지도 모르는 소리만.”

 
이 대사는 수진이 가짜 웃음을 연습하기 위해 눈을 가리고 연기를 배우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수진은 자신이 아닌 자신의 모습에서 잠깐의 즐거움과 행복을 찾을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결국에는 저 말을 하고 있는 자신을 마주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치킨 집에서 종업원에게 하는 행동을 통해 자신 또한 전화기 너머 얼굴 모르는 괴물들과 닮아있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 말이다.
 
어둡고 답답한 현실이기에 더욱 인지하고, 들여다보아야 감정노동자들의 삶은 연극을 통해 그들의 시선에서 그들의 감정으로 마주할 수 있었고, 배우들의 완성도 높은 연기로 더욱 몰입하여 관람할 수 있었다. 또한 연극 <전화벨이 울린다>는 감정노동과 연기, 완전히 다른 듯한 두 가지 일의 교차점을 찾고자 했던 시도에서 사회적 문제를 심도깊게 관찰하며 이를 무대에 옮겨놓기 위한 배우들과 연출의 고민의 흔적이 느껴졌기에 더욱 의미하는 바가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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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소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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