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당신의 '아가미' [문학]

삶에 먹먹한 여운을 남기는 구병모 작가의 장편 소설, 아가미
글 입력 2018.03.14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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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덜컹덜컹-거리는 지하철 손잡이에 피곤이 잔뜩 묻어 있는 무거운 몸을 가까스로 지탱하고 있었다. 목적지를 향해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지하철, 그 안에 나는 서있었다. 사람들로 빼곡하게 채워진 답답한 지하철에 몸을 싣고 항상 같은 역을 향했기 때문일까, 이유모를 ‘권태’와 ‘무력감’이 나를 뒤덮었다. 나는 이 날 특별하게 ‘동대문’역에서 하차했다. 그리고 자주 갔던 서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쩌면 낯선 권태로부터 일종의 도피였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좋아하는 작가를 묻는다면, 구병모 작가라는 대답이 나올 것 같다. 구병모 작가의 문학을 접할 때는, 단순히 책을 읽는다는 느낌보다는 화자가 혹은 작가가 내 귀에다 이야기를 속삭이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서점에서 이리저리 책을 둘러보는 내 시선이 구병모의 장편 소설, <아가미>에 머물렀다.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확정지을 수 없는 영역에서 <아가미>의 이야기가 시작되었고, 나는 잠시 나의 현실에서 벗어나 그 세상으로 발을 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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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계의 위기와 아내의 가출 등 잇따른 불행으로 막다른 길에 몰린 한 남자. 그는 돌이킬 수 없는 절망으로 아들을 품에 안은 채 호수에 뛰어든다.

그는 끝내 목숨을 잃지만, 물속에서 희박한 산소를 찾아 호흡하려는 본능적인 의지로 아가미가 생긴 아이는 살아남는다. 아이는 호수 근처에서 살고 있는 노인과 노인의 손자 강하에게 거두어지고 ‘곤’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아가미로 숨을 쉬고 등에 돋은 비늘을 빛내며 조용하고 깊은 호수 속을 유영하는 곤. 그는 인간이자 물고기인 자신을 어디에도 드러낼 수 없기에 노인과 강하, 그리고 호수 근처가 그가 경험하는 세계의 전부다.

하지만 그에게는 물속에서 한없는 평온과 자유를 느끼는 것으로 충분하다. 참담한 현실이 끌고 간 죽음의 문턱에서 아가미를 얻게 된 이 기이한 생명체 곤은 그렇게,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간다.


비관적인 삶의 끝자락에서 등 뒤의 비늘과 아가미를 얻게 된 곤. 아가미를 지닌 어린 소년은 물고기와 인간이 합쳐진 비현실적인 존재이다. 어린 시절 동화책에서나 볼 것 같은 혹은 환상의 세계에서나 존재할 것 같은 이 상상적인 존재는 오히려 나에게 먹먹한 ‘현실성’으로 다가왔다.

아가미로 인해 곤은 외부세계로부터 자신을 숨긴 채, 세상과 단절된 채, 관계를 맺지 않은 채 살아간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곤에게 아가미는 절망만 남은 세상 속에서 버틸 수 있는 유일한 ‘생명력’이 되기도 한다. 물속은 그가 유일하게 자유로울 수 있는 공간이며 그의 생명에의 의지가 최대로 발현될 수 있는 공간이다. 그 속에서 아가미를 지니고 헤엄치는 곤은 햇살에 의해 밝게 빛나는데, 때론 너무나 눈이 부셔 햇살에 의해 부셔져버릴 것만 같기도 하다.
 

"헤엄쳐야지 별 수 있나요.
어차피 세상은 그 자체로
바닥없는 물이기도 하고."

아가미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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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누구에게나 절망‧고통‧시련 등이 찾아온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곤과 같은 ‘아가미’가 내재되어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위에서 언급한 <아가미>의 한 구절과 같이, 세상은 그 자체로 바닥없는 물이다. 물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이 생명체로서의 가치를 발현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헤엄치고 움직여야 한다. 이처럼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 존재들이 그 존재 가치를 발현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노력해야만 하는 것은 아닐까.

삶과 죽음, 생명과 비(非)생명, 그 경계 사이에 위태롭게 서 있는 등장인물들은 무력하고 위태롭게 삶의 날 위에 서 있는 ‘나’를 연상시켰다. 그래서 먹먹하고 아련한 감정을 이끌었다. 책을 덮은 후 쓰나미처럼 몰려온 먹먹한 여운의 소용돌이 속에서, 나의 내면 깊이 잠재되었던 삶에 의지가 깨어났다. ‘나’에게도 절망과 역경을 버틸 수 있는 곤의 ‘아가미’가 있을까. 어쩌면 지칠 대로 지쳐버린 현실에 맞서기보다는 회피하기만 급급했던 ‘내’가 나의‘아가미’를 돋지 못하도록 묶어버린 것은 아닐까.




   
저의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분들께
사소한 질문과 여운을 남깁니다.

"당신의 ‘아가미’는 어떤 호흡을 내뱉을까요?"


엄마, 내가 인어를 봤다니까?

그 아저씨는 분명
바다 깊이 궁전에 사는
인어 왕자님일 거야.

그런데 마녀가 준 약을 먹고
두 다리가 생긴 거지.

인어 왕자님은
누구를 위해 다리를 얻은 걸까?
그러면 역시 언젠가는 물거품이 되어서
아침 햇살에 부서져버릴까?

아가미 中 마지막


[이혜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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