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얕은 발상 속에서 피어낸 어설픈 메세지 '5필리어' [공연]

산울림 소극장 연극 '5필리어'
글 입력 2018.03.04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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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의 마무리와 함께 찾아온 어두컴컴함이 머릿속에도 자리 잡던 금요일. 나는 올해 한국에서의 마지막 연극 관람의 기회를 놓칠세라 덥석 물어버렸다. 그간 연극이 나에게 전해주는 많은 것들이 너무나도 싱싱했고 활력 넘쳤기 때문일까. 이번 작품은 다른 의미를 가진 충격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사실 연극을 보기 전 기본적인 키워드들만 머릿속 어딘가에 둥둥 띄워놓고 본다. 어떤 것보다도 신선하게 살아있는 작품을 이리저리 따져보지 않고 바로 먹어보았을 때야 말로 진정한 카타르시스와 함께 이어지는 그 삶에 대한 고찰이 날 한층 더 두텁게 성장시키는 배양액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표현의 다양성, 극의 에너지, 분위기 등을 기대하며 연극은 시작되었고 그리고 처참하게 끝이 났다.

 다섯 주인공들은 오필리어라는 동일한 여성의 이름으로 그들은 제 각각의 상황에서의 절박함과 처량함을 표현하고자 했고 지금 이 현대 사회에서의 여성으로써 억눌리거나, 이용당하거나 혹은 폭력에 대상이 되어야만 했다고 호소했다. 지난 날 일어났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로 구성된 하나하나의 스토리들은 관객들에게 그 어떤 주제보다도 피부 깊숙이 파고들 것이라 보는 내내 느껴졌다.

 하지만 난 다섯 주인공이 한 명, 한 명 각자의 이야기를 해나갈 때마다 난 이 연극이 무언가 크게 잘못되어있다고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다섯 가지 이야기 중 네 가지 이야기 모두 사회의 남성의 위치는 무조건적인 가해자의 자리이며 그에 따른 희생양은 늘 모든 여성이라는 편향된 의도가 담겨있었고 그 속엔 정말로 그들이 공포스러워 하는 이 사회의 모습에 대한 어떠한 이상향도, 답도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기대했던 억압받고 차별 받는 여성들이 자기 주체적으로 그 쇠창살을 거두어 나가는 내용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공연사진 (23).JPG
 

 5필리어라는 주제와 다섯 소녀들의 다섯 가지 주제들… 중간 중간 강간과 성상납 등의 육체적인 표현들마저도 다섯이 하나가 되지 못하는 텔링 속에선 그저 자극적인 장면을 통해 무조건적인 피해자의 모습만을 강조하려 애쓰는 것 같아 유치했다. 세 번째 오필리어의 세월호를 표현한 스토리에선 그 사건을 처음 접했을 때의 내 모습을 떠올리며 감상에 젖었지만 이내 생각마저 닫혀버리고 하품이 나올 지경이었다. 연극은 다섯 주인공들이 관객석으로 찾아와 소품들을 나눠주며 무언가를 촉구하면서 끝났는데 안했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묵인하며 넘어가던 것을 드러내어 고치자는 시도는 좋았지만, 그 이전까지의 메시지들과 전달법이 단편적이며 포퓰리즘의 한 장면처럼 무게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들이 크나큰 설계에 의해 다른 무엇을 겨냥한 결과라면 다시 생각해볼만 하다.
 

공연사진 (21).JPG
 

 큰 사회적 문제를 담은 페미니즘 혹은 여성혐오, 남녀차별 등의 내용을 예술 작품으로 다룬다는 것은 이렇게 상투적이고 성의 없게 그려져서는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한다. 막을 내린 후에 참된 극을 보여주지 못한 그들의 인사를 받고 싶지도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뭇 관객들은 배우의 연기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으며 흡족한 얼굴로 박수를 쳐내기도 하였다. 과연 그들이 박수와 눈물을 받을만한 연극을 한 것인가? 아니면 문화운동을 한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캠페인을 보여준 것인가. 표현의 자유는 존중하고 공간 연출은 뛰어났지만 그 안에 담고 있는 것이 많이 아쉬웠다. 누군가에게 보이는 글들도 그렇듯 그 파급력도 생각은 했으면 좋겠다. 소재에 대해 모든 면을 생각했다면 더 좋은 연극이었을 텐데. 빛좋은 개살구가 그냥저냥 먹히는 시대는 충분히 지났으니. 난 그들의 어설픔이 더럽힌 공간을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어 되뇌었다.


[유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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