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분쉼표] 생각 그리고 상상

생각의 숲 속 상상의 4분쉼표
글 입력 2018.02.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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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숲 속 상상의 4분쉼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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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이 세상이 재미없을 때 내가 향하는 곳은 나만의 세상, 상상이다. 나의 상상을 처음 보는 이들은 이상하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누가 그랬던가, 혐오는 낯선 것에서부터 오기도 한다고. 세상의 언어로 말하지만, 지극히 내가 바라보는 프레임 안에 가득 차 있는 이 상상은 그 누구보다 내가 가장 재미있어하는 세계다.

 나만의 세상, 상상에는 희망의 열매가 가득한 꿈나무도 있고, 생각의 숲도 울창하다. 한쪽에는 사랑하는 이와 교신하는 안테나도 있고, 맛집 연구소도 있다. 꿈동산과 맞닿아 있는 상상의 외곽에는 아무 말 연기를 뿜어내는 공장도 있고, 과음을 결사반대하며 투쟁하는 건전음주위원회도 있다. 하루의 핵심 기억만을 추려 박제해 놓는 박제사들은 나의 상상 속 가장 열심히 움직이는 이들이다.

 나의 상상에서 한바탕 놀고 오면 하나씩 얻곤 하는 기념품이 있다. 바로 내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거나 보이던 것도 새롭게 보게 되는 insight다. 바쁜 일상에서 빈틈을 노려 놀러 가는 상상을 마치면 허무맹랑한 기분에 사로잡히기도 하지만 대개는 즐겁다. 여러 빛깔로 채우기 시작한 이후로 즐거움이 더해진 것 같다. 시간이 지나도 이 빛깔이 바래지 않도록 자주 드나들며 닦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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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밥나무


 내 생각의 숲에는 끊임없이 생각 잡초들이 무성히 자라난다. 어떤 잡초들은 자라다가 갑자기 형형색색의 꽃이 되어 내게 더없이 소중한 것으로 변하기도 하고, 어떤 잡초들은 나도 모르게 뿌리가 메말라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도 하고, 어떤 잡초들은 나를 귀찮게 해 내가 뿌리 뽑아 버리려고 애쓰기도 한다.

 생각 잡초들을 어느 새벽에 마주하다 보면 갑자기 길이 하나 열리는데, 그 길 끝에는 커다란 나무가 있다. 그 나무는 나를 붙잡고 늘어져 쉽게 놓아주지 않고, 나는 그런 나무를 바라보며 창피해하고 한심하게 여긴다. 언제 심었는지, 어떤 영양분을 통해 자라났는지도 모를 만큼 커진 이 나무를 새벽에 마주하면 실제보다 더 커 보인다. 누군가는 '흑역사'라고 부르는 이것을 나는 '바오밥나무'라고 부른다.

 생텍쥐페리는 어린왕자를 통해 바오밥나무는 별을 산산조각낼 만큼 위험하기 때문에 눈에 띄는 대로 뽑아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생각의 숲에서 자라는 바오밥나무는 뽑을 수도, 뽑을 필요도 없는 것이다.

 살아온 모습 중 일부가 될 수도, 때로는 전부가 될 수도 있는 이 바오밥나무는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다. 그저 그 모습 그대로 사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 자신 다음으로 사랑하는 이에게 나의 바오밥나무를 소개시켜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서로의 바오밥나무에 초대하는 것을 더러는 부끄럽고 수치스럽다고 여기지만, 용기 내 바오밥나무로 초대한다면, 사랑하는 이에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다가가 조금 더 가까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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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꽃


 누군가를 생각하는 걸 종이로 꽃을 접어 만드는 것으로 상상해 본 적이 있다. 그리운 사람은 그리움의 꽃으로, 감사한 사람은 감사한 꽃으로, 나에게 상처를 준 이는 상처의 꽃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의 꽃으로 접어 내 마음의 밭에 놓아둔다.

 매일같이 종이꽃들이 마음 밭에 쌓여가는데, 종이꽃들이 아득히 마음의 밭에 차고 넘쳐날 때는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마음의 밭의 크기를 넓혀 많은 좋이꽃들이 보기 좋게 놓이게 하는 것과 종이꽃들을 선별하여 알맞게 처리하는 것. 좀 더 넓은 마음의 밭을 가지기는 쉽지 않으니 하릴없이 종이꽃들을 골라내기 시작한다.

 접어둔 꽃들을 일일이 살펴보면서 어떤 이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져 종이꽃의 색이 바래거나 다시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찢어진 종이꽃들은 한데 모아서 썩게 내버려 둔다. 이렇게 바래고 찢어져 내버린 꽃들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썩지 않는 것은 상처의 종이꽃이다.

 썩지도 않고 마음의 밭 아래에 깔려 있는 상처의 종이꽃에 이따금씩 찔려 아파하면 그렇게 억울할 수가 없다. 이 꽃은 어찌하면 좋을까. 혼자 앓던 아픔의 시간들을 뒤로하고, 이제는 말할 용기를 가질 때다. 더 이상 나에게 상처 준 사람이라는 종이꽃에 찔리는 일이 없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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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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