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라면처럼 부담없고 따듯한 연극, 라면에 파송송

글 입력 2018.02.10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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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로만 듣던 4학년이 되었다. 휴학까지 했으니 1년을 벌어놨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닥치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고, 약간의 조급함과 신년의 파이팅으로 1월 1일이 되자마자 시험을 두 개나 잡아놨더랬다. 그렇게 시작된 2018년이 겨우 한 달 흘러간 뒤에 맞이한 2월의 첫 주말에, 1월을 통째로 시험공부에 쏟아 부은 나 자신에 대한 선물로 자칭타칭 힐링코믹뮤지컬라 불리는 연극 < 라면에 파송송 >을 선택했다.



 시놉시스

가장으로써 가정을 지키지 못하고
회사에 취직하지 못하는 다훈.

죽음을 택하여 한강다리에서
몇 번이나 뛰어내리지만
죽는 것 하나도 그에겐 어렵다.

사채업자에게 쫓기며 삶을 이어가는 다훈.
우연찮게 보증금 100만원, 월세 15만원의
'라면에 파송송' 가게를
인수할 사람을 찾는다는 광고지를 본다.

막무가내로 모든 것을 정리하고
마지막 삶에 희망을 찾기 위해,
가게를 인수하기 위해 라면에 파송송을 찾아간다.

어렵게 찾아간 곳에서 만난 주인 어르신. 
그런데 어르신이 이상하다. 
정신이 오락가락 왔다 갔다 이상하기만 하다.

광고를 보고 인수하러 왔는데
쉽게 얻을 줄 알았던 가게 인수는 버겁기만 하다.
그 때 찾아온 자살사이트에서 자살을 하기 위해
이곳을 찾아온 살벌한 여고생.
그리고 찾아온 밑바닥까지 떨어져
자살하려는 한류스타.

라면에 파송송 인수 계획은 성공할 수 있을 것 인가.
다훈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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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과는 달리 연극 < 라면에 파송송 >은 굉장히 침체된 분위기 속에서 막을 올렸다. 나이도, 성별도, 상황도 모두 다른 세 사람이지만 그들의 마음 속 깊은 곳은 '죽음'이라는 지점을 향해 저벅저벅 나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연극은 지하에 위치한 작은 소극장에서 펼쳐졌는데, 소박한 공간이 감당하기 벅찰 만큼 강렬한 목소리로 그들은 죽음을 울부짖는다. 아늑하고 단란한 세트 속에서, 그들의 절망감은 더욱 사무치게 폭발했다.

 개인적으로 < 라면에 파송송 >이 이처럼 다양한 캐릭터를 설정한 점이 좋았다. 연극 속 주인공들처럼, 본능을 거슬러 죽음을 앞당기고 싶어하는데는 수 만 가지의 이유가 있다. 재산의 규모나 지위고하를 초월하는 '절망감'이 그 근원이고, 그것이 바로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로써 연극은 어느 누구도 '그 정도면 살만하지 뭐하러 자살을 해' 따위의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넌지시 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타인의 죽음에 대해서 조차 냉소를 던지는 지경에 이른 세상에서 이러한 발언은 무엇보다도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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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스터나 사진에는 남자 배우분이 '라면에 파송송' 가게 주인으로 등장하는 것으로 되어있는데, 내가 연극을 관람했을 때는 여자인 최윤정 배우가 가게 주인 역을 맡아 연기했다. 극에서 실질적으로 '힐링'을 전수하는 인물인 그녀의 재치와 구수함이 사실상 연극의 7할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반에 관객 뒤편에서 등장하는 그녀는 애드리브인지 모르겠지만 관객들을 손님으로 상정하고 '라면 값을 달라'든가 하는 식의 멘트를 날린다. 관객들이 이를 매우 호의적으로 받아들이고 모두가 즐거워했음은 물론이고, 치매때문에 같은 말만 주구장창 반복하면서도 절망에 빠진 세 사람을 열심히 끄집어내는 그녀는 스토리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다훈 못지 않게 중요한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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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면에 파송송이라니. 솔직히 이 연극, 제목만 봐도 군침이 돌지 않는가. 보글보글 끓는 빨간 국물에 파까지 더해진 얼큰한 라면. 한 끼를 간단히 때우기에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메뉴가 라면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는 한국인이 있을까. 이렇듯 라면을 향한 관중들의 애정을 연극 < 라면에 파송송 >은 '직접' 자극한다. 라면 가게 주인은 다훈에게 쉽게 가게를 인수해줄 수 없다고 버티며 그에게 라면 한 그릇을 끓여보라고 요구한다. 다훈은 투덜거리면서도 라면 끓이는 거 하나는 자신있다고 떵떵대며 라면을 끓여보인다.

 그런데 그게 연기가 아닌 진짜였던 것이다(!) 심지어 다훈은 관객 한 명을 무대로 데려와 소소한 대화를 나누며 라면을 나눠먹기도 한다. 다양한 관객 참여형 연극을 접해봤지만 라면을 먹는 연극은 처음이었기에 꽤 신선했다. 무엇보다도 이런 장치가 인위적이지 않았고, 일상에 지친 관객들에게 자연스럽게 웃음을 선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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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혹 뮤지컬 연극이 아니더라도 밴드나 가수에 관한 내용일 경우 주인공들이 노래를 하기도 한다. 그런데 노래 실력이 별로거나 노래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배우가 고생한 것에 비해 관객에게 큰 감동을 주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연극 < 라면에 파송송 >은 뮤지컬형 연극에 대한 대중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줄 만큼 배우들의 연기도, 노래실력도 만족스러웠다. 개인적으로는 고등학생 역할을 맡은 여자 배우분의 목소리가 가장 듣기 편했고 노래에 감정이 가득 실려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스토리였다. 아무래도 뮤지컬은 스토리에 노래, 안무까지 적절히 엮어내야 하기 때문에 매끄럽게 연출하기에 어려운 장르가 아닐까 싶다. 특히 '힐링'이라는 주제는 이미 대중들에게 익숙하기 때문에 그것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차별화가 필요하다. 하지만 < 라면에 파송송 >은 충분히 예측 가능한 스토리였던데다가 라면 할머니가 처음에 왜 가게 인수를 거부했는지, 그러다 막판에 가서 순순히 다훈에게 가게를 넘겨준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면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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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에서는 각종 채용비리 소식이 흘러나오고, 불경기는 해소될 기미가 없다. 취준생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얼굴에 드리운 그늘은 걷힐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밝은 건 새해뿐이다. 이런 진창일수록 어쩌다 터져버린 웃음이 얼마나 소중하고 단비가 되는가. < 라면에 파송송 >은 그저 대학로에 머무르지 않고 각종 공공기관 및 단체 행사에 직접 찾아가 퍽퍽한 우리네 삶에 짧게나마 단비같은 웃음을 전하고자 노력한다. 진지하고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연극만큼이나, 아니 때에 따라서는 오히려 그보다 더, 아무 근심걱정없이 즐길 수 있는 연극도 필요하다. 뒤죽박죽인 머리를 잠시 비우고 라면처럼 부담없고 따듯한 시간을 보내길 원한다면, 연극 < 라면에 파송송 >이 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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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채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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