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작은 전시 안에 담긴 큰 마음, 불후의 명작展

글 입력 2018.01.29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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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_불후의명작.jpg
 


“작고 소박하지만
그 어느 전시보다 정감이 갔던 전시”


불후의 명작전에 대한 나의 감상을 짧게 정리하자면 딱 이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불후의 명작전은 내가 지금까지 봤던 그 어느 전시보다 규모가 작았고, 전시된 작품 수도 적었으나 그 어느 전시보다 정감이 갔다. 다른 전시와 달리 모든 작품이 미술관의 소유여서 그랬을까. 미술관 입구의 문구부터 작품을 전시해 놓은 방식까지 누군가의 애정이 느껴졌다.

처음 미술관에 들어서면 약간 당황스러웠다. 분명 불후의 명작전 전시관이라 해서 들어왔는데, 미술과 예술의 중요성을 말해주는 듯한 문구가 적혀있음은 물론 그 뒤로 펼쳐지는 전시공간에도 전혀 처음 보는 그림들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문구들을 찬찬히 읽으며 마음을 가다듬고 그 공간을 거닐다보니 어느새 ‘작품을 마주하는 마음가짐’을 다잡게 됐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작품들은 물론, 앞으로 보게 될 작품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고 이를 하나하나 모았을 누군가의 마음이 전해졌다.

그렇게 마음 가짐을 다 잡고 ‘불후의 명작전’을 마주하니 그 좁은 공간에 몇 점 안되는 작품들이 사뭇 다르게 다가왔다. 보통 전시에 가면 나는 쉴새없이 걸어다니며 작가의 전반적인 작품 성향과, 생애 등을 파악하느라 바빴다. 100여점이 훌쩍 넘어가는 작품 수의 전시에선 쉴 틈이 없었다. 각 작품에 대한 모든 설명을 읽고, 해설을 듣고, 나만의 감상까지 하려면 3시간 내내 바삐 돌아다녀도 모자랐다.

하지만 불후의 명작전은 그런 방식으로는 10분도 안돼서 관람하고 나올 수 있는 전시였다. 그 어느 전시보다 한 점 한 점에 집중해 그 마음을 느껴야만 했다. 그 작은 전시장에서 1시간 정도의 시간을 머물게 했던, 유난히 발길을 잡아끄는 작품들 두 가지만 소개해보고자 한다.



김기창 '예수의 생애'


2-아기예수의 탄생.jpg
 

첫 번째는 김기창 작가의 ‘예수의 생애’였다. 서양화의 단골소재인 예수의 생애를 가져와서 그 누구보다 동양적으로, 아니 동양을 넘어서 한국적으로 소화해낸 작품이다. 마리아가 예수를 배었음을 천사가 알리는 ‘수태고지’에서 천사는 천의를 입은 선녀로 바뀌고, 예수의 탄생 장면에서 몰려드는 목동들은 아낙네들로 바뀌었다.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음식들을 이고 진 여인들의 모습에서 푸근한 한국의 정이 느껴진다.


20-최후의 만찬.jpg
 

예수의 생애 중, 가장 유명한 장면인 최후의 만찬도 마찬가지다. 일렬로 주욱 앉았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과 달리, 김기창 작가의 최후의 만찬은 제자들과 둘러앉아 있는 모습이다. 그림의 배경의 한옥이나, 프레임 너머로 보이는 소나무까지 무엇하나 한국적이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후의 만찬’이라는 그 상황은 너무도 잘 살리고 있다.

조금 더 깊게 들여다보자면, 한국에서 ‘소나무’는 절개를 의미한다. 가롯 유다의 배신을 생각할 때 배경에 소나무가 그려진 것은 그 배신을 질책하기 위함이라고 생각되기도 한다. 김기창 작가는 어떻게 보면 ‘가장 서양스러운’ 소재를 가지고 가장 한국적으로 소화해낸 것이다. 본래 30점 전체가 전시되기로 했었는데 3점만이 전시된 것은 아쉬웠지만, 3점만으로도 김기창 작가의 역량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김환기 '섬 스케치'


김환기, 섬 스케치, 1940년대, 캔버스에 유채, 80x99.6cm.jpg
 

두 번째는 김환기 작가의 ‘섬스케치’였다. 섬 출신인 작가는, 본인의 고향인 안좌도의 풍경을 그려내며 ‘섬 스케치’라는 제목을 붙였다. 온 사방이 물로 둘러싸인 섬에서 가장 구하기 힘든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마실 물’이다. 물 자체는 많을지 몰라도 바닷물은 염분 때문에 사람이 마실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섬에선 비만 오면 어머니들이 항아리를 이고 지고 바위 틈새 등에 괴어놓곤 한다. 그렇게 빗물을 담아 식수로 사용하기 위함이다. 김환기의 섬스케치는 바로 이 장면을 그려냈다.

볼링핀과 같이 단순한 곡선으로 표현된 어머니들의 머리 위엔 백자가 선명하게 빛을 내고 있다. 작가는 이를 통해 섬의 풍경과 그 정서를 표현함은 물론, ‘백자’가 단순히 식수 등을 담는 그릇이 아니라 어머니들의 마음과 같은 민족 정신을 담고있다는 것까지도 표현해냈다. 아직 ‘환기블루’라고도 불리는 김환기 작가 특유의 푸른색은 두각을 드러내지 않고 있지만 자연친화적인 작가의 시각이 돋보인다.

*

이 밖에도 천경자나, 박수근 등. 새로이 눈을 뜨게 된 여러 작가들이 있었다. 물론 당초 50여점 정도 전시되어 있다는 홍보자료와 달리, 공사 때문에 10여점 정도밖에 전시되어있지 않다는 사실은 약간 실망스럽기도 했지만 한 점 한 점의 작품들이 모두 의미가 있었기에 그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작품 수에 아쉬움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아래 사랑의 묘약 전시 또한 함께 관람할 수 있으니 함께 관람하길 추천한다. 또한 불후의 명작전엔 작가나, 각각의 작품에 대한 설명이 전무하다. 물론 아무런 설명이 없이 관람해도 깊이가 있는 작품들이지만 조금이라도 관련한 설명을 듣는 게 작품의 가치를 발견하는데, 또 작품에 애정을 갖는데 더 좋을 것이니 꼭 도슨트 시간에 맞춰가서 설명을 듣기를 바란다. 해당 미술관 소장작이라 그런지 훨씬 상세하고 애정넘치는 도슨트를 듣고 있노라면 그림에 대한 애정이 샘솟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어려운 시대에 일본에서 공부하고, 서양의 화풍을 따라야했지만 한국인의 정신은 놓치 않았던. 자신은 한국 작가라는 자부심을 놓치 않았던 이들의 작품을 통해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자리의 무게에 대해서 느낄 수 있던 시간이었다.


[권희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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