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가장 추운 곳에서 발견한 해님

연극 '작은 악사' 리뷰
글 입력 2018.01.26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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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제14회 서울 아시테지 겨울축제.jpg
 

서울 아시테지 겨울축제의 공식초청작, <작은 악사>는 시작하기 2분 전까지도 수많은 아이들의 수군거림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었지만 어른들만 가득 찬 극장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라 아이들이 귀엽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이런 분위기에서 연극이 잘 시작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걱정도 잠시, 다섯 명의 배우가 무대에 나와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아이들의 눈과 귀가 모두 무대로 향했다. 한 곡이 모두 끝나고, 극장이 잠잠해졌을 때쯤 되어서야 관객석의 조명 역시 서서히 어두워졌다. 아이들을 배려해서인지 완전히 어두워지지는 않았다. 50분간 볼 연극이 어떤 분위기일지 짐작할 수 있었던 도입부였다.

 
[아시테지] 작은악사 (1).jpg
 

추운 지역에 사는 작은 악사, 모비치는 노랗고 따뜻하고 동그란 해님을 만난다. 그 따뜻함에 손을 뻗지만 해님은 금방 사라져버리고 만다. 모비치는 사라진 해님을 찾겠다는 마음 하나만으로 길을 나선다. 그러나 무언가를 찾는 일은 항상 쉽지 않은 법. 가는 길이 녹록지만은 않다. 늘 함께이던 친구와 헤어지고 때로는 칼바람도 견뎌야 한다. 심지어 해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그게 무엇인지도 모르는 아이들과 만나기도 한다. 해님은 잡힐 듯 말 듯 모비치의 주변을 맴돈다. 그때마다 아이들은 웃음을 터뜨렸지만 나는 어쩐지 안타까웠다.

해 뜨기 전 새벽이 가장 어둡기 때문일까. 몰아치는 눈보라 속에서 모비치는 얼어붙는다. 거대한 비닐이 무대 전체를 덮는 눈보라 연출은 이 연극의 백미이지만 모비치에게는 큰 시련이다. 얼음을 캐어 생활하는 아이들 중 한 명이 모비치를 발견하고 어디선가 해님을 가져와 그를 녹인다. 해님을 만난 모비치와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하며 극은 막을 내린다. 아이러니하게도 모비치는 가장 추운 곳에서 간절히 찾아 헤매던 해님을 만난 셈이다.


[아시테지] 작은악사 (2).jpg
 

결국 해님을 찾을 수 있었던 건 해님이 가장 필요한 곳이었다. 가장 추운 곳에서 떠오른 해님은 모든 사람을 따뜻하게 감싸주었다. 그리고 나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는데 연극을 같이 보러 갔던 친구가 극장에서 나오는 길에 한마디를 했다. 


"그 아이들은 얼음이 필요한데도
모비치를 녹이려고 태양을 가져왔네"


그러고 보니 분명 모비치를 구해준 아이들은 얼음을 캐 생활하고 있었다. 얼음이 다 녹으면 당장 생계가 어려워질 수 있는데도 망설임 없이 모비치를 구한 것이다. 태양은 단순히 가장 추운 곳에서 나타난게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잠시 내려놓으면서까지 기꺼이 남을 돕는 따뜻한 마음이 있는 곳에서 나타난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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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해님은 처음 등장할 때는 작고 동그란 모양이지만 극이 진행되면서 긴 삼각형 모양으로 나온다. 처음 나온 모습이 하늘에 떠 있는 해를 표현했다면 나중에 나온 모습은 내리쬐는 햇볕을 표현한 것 같다. 결국 모비치가 찾은 해님은 처음에 봤던 동그란 모양이 아닌 세모난 모양이다. 우주에서 활활 타고 있는 태양도, 지구에서 원으로 보이는 태양도, 내 손바닥으로 쏟아지는 햇빛도 모양은 다르지만 하나의 해님인 것이다. 어디에 있는지도, 언제 만날지도 알 수 없는 해님을 찾는 모비치의 여정은 우리의 삶을 닮았다. 찾고자 하는 것이 좀처럼 나타나지 않을 때 우리는 쉽게 의심에 휩싸인다. 해님이라는 게 실제로 있기는 한 건지, 있다 해도 만날 수는 있는 건지. 그런 우리에게 <작은악사>는 바라던 것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예상하지 못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모비치의 해님이 그랬듯 말이다.

자꾸만 해님을 놓치는 모비치를 보며 웃음만 터뜨리던 아이들도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게 될 날이 올 것이다. 해님을 찾아 헤매는 게 연극 안의 이야기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면서 늘 무언가를 찾아 헤매고 그 대상은 그리 쉽게 손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걸 깨닫는 일을 우리는 일종의 '성장'이라 부르곤 한다. 자신만의 해님을 찾아 헤매는 중인 어른들도, 곧 헤매게 될 아이들도 여러가지 일들을 겪겠지만 너무 힘들지는 않았으면. 그리고 길의 끝에서 꼭 찾던 해님을 발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극장을 나오며 들었다.


작은 악사.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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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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