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대지'와 상하이,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1) [여행]

글 입력 2018.01.18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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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때 펄 벅의 <대지>를 꺼내들었을 때의 충격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북중국 일가의 농부, 그의 세 아들들, 그리고 그 아들들이 삼 대에 걸쳐 중국의 근대를 살아가는 과정이 너무나 생동감 넘쳐서 완전히 몰입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3부작인 소설 중에서 특히 내가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것은 마지막 3부 <분열된 일가>인데, 상대적으로 서구 문물의 수용이 빨랐던 남중국에 가게 된 북중국 출신 시골뜨기 왕위안의 이야기를 담은 내용이다. 새롭고 화려한 것들을 마주칠 때마다 깜짝 놀라면서도 그것에 감탄하는 위안의 모습에 공감했던 것 같다. 나 역시 언제나 더욱 새롭고 넓은 곳으로 나아가려는 열망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튼 그때 <분열된 일가>를 읽으며, 화려한 남중국의 항구 도시가 아마도 상하이를 배경으로 하였을 것이라는 막연한 상상을 했다. 사실 그 항구도시는 난징을 배경으로 했다고 작가가 밝혔지만, 그래도 나는 언젠가 꼭 상하이를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몇 년이 흐른 후 정말 상하이에 발을 디디게 되었고, 3박 4일이라는 짧은 여행 기간임에도 그곳은 내 환상을 충족시켜주기에 충분했다. 오히려 상상했던 것보다 더 화려하고 오묘한 매력이 있는 도시였다. 서양식 건물들이 늘어서 있어 마치 유럽의 근대를 보는 것 같은 지역과, 전통 중국식 건물들이 동양미를 뽐내는 거리, 그리고 하늘을 찌를 듯한 스카이라인을 자랑하는 빌딩들이 한 도시에 공존하는 곳이 바로 상하이다. 이번 1부에서는 상하이의 성장과 변화를 대표하는 여행지를, 다음 2부에서는 전통과 역사를 보존하고 있는 여행지를 차례로 소개하도록 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화려함의 상징
난징동루, 푸동, 와이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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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현진


난징동루 보행자거리는 상가들이 쭉 늘어서 있는 넓은 거리로, 우리나라의 명동과 비슷한 곳이다. 아니, 명동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화려하다. 중저가 브랜드부터 고가의 명품 상가까지, 패션, 화장품, 음식점 등이 커다랗고 번쩍번쩍한 간판을 앞세우고 관광객들을 혼미하게 한다. 12월말 내가 갔을 당시 상하이에는 비가 추적추적 내렸는데, 비에 젖은 거리가 상점들과 도로의 불빛으로 반짝반짝하게 빛났다. 거리 한 가운데 ‘I♥SH’라고 쓰인 거대한 간판은 여행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인종과 국적이 다양한 사람들이 저마다 그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보행자거리에 있는 건물들은 대부분 낮은 유럽식 건물들이었던 반면, 멀리 보이는 스카이라인에는 찌를 듯이 높고 화려한 신식 빌딩들이 늘어서 있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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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구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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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현진


푸동 지역으로 이동하면 상하이의 고층빌딩을 더욱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데, 그곳에는 도로 중앙에 설치되어 한 바퀴를 빙 둘러볼 수 있는 원형 육교가 있다. 원형 육교 중간 중간에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어 있어 원하는 곳에 바로바로 내려서 이동할 수 있는 형태다. 이 육교에서 순간, <분열된 일가>의 왕위안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상하이가 세계적으로 큰 도시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원형 육교는 미래 도시에 온 것 같은 분위기를 풍겼고, 사진으로 보았을 땐 촌스럽게만 느껴졌던 상하이의 랜드마크 ‘동방명주’조차도 실제로 보니 환상적인 자태를 뽐냈다. 홍콩, 런던, 싱가폴, 뉴욕, 도쿄 등 여러 대도시들을 다녀봤지만, 이 정도의 압도감을 느낀 것은 처음이었다. 내가 알던 중국이 맞나? 중국은 어딘지 모르게 억압되어 있고 뒤처져 있을거야, 라는 편견이 한 번에 뒤집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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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현진, 상하이역사박물관
 

푸동 지역과 황푸강을 사이로 맞닿아있는 곳은 와이탄인데, 이곳이야말로 20세기 초 항구도시에 막 도착했던 왕위안이 보았을 법한 풍경이 잘 보존되어 있는 곳이다. 서양인들이 들어와 이곳을 점령했을 당시에 지었던 서양식 건축물들이 남아있어 마치 유럽에 온 것만 같은 낭만적인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중국어가 큼지막하게 적힌 간판들 사이로 유럽 고전양식의 석조 건물들이 보이는 풍경은 묘하게 이국적이다. 강 건너 푸동에 비해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다. 골목 사이로 전차가 지나갈 것만 같고, 모던걸, 모던보이들이 멋을 부리며 걸어가는 장면이 떠오른다. 동방명주 내부에 있는 상하이 역사박물관에는 올드 상하이(Old Shanghai, 아편전쟁에서 중화인민공화국 설립까지의 중국 근대 100년을 의미)의 와이탄 풍경을 모형으로 실감나게 제작해두었는데, 그 당시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은 겉으로 보기에 크게 다를 게 없다. 하지만 이렇게 멈추어 있는 듯한 와이탄도 건물의 독특한 외관은 그대로 보존하면서 내부는 실용성 있게 보수하는 도시재생 사업을 통해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은 어떤 도시도 흉내 낼 수 없는 독보적인 상하이만의 개성을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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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현진
 

상하이의 중심 중의 중심인 난징동루, 푸동, 와이탄을 움직이는 것은 끊임없는 ‘변화’의 에너지다. 21세기의 상하이에 있는 내가 소설속 왕위안과 동일시할 수 있었던 것도, 그 풍경은 다를지라도 변화하고 있는 한 도시의 역동성 자체는 그 자리에 살아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분열된 일가>를 읽으며 왕위안이 살던 바로 그 시절의 중국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좀 어수선하고 복잡하고, 젊은이들은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방황하지만, 난생 처음 보는 새로움과 화려함이 가득한 도시는 젊음을 바쳐도 충분하다. ‘변화’는 아직 내겐 너무 설레는 단어다. 그리고 ‘변화’는 여전히 상하이를 움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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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현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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