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아이가 생긴다는 것, 예측불가능한 삶의 좌표를 하나 더 찍는 일

글 입력 2018.01.11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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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의 기억을 더듬어본다. 생각보다 넓은 소극장, 그리고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시작하기 전 로비에서 관객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해서 엿들어봤다. 배우들에 대한 이야기, 소극장에 대한 이야기, 주제가 너무 슬플 것 같다는 이야기, 그리고 그런 이야기들이 막이 내리고 나서 그들에게 어떤 이야기로 다시금 되돌아 왔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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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져 내려가는, 촛농처럼 흘러 내려가는 주인공들의 삶의 초상

경남의 어느 한 부부 이야기. 텔레비젼 보는게 낙인 삶, 1+1 샴푸와 로션과, 그렇게 아끼고 절약해야 살수 있는 삶. 거기에 부부가 나눌 수 있는 이야기의 주제는 한정적이고, 불안하고, 부러워하고, 뭘 더 아끼면 이런걸 더 할 수 있을까 하는 이야기들. '옆집 누구 엄마가 어떤 걸 샀는데 그게 그렇게 좋다대, 오늘 마트에서는 이런 일이 있었는데, 대박이가 귀엽네'. 이런 이야기들 속에 산통을 깨는 다른 주제의 등장, '여보가 아이아빠가 되고, 내가 아이엄마가 되는 기야'. 앞에 있었던 모든 이야기들의 추락과 동시에 무너져내려가는, 촛농처럼 흘러내려가는 주인공들의 삶의 초상.

계산기 속 숫자들, '왜 0 하나에 이렇게 부들부들 떨어야만 하나, 우리가 왜 이렇게 언성을 높혀가며 싸워야 하나'하는 물음에 남편은 이렇게 대답하겠지, '우리가 가난하니까, 우리는 무능하지 않지만, 다른 사람들은 무능하다고 하니까' 생각해보면 누구하나 부지런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남편과 아내, 누구하나 무능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마트에 필요한 직원으로, 운전기사로 업무를 감당할만한, 업무에 필요한 직무를 이행할 능력이 있는데 어떤 누가, 무슨 자격으로 그들을 무능하다고, 열심이지 않았다고 손가락질 할 수 있을까.


아이가 생긴다는 것, 예측불가능한 삶의 좌표를 하나 더 찍는 일


아내에게는 새로운 [삶]이 들어온 것이겠지만, 그래,남편의 말처럼 동시에 [우리같은 사람]한명 더 길러내는 일이 되어버리는 게 정확한 표현일까. 그들의 삶의 좌표에 [점 하나]가 더 찍힌다는 일. 그리고 그 점은 생각보다 무겁고 두꺼워서, 책임과 무게를 수반하는 일이어서ㅡ그것은 대게 정말 현실적이고 잔혹한 상처를 남기는 일이기도 해서ㅡ우선은 겁이나고, 무섭고, 두렵고, 아직은 생기지 않은 일이지만, 곧 나에게 닥칠 일이기에 신중하고, 좀 더 예상가능한 일들을 지금 예상해보는 일로 아내를 타이르고, 그러다 아내에게 조심스럽게 권유하고, 윤리도덕이 밥먹여주냐, 쓰레기가 되어보자, 하지만 도리어 결국엔 인정하고, 받아들여보고 싶은 마음도 조금은 생기고, 아내도 기뻐하니까, 남편이 되고 아빠가 되면 이런것들을 이겨낼만한 감정의 경험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나답지 않은 기대도 해보고, 하지만 도리어 난 못하겠어, 돌이킬 수 없는 이야기가 되어버리기까지.


두 주인공의 심리과정, 두 감정선이 겹쳐 충돌하는 지점에서 발생되는 새로운 감정


두 주인공의 심리과정을 아주 조심스럽게 그리고 느리게, 섬세하게 대사로-무심한 행동들로 묘사하되, 부인의 감정선과 겹쳐 충돌하는 지점에 두 주인공들이 하는 행동과 대사에 집중하게 만드는 연극인 동시에,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너무나 평범한 대사들이 처음에는 조금은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했으나, 마지막에 등장하는 극적인 감정과 반전을 설명하기에 다분히 필요한 이야기들이었겠구나 싶어 이내 설득되었다.

함께 연극을 봤던 관객들을 추측해보건대 주로 여성, 30대 혹은 40-50대의 여성층이 주된 관객을 이루었다. 아마 누군가의 아내와 어머니로, 여러개의 책임을 부여받고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여성이라면 극 중 아내에게 감정이입과 함께 그녀가 느껴왔을 감정선을 따라가며 눈물을 흘리고 공감을 했을 것 같다. 나는 오히려 극 중 남편의 모습, 그리고 결혼이라는 과정을 함께 통과하기로 마음먹은 사람에 대한 태도라기에는 너무나 이기적이고 소름끼치게 돌변하는 그의 태도를 보며 오히려 여러가지 생각에 잠겼던 것 같다. (열린 결말이라기엔 다소 찝찝한 결말로 막을 내리지만 추측컨대 남편은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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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없다고 아이가 안 태어나지는 않을텐데

'결혼을 해야할까, 말아야 할까'하는 논제는 우리 세대에와서는 개인적이고 사적인 물음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사람을 이루고 있는 모든 선택에 있어서 완벽히 개인적이고, 완벽히 사적인 선택은 단연코 없다. 사람이라는 존재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에 대한 모든 영향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일텐데, 그렇다면 이 두 주인공들을 극단으로 몰아세우는 요인들로 우리는 어떤 이야기들을 할 수 있을까. 색소폰을 팔고, TV유선방송을 당장 끊어버리는 결단을 하는데에도, 그들의 삶에 아이가 들어올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남편의 마음을 그리도 불안하게, 그리고 어둡게 만들어버려 결국엔 하나의 괴물이 되어버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가 섹스에 집중 할 수 없었을만큼 그의 머릿속을 잡고 있었던 고민은 무엇이었을까.

[돈], [돈]이 없다고 다들 그렇지는 않을텐데. [돈].[돈]이 없다고 아이가 안 태어나지는 않을텐데. [돈]. [돈]에 영혼을 팔아버린 사람은 경남 창녕군 길곡면에도 존재했구나. "신자유주의의 유령에 놀아나지 맙시다! 돈으로부터 자유롭고 주체적인 삶을 삽시다!" 같은 책임감없는 문장을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돈]없어도 아이낳을 수 있어, [돈]없지만 아이낳아도 괜찮아 하는 사회 되었으면 좋겠다. [돈]없다지만, 인생까지 포기할만큼 사람 겁쟁이로 만드는 사회 아니었음 좋겠다.


[박유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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