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루머의 루머의 루머, 그리고 성적대상화 [영화]

대중매체 속 성적대상화와 그 개선방안에 관한 고찰
글 입력 2018.01.10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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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하자마자, 주인공이 자살을 하는 드라마가 있다. <루머의 루머의 루머>.

 이 드라마는, 해나라는 한 고등학생 여자아이라고 할 수 있다. 학교에서 걸레로 낙인찍히고 왕따를 당한, 그리고 이전에 말했듯이 자살한 그 여자아이가 말해주는 이야기다.  해나는 자신을 자살하게 만든 13가지의 원인을 테이프에 녹음하여 13명의 사람에게 보낸다. 자신을 죽음에 몰아넣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이 드라마는 그 사람들 중 한명인 '클로이'의 시점에서 전개되고 있다.

 그렇다면 주인공이 죽고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는 이 무거운 드라마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마 그 답은, 해나를 죽게한 13가지 이유들 중에 있을 것 같다. 오랜 고민 끝에 필자가 내린 결론은 이 13가지 이야기들이 곧 2가지 주제로 귀결된다는 것이었다. '왕따'와 '성적대상화'. 즉, 해나를 죽게 만든 것은 주변인의 부재와, 성적 대상화에 근간한 괴롭힘이었다는 것이다.

 이 글은 '성적 대상화'에 대한 것이다. 해나를 죽음에 이르게 까지 한, 그 폭력적인 인식에 관한 이야기.



1. 들어가며

 

1-1. 해나가 겪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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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해나는 첫번째 데이트에서, 저스틴에게 치마 속을 찍히고 그 사진이 학교 전체에 퍼지는 것을 경험한다.

2) 학교 남학생들은 해나를 성적으로 희롱한다.

3) 알렉스는 여학생 평가리스트에 해나를 ‘엉덩이가 가장 예쁜 여자애’로 적는다.

4) 마커스는 도가 지나친 스킨십을 하고, 해나가 밀쳐내자 자신은 너가 쉬운 여자애인 줄 알았다며 해나에게 화를 낸다.

5) 브라이스에게 강간을 당한다.



1-2. '성적 대상화'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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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성적 대상화가 무엇인지 언급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우리 주변에 팽배한 것이긴 해도, 그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성적 대상화’란, 자신의 성욕을 충족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인격이나 감정이 없는 물건처럼 취급하는 현상을 말한다. 즉, 한 사람을 온전한 인간이 아닌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이 성적 대상화의 화살은 ‘여성’을 향해 왔다.

 그 대표적인 예시로, 2015년,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군 SKT의 설현 광고를 들 수 있다. SKT 매장마다 전시되었던 광고 포스터에는 메세지보다는 설현의 '몸매'를 미끼로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바빴던 그것이다. 이는 설현이라는 여성과 여성의 몸매를, 마케팅을 위해 '성적 대상화'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2. 성적 대상화의 모습


 성적 대상화는 우리의 일상에 공기처럼 녹아있는 것이다. 느끼지도 못할만큼, 인식하지도 못할 만큼 여성에 대한 대상화는 우리의 문화와 일상에 가까이 존재한다. 앞으로의 글에서는 성적 대상화의 다양하고도 일관된 모습에 관해 논한다. '외모 평가'와 '성범죄'


2-1. 외모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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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에는 당사자에 대한 존중이 부재한다. 다음은 우리의 주변에서 흔하게 오고가는 외모 평가의 말의 예시이다.
 

“000이 우리 반에서 제일 예쁘지.”
 
“우리 과에서 000가 1등, 000가 2등”
 
“000는 눈은 예쁜데 코가 좀 아쉬운 거 같아.”


 이 말들에서 여성은 ‘고기’와 진배 없다. 외적인 요소로 아래 하나 하나 순위 매겨지고 평가받기 때문이다. ‘예쁘다’는 단어는 칭찬과 같이 들리지만, 이 또한 외모 평가의 말에 불과하다. 누군가의 자존감과 정체성에 혼란을 줄 수도, 기분을 상하게 할 수도 있는 이러한 '성적 대상화'에 근간한 외모 평가는 우리의 일상 속에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다. '얼굴 평가(소위 얼평)'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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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렉스에게 해나는, '너가 리스트를 적었을 때 그 과녁은 내 엉덩이만이 아니었어. 넌 해나 베이커를 놀림거리로 만들었어'라고 말한다. 이 처럼 외모를 평가하는 것은 ‘그저 외면에 대해 말하는 행위’가 아니다. 이것은 당사자를 존중하지 않는 것이며, 인격체로 대하지 않는 데에 그 출발점을 두고 있다. 또 당사자를 놀림거리로, 혹은 놀려도 되는 '인격이 배제된 사물'로 만드는 행위이다. 또 이러한 평가가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누군가의 자존감과 마음에 상처를 입힐 수 있기 때문이다. 해나 베이커가 그 증거이다.


2-2. 성범죄

 성적 대상화의 극단은 ‘성범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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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몰카(몰래카메라)와 성희롱, 또 강간은 모두 성적 대상화에서부터 시작한다. 만약 남자애들 중 한명이라도 해나를 학교친구로 대했다면, 혹은 같은 반 학생으로서 대했다면 앞의 일들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에게 해나는 더 이상 ‘사람’이 아니었다. 마음대로 놀려도 되고, 은밀한 부위를 찍고 평가하고, 또 강간해도 되는 ‘대상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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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은 드라마 속의 극적인 일이 아니다. 현실에서도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그 예로 몇 차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대학교 단톡방 성희롱 사건’을 들 수 있겠다. Y대, S대, H대, B대 수도 없이 많은 남자 대학생의 단톡방에서, 여자 학우들은 ‘따먹는 대상’으로 표현되었다. 또 ‘주문하는 대상’이 되었고, 몰래 사진이 찍히고 희롱 당하며 대상화 되었다.

 성적 대상화는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어울리는 친구들조차 희롱하고 강간하는 것을 허용한다. 그들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라, ‘대상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적 대상화의 극단은 성범죄인 것이다.



4. 성적 대상화의 근간


 필자는 ‘성적 대상화’라는 여성에 대한 그릇된 가치관의 근간에는 그릇된 교육이 있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그릇된 인식은 그릇된 교육에서 파생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또한 필자가 살펴본 현재의 성교육은 성적 대상화를 부추기고 승인하는 것들이었다. 다음은 한국성교육표준안의 일부이다.
 

“여성에 있어서 성 반응이 시작되면
(중략) 음경을 받아들이기 위한 수용기로 변하며
 국소적인 혈관 충혈 반응이 나타나는데
이는 남성의 발기에 해당한다.” (고등 18차시)
 

 이는 여성의 성기가 남성의 성기를 받아들이기 위한 '수용의 목적'으로서 존재함을 시사한다. 또한 여성의 반응을 남성의 반응에 빗대어 기술하였다는 데에서도 문제가 발생한다. 전적으로 '남성 중심적 설명'인 것이다. 이러한 교육은 여성을 독립적 성이 아니라 '남성이 아닌 자'로 만든다. 나아가 남성과 여성의 관계를 행위자와 수용자, 성적 주체와 성적 객체(대상)으로 인식하도록 이끌고 여성의 성적대상화를 승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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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한 교육 아래 탄생한 인물형이 '브라이스'다. 브라이스는 해나를 강간하고도, 자신이 한 것이 성범죄임을 인식하지 못한다. "해나가 날 원했어. 나를. 따먹어달라고 하다시피 애원했다고. 그게 강간이면 학교 여자애들은 다 강간당하고 싶겠다"라고 말할 뿐이다.

 어디에서부터 잘못되었을까. 이는 교육이, 그리고 사회가 성적인 관계(relation)에서 남성과 여성은 행위자와 수용자의 관계라고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여성을 '사람'이 아니라 '대상'으로 인지하게 하였기 때문이다. 말그대로, 지금의 성교육은 성적 대상화를 부추기고 승인하고 있다.
 
 

5. 마치며


 지금까지 <루머의 루머의 루머>를 바탕으로, 성적대상화에 대해 알아보았다. 다양한 사례들을 나열하였고, 또 그 근간에 대해 고찰해보았다. 한 출연자는 말했다. “전 사람들이, 특히 남학생들이 이걸 봤으면 좋겠어요." 필자 또한 동의한다. 하지만 브라이스와 같은 인물들에게, 이 드라마와 이 글과 같은 것들이 닿기 힘들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감히 바라는 것은, 부디 이러한 컨텐츠와 교육이 더 많이 만들어져, 브라이스와 같은 인물들이 잘못을 깨닫고 누군가를 상처입히는 것을 그만두는 것이다. 앞으로의 사회는 남성의 성욕이 여성의 그것보다 강하다고 말하기보다, 여성 남성 모두 성욕을 가진 '성적 주체'임을 인지시켜야 한다.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를 승인하기보다 경계하고 비판하는 담론이 이루어져야한다.

 더 이상 누군가가 해나와 같은 이유로 고민하고 고통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이 세상의 '해나'들에게 이 글을 바치며, 이야기를 마친다.


[손민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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