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한겨울의 유려한 슬픔 속으로 - 마리로랑생展

글 입력 2018.01.02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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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 한없이 움츠러드는 계절이다. 손바닥만 한 핫 팩 하나, 따뜻한 커피 한 잔, 작디 작은 것에서나마 온기를 찾으려 노력하게 된다. 우리는 이 계절 속에서 고독감과 우울감, 여하튼 그러한 것을 느끼게 된다. 움츠러든 우리는, 우리의 내면으로 더욱 깊숙이 파고들곤 한다. 한겨울은 외로운 계절이다.
 
 이러한 겨울에 걸맞은, 겨울 같은 삶을 살아온 한 예술가의 전시회에 다녀오게 되었다. 이름조차 생소한 마리 로랑생은 입체파와 야수파의 사이, 혹은 전혀 새로운 화파 속에서 그녀만의 독특한 작품 활동을 이어온 예술가이다. 전시회에 다녀오기 전 마주한 그녀의 작품은 ‘색채의 황홀’ 그 자체였다.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차분하고 온화한 그녀만의 색채를 담아내고 있었다. 유려한 그녀의 그림을 보기 위해 인파 속 온기가 조금 느껴지는 겨울날, 크리스마스 이브에 예술의 전당으로 향했다.



슬픔을 담은 인생


자화상, 1905년경, 목판에 유채, 40x30, Musee Marie Laurencin.jpg
자화상 / 1905 / 목판에 유채
40x30 / Musee Marie Laurenc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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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피카소 / 1908년경 / 캔버스에 유채
41.4x33.3 / Musee Marie Laurencin


 전시회는 그녀의 생애를 시대별로 나뉘어 작품을 전시하고 있었다. 벨에포크 시대를 지나 그녀의 ‘청춘시대’를 지나오며, 가장 처음으로 의아함이 들었다. 거칠면서도 굵은 선과, 무채색이 돋보이는 그녀의 그림은 앞서 그녀를 나타내던 ‘황홀한 색채와 섬세한 표현’과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자화상'만 하더라도 사실적인 묘사를 한 그림과, 단순한 형태의 그림이 공존하고 있었다. 언뜻 일러스트 같아보이는 그림도 존재했다. 화파에 대해 무지할 정도로 잘 알지 못하기에, 어떠한 화파의 영향으로 이러한 그림을 그렸는가에 대해서는 명확히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사생아라는 사실과 모친의 불우한 삶, 그녀의 젊은 나날의 슬픔 속 이리저리 흔들리는 그녀의 청춘을 보여주었으리라 생각된다. 누군가의 청춘이 그랬듯, 이 시기는 그녀의 작품이 꽃 피울 준비를 하고 있었던 시기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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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무도회 또는 시골에서의 춤 / 1913년
캔버스에 유채 / 112x144 / Musee Marie Laurencin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와 사랑에 빠진 ‘열애시대’에 들어서며 회색과 갈색 위주였던 작품들이 점점 그녀만의 색채를 띄기 시작한다. 작품 속에 드러나는 파스텔톤의 핑크색과 파란색, 조금은 유연해진 선들은 사랑에 빠진 그녀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녀의 열애는 기욤 아폴리네르가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 도난 사건의 용의자로 몰리게 되며 5년만에 끝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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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명의 젊은 여인들 / 1953년경 / 캔버스에 유채
97.3x131 / Musee Marie Laurencin


 뜨거운 열애가 끝난 후 그녀는 독일인 귀족과 결혼하게 되지만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된다. 이에 그녀의 ‘망명시대’가 시작된다. 숱한 고난을 겪은 그녀는 깊은 우울감에 빠지게 되지만, 이내 그림으로 고통을 승화시키기 시작한다. 그녀의 유려한 색채 속에는 따뜻함과 아름다움이 담겨있지만, 그 속에는 그녀의 슬픔과 고통이 담겨져 있다. 이후 파리로 돌아온 그녀는 계속해서, 70세가 넘는 나이가 되도록 열정적으로 작품 활동을 이어나가게 된다. '열광의 시대' 맞아 비로소 온전히 작품에 몰입할 수 있게된 그녀는, 특유의 스타일을 완성시키게 된다.



시간의 깊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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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의 작품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화한다. 그것이 눈에 띄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녀의 인생을 작품에 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무채색 속 핑크색과 보라색, 파란색, 초록색 등의 색채는 그녀의 고통과 고뇌, 우울감과 슬픔을 나타내며 그녀의 굴곡진 인생을 드러내고 있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깊어진다는 것이다. 주름의 깊이, 생각의 깊이와 감정의 깊이, 그 무엇이 되었든, 시간은 그 무엇을 깊어지게 만드는 힘을 가진다. 마리 로랑생의 색채도 그녀의 시간과 함께 깊어져갔다. 사실 그녀는 수없이 슬픔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녀의 인생은 숱한 슬픔을 겪어왔으며, 그러한 삶 속에서 그녀는 그림으로, 그녀만의 색채로 그것을 승화시켜왔다. 이리저리 흔들리던 청춘은 결국 자신만의 예술을 꽃피우게 되었다.

 예술작품은 예술가를 닮아있다. 음악, 그림, 건축물, 그 무엇이 되었든 애정을 담아 창작해낸 예술가를 닮아있게 된다. 그렇기에 작품엔 예술가의 삶과 감정이, 인생이 담겨있게 된다. 우리는 예술작품을 통해 그들의 삶을 유추해보기도, 그 감정을 엿보기도 한다. 이번 <마리 로랑생 展>을 통해서, 이름조차 들어본 적 없던 한 명의 예술가인 마리 로랑생, 그녀가 살아온 삶을 엿볼 수 있었다. 사랑과 이별, 숱한 갈등과 고뇌를 거친 그녀의 삶은 전혀 연관 없는 제 3자의 입장에서 어떠하다 단언할 수 없지만, 그녀의 그림들은 그녀의 삶 속으로 우리를 조금씩 안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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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른 화가들과
동떨어져있다는 느낌을 받은 것은
아마도 그들이 모두 남자들이어서일지 모른다.
남자들이란 내게 풀기 어려운 문제와 같다.


 사실 마리 로랑생은 여성 중심의 작품을 그려왔다. 이는 남성화가들 사이에서 여성화가로 인정받기 위함이기도 하며, 남성에 대한 상처로 인한 것이기도 하다. 그녀는 수 십년간의 그림을 통한 슬픔의 표현과 위로를 통해, 그녀만의 색채를 통해, 그녀만의 화풍을 이어오게 되었다. 이 전시회를 통해 여성 예술가로서의 마리 로랑생이 아닌, 한 예술가로서의 마리 로랑생의 삶을 조명해볼 수 있을 것이다.
 
 수없이 슬픔을 이야기하던 그녀의 그림은 한겨울을 지나 힘겹게 피어오른 한 송이의 꽃처럼 보였다. 꽃이 피어오르기까지 오롯이 꽃이 감내해온 그 시간을 우리는 머리로, 피부로 느낄 수 없다. 단지 피어오른 꽃을 보며 유추해 볼 뿐이다. 추운 겨울날, 겨울 같던 삶을 산 예술가의, 겨울 같은 전시는 한 예술가의 슬픔과 고뇌를, 그를 통한 위로를 아득히 건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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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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