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 관한 기억

글 입력 2017.12.26 23:21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얼마 전, 내가 속한 방송 봉사 동아리에서  '윤동주 문학관'을 주제로 한 라디오 방송을 송출했다. 라디오 1부 오프닝에서 DJ들이 윤동주 시인의 <길>을 낭송해주었는데, 시 낭송을 듣는 것만으로도, 윤동주 시인이 마주했을 것만 같은 풍경이 눈앞에 어렴풋이 펼쳐졌다. 정말 오랜만에, 시가 주는 감동을 몸소 느낄 수 있는 기회였다.

 시를 접한 것은 사실상 훨씬 전이었겠지만, 내 머리 속에서 시과 관련된 첫 기억은 중학교 국어시간이다. 더 정확히 말해서는, 국어 '수행평가' 시간이었다. 각자 마음에 드는 시를 선택해서, 반 아이들 앞에서 시에 대해 설명해준 뒤, 마지막으로 낭송까지 하는 수행평가였다. 단, 낭송을 할 때 발표자는 화면을 봐서는 안되고, 반 아이들 쪽을 보고 시를 낭송해야했다. 즉, '시 낭송' 아닌 '시 암송'이었다. 수행평가 기준에는 한 자도 틀리지 않고 완벽하게 시를 읊는가'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온전히 자신의 마음에 드는 시를 선택하는데에 시의 길이가 선택의 걸림돌이 되기도 했다. 그 때, 나는 정호승 시인의 시 <슬픔이 기쁨에게>에 대해서 발표했고, 시를 외우느라 거의 3일 동안 혼자 시를 중얼거리며 다녔던 기억이 난다.

 시를 그다지 긍정적인 방식으로 경험하지 못했던 중학교 시절과는 달리, 고등학교 시절에는 국어시간 문학 공부와는 별개로, 스스로 시를 찾아 읽었다. 고등학교 시절, 학교생활과 기숙사 생활 모두를 함께했던 친구들은 나에게 가장 소중했던 존재이면서, 동시에 피할 수 없는 비교 대상이기도 했다. 나보다 더 공부를 잘하는 내 친구가 괜시리 미운 날도 있었고, 이유같지 않은 이유로 친구를 미워하는 옹졸한 내 자신이 미운 날도 있었다. 스스로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무엇인가가 필요했고, 그런 나에게 시는 마음의 여유를 되찾아 주었다. 시인의 예쁜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이 느껴지는 시를 친구랑 함께 나누며 표현에 감탄하기도 하고, 때로는 대학만을 바라보며 수험서 더미 앞에 앉아있는 우리의 처지를 함께 위로하기도 했다.

 언젠가 내게 또 힘든 시기가 온다면, 그 때에도 시는 변함없이 나를 위로해 줄 것이다. 
 과거의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또 미래의 나에게 그럴 것처럼,
 이 시가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마음의 여유를 되찾아 주었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사람이 미워지는 밤에는


도종환


사랑하는 사람이 미워지는 밤에는 몹시도 괴로웠다
어깨 위에 별들이 뜨고
그 별들이 다 질때까지 마음이 아팠다


사랑하는 사람이 멀게만 느껴지는 날에는
내가 그에게 처음 했던 말들을 생각했다


내가 그와 끝까지 함께하리라 마음 먹던 밤
돌아오면서 발걸음마다 심었던 맹세들을 떠올렸다
그날의 내 기도를 들어준 별들과 저녁 하늘을 생각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미워지는 밤에는
사랑도 다 모르면서 미움을 더 아는 듯이 쏟아버린
내 마음이 어리석어 괴로웠다







KakaoTalk_20171128_235509442.jpg
 

[최지연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