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일본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은 [문화 전반]

내가 페미니즘에 관심 가진 계기
글 입력 2017.12.18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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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은


얼마 전 도쿄로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을 길게 가는 편이라, 3박 4일이 적당하다는 주변의 말에 일정을 일주일로 잡았다.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근대화가 일찍 시작됐고 시민들의 자유가 잘 보장된 나라다. 무엇보다 문화적인 측면에서 배울 점이 많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처음 가본 일본은 많은 것이 내가 자란 한국과 달랐다. 작게는 사람들의 독특한 옷차림이나 특유의 예절 문화부터 그들만의 시선으로 만든 멋진 전시회나 전통을 잘 보존하는 그들의 문화까지. 여행자의 눈으로 본 도쿄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이 새롭고 또 좋았다. 단 한 가지, 일본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만 빼면 말이다.

사실 나는 페미니즘을 지지하지만, 누구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이런 내가 페미니즘에 대해서, 그것도 우리나라도 아닌 일본에서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우연한 사건에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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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그 사람은 늘 그래

조용한 성격이라 많은 사람들이나 모르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대신 소수의 사람들과 깊이 있게 이야기를 나누는 편이다. 이번 여행에서도 역시,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는 않았지만 두 명의 사람과 오랫동안 대화를 나눴다. 그들은 한국에 있는 친구를 통해 알게 됐는데, 일본인이고 사진작가다. 그리고 모두 여자였다.

그 친구들은 나를 초밥집에 데려가 주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맛있는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일본의 관광지, 서로 다른 문화와 언어, 생선에 방사능이 있는지에 대한 걱정 등 가볍고 때로는 쓸데없는 주제들. 워낙 활발한 친구들이기도 하고 나이도 비슷해서 즐거운 분위기였다. 그러던 그때, 이성 친구 문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묘하게 대화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그들은 분명 지금이 행복하다고 했다. 서로를 존중하고 특별한 다툼 없이 잘 지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그들은 일본 남성들의 무뚝뚝함이나 권위적인 모습에 아쉬움을 표현했다. 단지 그뿐이지만 말투나 억양에서는 조심스러움이 느껴졌고, 말과 말 사이에 느껴지는 간격에서 아쉬움이 섞인 체념이 맴돌았다. 그러다 문득 대화의 중간에 뱉은 한 마디가 어쩐지 나를 안타깝게 만들었다. ‘괜찮아, 그 사람은 늘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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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와 여자 그리고 사람

다음날이다. 이날은 전날 만난 친구들이 소개해준 다이칸야마 역의 츠타야 서점에 갔다. 참고로 츠타야 서점은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서점으로, 책뿐만 아니라 카페, 레스토랑, DVD, 음반 등 다양한 가게가 모여 만들어진 감각적인 종합 서점이다. 내가 서점에 간 이유는 단순히 예술 서적을 보기 위해서기도 하지만, 이곳에서 어떤 예술이 소비되고, 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공감하게 만드는지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요컨대 츠타야 서점은 현재 일본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취향이 선별되어 모인 집합소다. 때문에 그곳에 있는 책은 일본의 문화를 엿보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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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의 대화 때문인지 유독 여성에 대한 사진집이 눈에 띄었다. 자연스럽게 손이 갔고, 많은 책을 봤다. 헌데 일본 작가들과 일찍이 여성 인권운동이 활발했던 서양 작가들의 여성에 대한 묘사가 눈에 띄게 달랐다. 일본 작가들에게 여성은 수동적인 존재였다. 당하고, 지키고, 기다리고, 보살펴주는 존재. 그럼에도 아무렇지 않다고 말하는 것처럼 밝은 얼굴로 웃으며 렌즈를 바라본다. 한편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본 서양 작가들의 표현은 조금 달랐다. 그곳에서 여성은 그냥 하나의 사람이었다. 여성임을 내세우지도 그렇다고 숨기지도 않았다. 힘들 땐 슬퍼하고, 아플 땐 아파하고, 기쁠 땐 기뻐했다. 그들의 외모 역시 당연하게 겨드랑이에는 털이 있고, 스타일을 위해 머리를 반삭으로 밀기도 했다. 그렇게 아무런 가식 없이 그들의 모든 것이 드러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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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가지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묻는다면, 페미니즘에 큰 관심이 없는 나도 대답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둘의 차이가 너무나도 명확하기 때문이다.

남자가 운다.
여자가 운다.
슬프면 운다.

위쪽의 두 문장이 주는 느낌은 모두 다르다. 그것은 우리가 성별에 따라 가지는 ‘기대 ’때문이다. 가령 ‘남자는 강하고 여자는 약하다.’ 든지 ‘남자는 울면 약해 보이고, 여자는 울어도 괜찮다.’가 그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문장을 보면 우리는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슬프면 눈물이 나는 것은 당연하니까. 남자라서 울면 안 되는 것도 아니고, 여자이기 때문에 울어도 된다는 것은 없다. 슬픈 사람은 울고, 기쁜 사람은 웃는 것이다. 이유는 없다. 그냥 그런 것이다.

다시 좀 전의 이미지로 돌아가면 일본과 서양이 이미지가 가지는 차이가 확연하게 느껴질 것이다. 일본의 이미지는 사회가 여성에게 기대하는 이미지다. 반면 서양의 이미지는 사람이라면 당연한 것들이다. 만약 이것에서 이질적인 느낌을 받는다면, 그것은 기대가 깨져버렸기 때문이다. 여성의 겨드랑이에는 털이 없어야 하는데 있고, 반삭발 머리는 남자들의 머리인데 여자가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사람은 겨드랑이에 털이 나고, 머리 스타일은 언제든 바꿀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누군가의 기대에 맞출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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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모든 이야기들은 단순히 일본에서 보고 느낀 것을 토대로,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에 불과하다. 개인적인 발견이고, 근거 또한 명확하다고 볼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이 글을 통해 사람들이 조금은 자신의 시선에 대해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남성뿐 아니라 여성, 그리고 더 나아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성에 대해서 생각하기를 바란다.


[공정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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