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영화]

글 입력 2017.11.30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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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제로법칙의 비밀>에 관한 글입니다.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 제로 법칙


우주가 팽창을 거듭하나 끝에 거대한 블랙홀의 충격에 빨려 들어가 결국 모든 것이 사라지고 아무것도 남지 않는 ‘0’(ZERO)이 된다는 법칙.



2. 감독 테리 길리엄


영화계의 상상파괴주의자, 기묘한 상상력의 비주얼리스트, 현대 문명에 대한 신랄한 독설과 어두운 유머감각으로 유명한 괴짜 감독이다. 본명은 테렌스 반스 길리엄 (Terence Vance Gilliam), 1940년 11월 22일 출생이다. <몬티 파이튼> 시리즈와 <브라질>, <12 몽키즈>,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등 정상적이고 온건한 사람이라면 만들 수 없을 것 같은 기괴한 영화들을 만들었다. <제로법칙의 비밀>(2013)도 그 중 하나이며, 우리나라 번역에선 ‘~의 비밀’이 붙었지만 원제는 <제로법칙>(The Zero Theore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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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줄거리


근미래의 배경. 천재 프로그래머 코헨 레쓰는 회사에서 업무를 하는데, 집에서 일할 수 있게 장애인 신청을 한다. 그 이유는 자신에게 '삶의 의미를 알려주는 전화'를 받기 위해 집에서 기다려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사들에게 거절당해, 코헨 레쓰는 결국 회사 경영자를 직접 찾아가 부탁을 한다. 경영자는 코헨 레쓰에게 집에서 일할 수 있게 해주는 대신 ‘제로법칙 프로젝트’를 맡긴다. 집에서 컴퓨터로 연산이 적힌 큐브조각을 시간 안에 맞추는 일인데 그 연산 수식의 답이 무조건 100%의 0이 되어야 한다. 큐브조각을 맞추는데 실패하면 다른 맞춘 큐브 들이 부서져 내리고, 시간은 항상 1시간 내로 도달하라고 재촉한다. 코헨 레쓰는 내내 하다가, 무리한 요구와 계속된 실패에 화나서 망치로 컴퓨터를 부수고 만다. 하지만 경영자는 코헨이 쉴 수 있게 놔두는 게 아니라 코헨의 감독관인 조비, 자신의 아들인 밥, 상담사, 그리고 고용한 창녀 벤슬리까지 동원해서 코헨을 도와주며 그만둘 수 없게 한다. 일을 계속 하면 기다리던 그 전화를 받게 해줄 거라고 설득한다. 코헨은 상담사와 상담을 하고, 신경계 접속만으로 가상공간에서 벤슬리와 사랑을 나눈다. 밥이 컴퓨터를 고치면서 제로 법칙에 대해 말해준다. 모든 것은 무(無), zero로 통하는 거라고. 코헨은 자신이 기다리는 전화가 가짜인 것을 알고, 또 자신이 하는 업무가 –100%의 0에 도달하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포기한다. 경영자는 코헨이 포기하자 코헨을 버린다. 코헨은 자기 속, 내면의 공허- 혼돈 속으로 빠지게 되며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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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인물


1)코헨 레쓰

주인공인 코헨 레쓰는 스트레스를 받아 머리가 다 빠졌으며, 항상 검은색 계열의 옷을 입는다. 언제나 외로움을 느끼며 삶의 의미를 찾는 중년 남성이다. ‘벤컴’회사에서 일을 하는 프로그래머이며, 나중에는 제로법칙 프로젝트를 맡게 된다. 특징은 자신을 ‘우리’라고 지칭하고 있다.

코헨 레쓰는 일상적이고 반복된 삶 속에서 자신만의 삶의 의미를 찾는 ‘신념의 인간’이다. 하루에 한 번씩 내면 속의 공허를 느낀다. 그 공허는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넓은 우주 속에서 나체로 혼자 떠다니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에 빨려 들어가 무(無)에 다다르는 것에 겁을 내고 있다. 모든 것이 다 혼란스럽고, 너무 공허하고 외로워서 자신에게 삶의 의미를 알려주는 전화를 기다린다. 불에 타버린 성당을 사서 그 성당에서 살고 있으며, 문고리에 잠금 장치가 많아 낯선 사람과 외부를 경계한다.

‘제로법칙 프로젝트’를 하다가 포기함으로써 만나게 되는 벤슬리, 상담사, 조비, 밥에게 영향을 많이 받는다. 벤슬리와 함께 내면 속의 공허를 공유하지만, 그녀조차 경영자의 도구임을 깨닫고 내친다. 벤슬리가 코헨에게 사랑에 빠져 함께 도망가자고 하지만 이내 거절한다. 실연을 한 후, 오랜만에 밖으로 외출을 하게 되면서 많은 사람들을 구경하고, 조비와 대화 끝에 ‘우리’에서 ‘나’로 지칭이 변화한다. 조비가 코헨에게 ‘제로법칙 프로젝트’는 불가능한 일이란 걸 알려주고, 이 모든 것이 경영자의 도구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프로젝트를 포기한다. 자신이 포기하자 끝내 경영자에게 내쳐지고 내면의 공허 속으로 빠지게 된다.

코헨이 ‘밴컴’회사 신경망에 접속해 경영자와 대화를 하지만, 경영자가 단순히 돈 벌 수단으로 모든 걸 제어했고, 의미를 찾는 자신이 이때까지 전부 무의미한 일들만 한 것을 깨닫자 회사의 기계들을 부수기 시작했다. 부순 자리에는 자기가 항상 생각하던 그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과정 중에 있는 우주가 남아 있었다. 그 전까지는 항상 떠다니던 코헨이, 스스로 우주 속으로 몸을 던진다. 결국 삶의 의미는 누군가 정해주거나 지어 주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선택은 스스로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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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벤슬리

코헨이 사랑한 여자이며 경영자가 고용한 창녀이다. 경영자가 고용했는데, 코헨이 ‘제로법칙 프로젝트’를 계속 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역할이다. 외모는 귀엽고 사랑스럽다. 글래머러스한 몸매를 가졌으며 코스튬을 자주 입는다. 접촉에 낯선 코헨을 유혹한다. 자신의 홈페이지 사이트를 운영하는데, 신경계를 연결하는 옷을 입고 접속하면 가상공간에 갈 수 있다. 가상 고간에는 낭만적인 해변에 노을 지는 풍경을 고정해 놓는다. 가상공간에서 코헨에게 머리를 심어주었으며, 그 공간은 직접적인 접촉은 없지만 마음껏 할 수 있는 세계라고 생각한다.

코헨의 마음 속 공허를 본 뒤에 아픔을 느끼며 사랑한다고 말해달라고 조른다. 코헨이 프로젝트를 포기하며 이 공간에서 영원히 사랑할거라고, 스스로 거절할거라고 하자 경영자가 허락하지 않을 거라고 거부한다. 코헨은 이에 상처받고 더 이상 가질 않지만, 코헨을 사랑해서 벤즐리는 결국 하는 일을 다 접고 떠날 채비를 한다. 짐을 다 싸고 코헨에게 직접 찾아와- 진짜 하와이로 가자고, 다 버리고 같이 도망가서 사랑하자고 설득한다. 코헨의 거절에 벤즐리는 상처입고 떠난다. 코헨과 동질감을 느끼며 공감을 한다. 신경계 연결로 만난 가상공간에서 모든 걸 할 수 있다고 꿈꾸지만, 외로움을 공유하게 되면서 가상공간을 떠나 실제 세상으로 발을 내딛는다.
 
 
3)밥

회사에 여름 인턴으로 있으나, 사실은 경영자의 아들이다. 아주 오래 전부터 아빠 일을 도왔고, 코헨보다 더 천재적이다. 15살의 소년이고 자유분방한 성격이다. 아빠가 고용한 감시자들에게 둘러싸여서 산다. 누군가의 도구가 되길 거부하며 인생에 지루함을 느낀다. 사람 이름 기억하는 것조차 뇌세포 낭비라 생각해, 모든 사람을 다 밥이라고 부르지만 코헨이 거부하자 큐라고 부른다.

경영자의 명령으로 코헨의 컴퓨터를 고쳐주러 집에 자주 방문하게 되는데, 코헨을 흥미롭게 생각하며 다양한 사실들을 알려준다. 코헨도 경영자의 도구 중 하나고, 상담사도, 벤슬리도 모든 것들이 다 도구라고 얘기한다. 모든 것이 무(無), ZERO로 끝나는 제로법칙을 믿는다. 그러면서도, 영혼의 존재를 믿으며 살고 있다. 항상 공허해하고 외롭게 지내는 코헨에게 가벼운 웃음을 주고, 진정한 친구가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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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경영자

벤컴 회사를 경영하는 남자이다. 보호색처럼 주위 배경과 같은 색의 옷을 입으며 남들 앞에 잘 드러내지 않는다. 100%의 0을 증명하는 프로젝트를 코헨에게 맡겼다. 그리고 회사 직원들을 아무 의미도 없고 난잡한 일들을 굴리며 돈을 번다. 공허는 그저 공허일 뿐, 이를 돈으로 정리할 수 있다고 믿는다. 불가능함을, 공허를, 허무를 돈으로 환산한다.

삐뚤어진 성격으로, 공허함을 증명하는 프로젝트를, 삶의 의미를 찾는 코헨에게 맡긴다. 자신의 계획에 반대되는 사람을 프로젝트에 참여시켜 흥미롭게 바라본다. 코헨 집에 감시카메라를 달고, 주위 인물들을 모두 도구처럼 사용한다. 벤슬리도, 상담사도, 조비도, 심지어 아들인 밥도 도구로 사용한다. 심지어 코헨이 언제인지조차 모를 예전부터 기다리던 그 전화도 자신이 사용한 도구임을 밝힌다. 코헨이 프로젝트를 포기하자 해고를 한다. 그리고 좌절에 빠진 코헨을 놔두고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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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無


코헨이 항상 생각하던 외로움, 공허는 너무나도 컸다. 영화 시작부분과 중간, 끝 부분에는 우주가 사라지는 화면이 계속해서 나온다. 처음에는 나체로 그 화면을 응시만을 했었고, 중간에는 가상세계에서- 나체로 그 우주가 빨려 들어가는 블랙홀 속으로 같이 빨려 들어갔다. 뒷부분에는 큰 화면과 함께, 자신이 부순 기계들 틈으로 거대한 우주가 있었다. 처음엔 멈칫 하다가 그 공허를 피할 수 없음을 깨닫고 온 몸을 스스로 던져서 떨어진다.

조비가 코헨에게 말한다. 네가 큐브 수식으로 100%의 0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네가 하고 있는 ‘제로법칙 프로젝트’의 ‘제로법칙’의 의미가 뭔지 아냐고. 모든 물질, 에너지, 생명들은 단지 한 번에 일어난 빅뱅 이론의 결함일 뿐이라고. 팽창하는 우주는 결국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 끝이 난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이 다 사라지고 없다고 한다. 이는 코헨이 항상 걱정하고 고민하는 공허와 닮았다. 왜 전부 다 사라진다는 그 법칙을, 100%의 0을 만드는 것을 자신이 해야 하는 걸까. 불가능한 일이란 걸 깨닫고 경영자에게 항의하지만, 경영자는 공허가 돈이 된다면서, 프로젝트를 포기한 코헨을 버린다. 불가능한 것을 유도해서 계속해서 유지하게끔 만드는 것이 사업이고, 바로 돈이 되는 것이다. 경영자에게 공허란 사업의 아이템일 뿐이다.

코헨은 공허에 빠지지 않기 위해, 삶의 의미를 알려주는 전화를 기다린다. 예전에 받았다가 실수로 떨어뜨려 끊긴 적이 있기에, 놓치지 않으려고 집에서 일을 하고, 불가능한 프로젝트를 맡으면서도 기다린다. 삶의 의미, 존재의 목적을 알기 위해 기다린 전화에 오히려 집착을 하고 맹목적으로 기다리기만 하게 된다. 그러나 조비의 말과 경영자의 태도로 인해, 그 전화조차도 경영자의 도구였다는 것을 깨닫고 분노하게 된다. 전화가 알려주는 삶의 의미를 기다리다가, 이 기다림조차 허무한 일임을 알고, 결국 마지막엔 공허함에 온 몸을 던진다.

자신이 공허함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노력도, 주위의 모든 인물들도 다 경영자의 사업 도구에 불과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이 그 외로움과 무력함, 무의미함에서 벗어나고자 했지만 그를 위해 한 행동조차 ‘100%의 0’을 만드는 일, 제로법칙과 같이 무의미한 일이었다. 우주가 빨려 들어가는 모습처럼 시작이 갑자기 생겨났듯, 끝도 분명하게 있다. 아무리 발버둥을 처도 사업가의 이용이 있어도, 피하든 피하지 않든 모든 것은 0(ZERO), 無로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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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역설


모든 것이 끝날 것이고, 공허함뿐인데 무얼 할 수 있나. 아무것도 완벽하지 않고, 그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다. 오히려 그렇기에 아무런 걱정도 할 필요가 없다고 조비는 말한다. 이것이 패러독스, 역설이다. 코헨도 불가능을 깨달았기 때문에 떨쳐낼 수 있었다. 그리고 삶의 의미, 존재의 의미를 알려주는 전화는 실제로 왔는지 안왔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조비는 자신한다. 코헨, 네가 생각하는 그 전화는 너의 영혼에서 왔다고. 영혼의 존재를 믿는다.
경영자는 코헨에게 말한다. 네가 바로 내 계획에 정반대되는 ‘신념의 사람’이라고. 당신이 주장했던 그 전화와 같은 인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넌 결국 의미 없는 삶에 이르렀으니 더 이상 일을 시킬 수가 없다고 내버린다. 이용당하고 버려진 코헨은 자기 속의 공허와 또 한 번 마주하게 되는데 그 전까지는 쓸려 다녔다면, 이번에야말로 스스로 직접 자신의 몸을 던져 공허를 마주한다. 여기서 공허에 몸을 던지는 건 어쩔 수 없이, 피할 수 없어서 빠지게 된 공허와는 다르다.

이 영화는 결국 모든 것이 무(無)로 간다는 것을 말한다. 모든 노력들은 다 부질없지만, 그걸 깨달으면 오히려 더 자유로워진다고 역설한다. 삶의 의미를 찾는 코헨이 결국은 찾지 못하고 공허와 직접 대면하는 것은 큰 용기이다. 끝에 다다랐지만, 처음으로 직접 대면을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비록 벤즐리가 없는- 가상세계지만 그 곳에서 해를 가지고 논다. 드디어 자신을 위해,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주체적으로 행동을 한다. ‘우리’가 아닌 ‘나’로 스스로를 말하며, 망치로 감시 카메라 컴퓨터를 부수고, 사랑했던 여자마저 떠나보낸 후, 공허를 직접적으로 마주했기에 가능했던 일이 아닐까 한다. 가상세계가 배경이라는 건 끝까지 감독의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이 녹아있는 것이다.

반대로 말하고 표현하는 감독의 연출 덕분에 오히려 그 속에서 전하는 메시지를 더 뚜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의미 없는 공허에 몸을 던지는 모습, 삶의 의미를 알려주는 전화만을 기다리다가 자신의 프로젝트와 같이 불가능하고 무의미한 걸 깨닫는 코헨을 보고 우리들은 생각을 하게 된다. 나의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100%의 0에 도달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래서 결말은 어떻게 나온 것이지? 개성도 너무 강하고, 너무 열려있어서, 던져주기만 하고 가는 영화는 불친절하다고도 볼 수 있다. 100%의 0을 만드는 일과, 모든 것이 무(無)로 돌아간다는 제로법칙, 그리고 삶의 의미를 알려주는 전화. 이 세 가지가 사실 아무 연관도 없어 보이고 설명도 부족해 보인다. 너무 뜬금없고 이해도 안되는 내용 투성이다. 평점이 6점대인 것은, 0점과 10점밖에 없어서 라고 생각이 든다. 보면서 화가 났다는 사람도 있다고 하지만 이조차도 감독의 의도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이해는 전부 다 되지는 않지만 너무나 많이 열려있기에, 오히려 계속해서 생각을 하게하고 토론을 하게 만드는 부분이 너무나도 큰 매력이다.

코헨의 전화는 영혼에서 온 것. 영혼이 있기에 코헨이 신념의 사람이라고 표현을 한 것이다. 벤컴 회사의 직원들은 왜 하는지도 모를, 오락실 게임기처럼 생긴 일들만 한다. 목적도, 의식도 없이 시키는 대로 경영자의 도구 역할을 충실히 한다. 하지만 코헨은 다르다. 삶의 의미를 찾으며, 비록 공허에 도달할지라도 끌려가는 것이 아닌 직접 몸을 던진다. 마음속에 공허를 지니면서도 영혼이 있기에, 삶의 의미를 찾으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최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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