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백조의 호수 : 발알못의, 발레를 통해 깨어난 감각에 대하여.

글 입력 2017.11.20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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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11일.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마린스키 발레단의 <백조의 호수>가 모두의 기대 속에 공연되었다. 아트인사이트 문화 초대를 받기 전부터 꽤나 큰 기대를 갖고 있던 작품인지라 나 또한 기대가 큰 상태였다. 2014년 클래식 공연에 짧막하게 추가된 미니 발레극을 본 것을 마지막으로 발레와는 인연이 먼 채로 살아왔는데, 이번에 이렇게 좋은 기회로, 러시아 정통 발레를 볼 수 있게 되어서 굉장히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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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리뷰를 시작하기 전, 공연에 대해 대충 알아보도록 하자.

백조의 호수(러시아어: Лебединое озеро)는 러시아의 차이콥스키가 작곡한 발레 음악이자 이 음악에 맞춰 공연되는 발레 작품이다. 초연 때는 연출이나 무대 장치가 서툴렀기 때문에 호응을 얻지 못했으나, 차이콥스키의 음악과 프티파, 이바노프(Lev Ivanov)의 개작으로 처음으로 그 진가가 인정되고, 고전 발레를 대표하는 작품으로서 각국에서 상연되기에 이르렀다. 시나리오는 러시아 전래 동화를 기반으로 하여, 악한 마법사의 저주에 걸려 백조로 변한 오데트 공주에 대한 이야기이다. 전체에 넘쳐흐르는 감미로운 선율은 오데트 공주의 슬픈 운명을 묘사하였고, 또한 제3막의 궁정 무도회의 성격(character) 무용에서는 민족적 리듬을 지닌 소곡을 차례로 전개한다. 오데트 공주의 주제 음악은 특히 유명하다. 관습적으로 오데트 공주를 연기하는 프리마 발레리나는 지그프리드 왕자를 유혹하는 흑조 오딜도 동시에 연기한다.


제1막
지그프리드 왕자는 교사, 친구, 신민과 함께 그의 생일을 축하한다. 여흥은 왕자의 자유로운 생활을 걱정하는 지그프리드의 어머니인 여왕에 의해 곧 방해받고 만다. 여왕은 다음 저녁에 열리는 왕실 무도회에서 신부를 정해야 한다고 당부하지만, 왕자는 사랑을 위해 결혼할 수 없다는 것에 화가 난다. 왕자의 친구인 벤노와 교사는 왕자의 기분을 풀어 주려 한다. 저녁이 드리워질 때 벤노는 백조 무리가 머리 위로 지나가는 것을 보고 사냥을 가자고 제안한다. 왕자와 친구들을 석궁을 들고 백조를 쫓기 위해 떠난다.

제2막
지그프리드 왕자는 친구들과 떨어진다. 왕자가 호수 옆 빈터에 다다랐을 때 백조 무리가 근처에 앉는다. 왕자는 백조를 향해 석궁을 겨누지만 백조 무리 중 한 마리가 아름다운 아가씨 오데트로 변신하는 것을 보자 얼어붙고 만다. 오데트는 처음에 지그프리드에게 겁을 먹지만, 왕자가 그녀를 해치지 않겠다고 약속하자 자신이 백조의 여왕 오데트라고 말한다. 오데트와 다른 백조들은 부엉이 같이 생긴 사악한 마법사 로트바르트의 저주의 희생자였다. 낮 동안 그들은 백조로 변하고, 밤에만 오데트의 어머니의 눈물로 만들어진 마법의 호수 옆에서 인간의 형상으로 돌아온다. 저주는 오직 사랑을 하지 않았던 사람이 오데트를 영원히 사랑할 것을 맹세했을 때만 깨질 수 있다. 로트바르트가 갑자기 나타나자 왕자는 그를 죽이겠다고 하지만 로트바르트는 저주가 깨지기 전에 죽으면 저주는 되돌릴 수 없다고 호소한다. 로트바르트가 사라지자 백조들이 빈터를 매운다. 지그프리드는 석궁을 부수고 오데트의 신뢰를 얻기 시작한다. 그러나 아침이 되었을 때 사악한 저주는 오데트와 그녀의 시종들을 호수로 끌고가고, 그녀들은 다시 백조가 된다.

제3막
무도회를 위해 왕궁에 손님들이 도착한다. 여왕이 왕자가 신부로 선택하길 바라는 여섯 명의 공주가 왕자에게 소개된다. 그 때 로트바르트가 인간으로 변장하고 오데트와 똑같이 변신한 딸 오딜과 함께 나타난다. 공주들은 왕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춤을 추기만 오딜을 오데트로 착각한 지그프리드 왕자는 오직 오딜만 바라보고 오딜하고만 춤을 춘다. 오데트는 환영으로 나타나 지그프리드에게 속고 있음을 경고하려고 한다. 그러나 지그프리드는 그만 오딜을 아내로 삼겠다고 맹세하고 만다. 로트바르트는 지그프리드에게 오데트의 환영을 보여주고 왕자는 실수를 깨닫는다. 지그프리드는 호수로 급히 돌아간다.

제4막
오데트는 지그프리드의 배신에 깊은 충격을 받는다. 백조들은 그녀를 안심시키려 하지만 오데트는 죽음을 결심한다. 지그프리드 왕자는 호수로 돌아와 오데트를 찾는다. 왕자는 오데트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오데트는 그를 용서한다. 로트바르트가 나타나 지그프리드는 오딜과 결혼하겠다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며, 오데트는 영원히 백조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왕자는 차라리 오데트 옆에서 죽는 것을 택하고 둘은 호수로 뛰어든다. 이로 인해 로트바르트의 저주는 깨지고, 로트바르트는 힘을 잃고 죽는다. 백조 아가씨들은 지그프리드와 오데트가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 함께 천국으로 올라가는 모습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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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발레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고백할 것이 있다면, 나는 초등학교 2학년 때 한학기 정도짧게 발레를 배운 적이 있다. 사실 1막을 보는 도중에는 발레의 내용에 집중하지 못하고 자꾸만 나의 어린 시절 과거를 회상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산 토슈즈, 새것이라 반짝거리는 발레 연습복은 9살 소녀의 마음을 설레게 하기 충분했다. 그러나 본격적인 연습에 들어가고, 나는 발레가 그저 만만한 예술이 아닌 것 같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춤'이라는 것이 다 그렇겠지만, 어느정도 체력과 근력은 필수적인 사항이다. 그러나 나는 선천적으로 몸에 근력이라곤 없는 체형이었고, 빨리빨리 성장해나가는 다른 친구들에 비해 당연히 뒤쳐질 수 밖에 없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1년만에 몸에 근육이 생길리 만무했고, 유연치 못했던 몸이 일자로 쭉쭉 펴질리 없었다.

결국 그 해 학교 축제에서 공연될 예정이었던 백조의 호수, 그리고 호두까기 인형의 주연 멤버 명단에는 내 이름이 없었고, 어린 나이에 그것이 꽤나 충격적이었는지, 미련없이 발레를 관두고 축제 또한 출전하지 않은채, 나와 발레의 인연은 그렇게 끝이 났었다. 그래서인지 나에게 이번 프로그램은 약간의 아픈 기억이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 시선으로 발레를 바라보니, 지금 내 눈앞에서 자유자재로 몸의 관절을 움직여가며 날아다니는 발레리나, 발레리노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인가-라는 것이 더 와 닿았다. 그들은 물론 내가 꼬꼬마 시절에 어린이용 풀장에 발을 담그듯 장난쳤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어두 컴컴하고 깊은 해협에서 산소호흡기 하나에 의지한채 아름답게 유영하고 있는 것 같이 보였다. 바닷가에 인어가 산다면, 육지에는 발레리나가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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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나 더 인상깊었던 사람은 발레리나인 오데트 역의 이리나 사포즈니코바였다. 나에겐 굉장히 생소한 이름과 생소한 몸을 가진 그녀는, 무대를 '장악'한다는 말이 무엇인지 행동으로 보여주기라도 하겠다는듯, 첫 등장부터 모든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2막에 그녀가 등장한 뒤 부터는, 과거 생각이고 뭐고 싹 다 잊은 채 그녀의 몸 짓 하나하나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저렇게 높은 점프력을 보여줌과 동시에 착지가 저정도로 안정적인거지? 어떻게 저 팔 다리 관절 한 부분부분이 자유자재로 움직이는거지? 어떻게 저렇게 여유롭고 아름답고 우아한 표정을 지을 수 있는거지? 어떻게 저런 부드러운 절도가 나오는거지?

그녀의 동작을 보면서 아주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역시 발레리나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겠다 싶었다. 그와 동시에 어린 그 때의 나는 오데트 역으로 발탁된 그 기억속에 사라진 소녀를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 더 죽을만큼 연습을 했었어야 했다는 진리와도 같은 사실을 깨달았다. 그 소녀 또한 죽을만큼 노력해서 얻은 결과였으리라.

아무튼, 그녀의 몸은 단순히 마르고 밋밋한 몸이 아닌, 탄탄한 근육이 잡히고 균형적으로 보기좋은 상태로, 발레를 하는데 있어서 필요한 모든 동작을 최적으로 소화해 낼 모든 조건을 다 갖추고 있는 것 처럼 보였다. 이런 점에서도 자기관리와 노력의 흔적이 보이는 듯 했다. 우락부락하면 안되고, 또 그렇다고 너무 비실비실해서도 안되는 직업이기에, 체력관리와 체중관리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들었는데, 발레 실력과 더불어 그런 점들까지 컨트롤 해가며 지금의 정상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그녀가, 단순히 발레리나로서 뿐만 아니라 한 명의 여자로서 존경스러워 보일 지경이었다.

그녀가 허공에 손끝으로 터치를 할 때면 마치 아름다운 꽃잎들이 흩날리는 환상이 보이는 것 같았고, 그녀가 통통통 뛰어갈 때는 그녀의 발 밑에 구름 조각조각이 퍼트려져 있는 것만 같았다. 또한 그녀의 곧게 뻗은 등에는 마치 하얀 천사의 날개가 달려있는 것만 같았고, 언제나 도도해 보이던 목과 고개는 실제 백조와 흡사하여 우아하고 고고한 분위기를 풍기게 만들었다. 그녀는 틀림없이 가장 잘 어울리는 오데트이자 오딜이었다.

정말 많은 출연진들이 있었고, 상대역인 남자 발레리노와 광대역의 발레리노도 충분히 인상적이었지만, 내게는 사포즈니코바의 몸동작이 가장 강렬하게 기억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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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주최 측에서도 2011년 이후로 어렵게 모신 귀빈이라 그런지, 더욱 극진히 대접하는게 눈에 보였고, 공연단 단원들도 그런 대우에 응당하는 예우를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더욱더 정중하고 신사답고 우아하고 고결하게 관객들에게 감사 인사를 표했다.

정말 처음부터 하나까지 다 고급스러운 전통 클래식 풍의 느낌이 충만한 공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옛날 옛적에 이런 스토리에 곡을 써 붙인 차이코프스키도 대단하지만, 이 안무들을 새롭게 각색해낸 마린스키 발레단의 프티파라는 사람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번 공연을 보러가기 전에 더 기대되었던 것은 음악에 관한 부분이었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공연을 보는 내내 음악은 단지 발레를 더 맛깔나게 관람하기 위한 최고급의 수단에 가까울 정도였다. 내가 사랑하는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가 이렇게 찬밥신세가 되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만큼 이번 기회를 통해 발레의 감성에 눈을 뜨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 옛날, 한번의 실패로 매몰차게 내팽개쳤던 발레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었던 것일까? 사실은 더 하고싶었던 것일까?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발레라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고귀한 예술인지, 그것 만큼은 정말 절실하게 깨닫게 된 것 같다. 그렇다. 매력에 빠져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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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군다나 혼자하는 예술이 아닌, 모두가 힘을 합쳐 아름다운 동선을 만들고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예술이기에 그 진가가 더욱더 발휘되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발레동작-음악-예술성 이라는 삼박자가 고루 갖추어져야 하고, 또한 이 모든 것들을 알아주는 관객이 있어야 비로소 완성되는 궁극에 궁극을 더해가는 예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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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3시간이라는 짧고도 긴 시간동안, 나에게 과거의 회상으로 부터 시작해서, 나에 대한 반성의 시간까지 이끌어준 그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그들은 단순히 공연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느끼는 것 뿐만이 아닌, 어떤 지점을 초월해서 공감하는 것. 전반적인 부분에서 그것과 연관된 것을 찾아내어 떠올리는 것을 가능케 했다.

예술의 의미는 이런 것에 있는 것 같다. 아트인사이트를 통해서 많은 예술 작품을 볼 때마다 나는 한계단 한계단 올라가는 것 같고, 나를 둘러싸고 있는 껍질이 더욱 더 단단하고 견고해지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그런 느낌은 바로 위와 같은 것들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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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에 동영상을 올렸더니, 내가 가장 좋아했던 발레리나 사포즈니코바로부터 다이렉트가 왔다. 내가 찍어서 올린 영상을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싶다며 먼저 연락이 온 것이다! 이런 것을 보고 바로 계탔다고 해야하나, 성공한 덕후라고 해야하나. 아무튼 정말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시대를 뛰어넘어 우리에게 전달된 1877년의 작품과 음악, 그리고 국적을 뛰어넘어 정서가 아예 다른 우리나라에서 공연된 작품, 또한 국적을 뛰어넘어 예술 작품을 통해 소통하는 우리의 모습이, 예술의 순기능이 맘껏 발산되고 있다고 보는 아주 좋은 근거가 되고 있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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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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