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분단을 걸어본 적이 있는가, 워킹 홀리데이 [공연]

“비로소 분단을 걷는 경험이 필요한 때이다.”
글 입력 2017.11.20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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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글을 쓰기 전 한참을 고민했다. <워킹 홀리데이>가 필자에게 상당히 어려운 공연이었기 때문에-어떤 말로 의미를 전달해야 좋을지 어려워, 그들이 실제 걸은 만큼의 무게를 헤아려보고자 신중히 기억을 더듬었다. 워킹 홀리데이란 무슨 의미를 담은 연극인지, 극을 통해 전하려던 것은 무엇인지-많은 은유와 묘사로 얽힌 그들의 이야기가 관객들에게 어떻게 와 닿았는지 하나씩 정리해보았다.

 
 
Synopsis.


<워킹 홀리데이>에서는 어느 순간 무감각한 존재가 되어버린 ‘땅’을 인간의 본질적인 신체 활동인 ‘걷기’를 통해 읽는다. DMZ(Demilitarized Zone) 일대를 기준으로 다양한 장소를 직접 걸으며 리서치를 진행했다. 이 과정을 바탕으로 공간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돌이켜보며,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수많은 경계들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무대 위 배우들은 직접 걸었던 땅과 연결되어 있던 몸을 되돌아보며 그곳에서의 감각을 떠올린다.

-프로그램 소개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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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 1. DMZ를 걸어본 적이 있는가


불 꺼진 무대 위 영상이 보인다. DMZ 근처 평화누리길을 걸으며 소감을 전하는 배우들-
 
영상이 꺼지고 배우들은 무대 위에서 걸음을 계속한다. 걸으며 그 때의 기분과 경험을 동작과 대사로 전한다. 그 경험은 매우 산발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비무장지대 DMZ라는 공통 공간. 분단의 결과로 생긴 그곳을 여섯 배우가 걸으며 겪은 에피소드와 경험에서 비롯된 과거의 기억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새소리가 들려요. 가끔 총 소리, 포탄 소리도 들리구요. 처음에는 놀랐는데, 이제 그냥 자연스러운 것 같아요. 들릴 때마다 여기가 화천이었지 싶어요.”
 
배우들의 소감은 다른 듯 비슷하다. DMZ를 걷기 전까지의 일상에서는 분단국가임을 잘 느끼지 못했다는 것. 그들은 다른 환경과 조금 다른 군사분계선 근처의 마을을 걸으면서야 비로소 북한의 존재를 실감한다. 가끔 들려오는 포탄과 총 소리, 드문드문 마주치는 군인들이 이곳이 분단된 땅임을 느끼게 한다. 그곳을 살지 않고서야 DMZ를 걸어본 이가 많지 않을 것이지만 극을 통해 관객들은 그곳을 걸어보았다. 마치 그곳을 걷고 있는 듯한 배우들의 생생한 경험이 나의 경험이 되어 경계를 통해 경계를 허무는 아이러니한 경험-그렇게 나는 DMZ를 걸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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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 2. 분단을 걸어본 적이 있는가


DMZ 근처의 평화누리길을 배우들은 실제로 걸었다. 파주부터 고성까지 3번에 걸친 여정을 함께하며 멀게만 느껴지던 그곳을 직접 마주했다. 경험은 DMZ라는 물리적 공간에서 분단이라는 현실로 확장되었다. 우리가 분단을 얼마나 잊고 살았는지 끊임없이 질문하면서도, 조용하고 담담하게 감각을 전달했다. 이 극의 모든 내용이 단적으로 모두 분단에 관한 것은 아니었지만, ‘경계를 걸어보자’라는 시도에서 극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떠올리면 그 경계가 의미하는 바는 분단에 가장 많이 닿아있음을 확인하며 나는 분단을 느끼고 또 느꼈다.
 
우리는 전쟁을 겪은 세대가 아님에도 분단이 지속되는 역사 속에 살고 있다. 때로 이 분단의 땅은 일상에 묻히고, 북한은 저 멀리서 때마다 울려오는 종소리와 같이 메아리나 허상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러면 나는 어릴 때 이 땅의 남쪽 끝에서 살며 문득 들었던 의문-그곳이 정말 존재할까, 뉴스에서 말하는 전쟁 위험이 사실은 다 소설이 아닐까라는 의심을 조심스레 꺼내보곤 했다. 재현된 이미지를 넘어 마주할 자신이 없어서, 그것이 착시가 일어나 번진 의심이라는 것을 애써 외면하면서.
 
그렇게 분단은 지워지고 지워졌다. 남한보다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쓰며 사람들은 점차 분단을 잊어갔다. 불안이 덜어질 만한 상황적 변화가 전혀 일어나지 않았지만 분단이 내면화된 사람들의 머릿속에 북한은 이미지로 남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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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1. 왜 ‘걷기’여야 하는가


위의 ‘경계 넘기’는 극에서 걷는 행위로 표현된다.
 
걷다 [걷ː따]
1. 다리를 움직여 바닥에서 발을 번갈아 떼어 옮기다.
2. 어떤 곳을 다리를 번갈아 움직여 위치를 옮기다.
3.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다.
 
[출처│표준국어대사전]
 

걷기는 발을 떼어 다른 곳으로 옮기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행위이다. 사람들은 방향을 정해놓고 걷기도 하고, 방향을 정하지 않고 걷다가 걸음이 방향을 만들기도 한다. 극이 만들어진 과정과 메시지는 후자에 더 가깝다. 방향을 명시하고 여기를 향해 걸어야 합니다-와 같은 메시지는 어디에도 없다. 관객이 극을 통해 걷기를 시작할 것이라면 그것은 새로운 방향을 만들지도 모른다.
 
어떠한 곳으로든 우리는 걸으며 방향을 감각한다. 어디론가 걸어가다 경계를 마주하는 지점에서 극은 당신이 잘 걷고 있는지 다시 한번 질문을 던진다. 길을 걸어오는 동안 발이 땅에 닿는 감각을 제대로 느꼈는지, 당신이 내딛을 앞으로의 걸음에 자신이 있는지.

 
 
질문 2. 분단 말고 무엇이 더 있는가


배우와 연출진은 앞으로 계속 걸어갔다. 경계를 온전히 걸어서 다 넘어가보자는 확실한 목표가 애초에 존재했기에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다 그들은 분단 외에 또다른 무언가를 마주했다. 분단은 전쟁에서 파생되었다는 사실을 마주하고 전쟁의 본질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전쟁은 많은 경계를 낳았다. 전쟁의 폭력성. 사람들의 무의식에 존재하는 반감과 불안감에서 비롯된 인간 간의 경계. 남한 속의 분열과 남북한의 경계. 이 경계는 군대, 가정, 미디어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지만 감각을 내면화해버린 사람들은 좀처럼 현실을 마주하기 어려워한다. 그들에게는 이제, 일상의 많은 경계 앞에 마주서서 굳었던 감각을 섬세하게 느껴보고 안과 밖의 차이를 느끼는 경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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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nale. Walking Holiday


“걷는 시간들이 휴일 같았어요. 또, 휴일(Holiday)은 영적인(Holy) 의미도 갖고 있는데 저는 이 영성이 경계를 넘어 극 전체와 관객들에게 닿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제목이 Walking holiday가 된 것이죠.”

-Guest Visit, 연출진/드라마 터그의 답변 中-
 
직접 걸으며 발로 느껴본 땅의 영성이 제목의 의미처럼 관객에게 잘 전달되었을까. 나는 이 질문에 긍정하고 싶다. 경계를 마주하고 허무는 것에 대해 필요성을 절감했고 그것이 걸음에서 시작된다는 것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전쟁 불안이 뉴스에서 심심치 않게 이슈로 등장하고 북한이 멀어져가는 동안 우리는 걸어가야 한다. 두 눈과 귀로 열심히 사실을 좇아 경계 넘기를 다양하게 시도해보아야 한다.

그 출발점에 <워킹 홀리데이>가 섰다-그리고 담담하게 전한다.

“비로소 분단을 걷는 경험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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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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