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사.인 4] FEATURE. 인디뮤지션의 책방 ④ - '익숙한 새벽 세시', 오지은

그녀의 우울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유
글 입력 2017.11.04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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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사.인 4 FEATURE
인디뮤지션의 책방
 
- ④ ‘익숙한 새벽 세시’, 오지은
 

오히려 쥐죽은 듯 조용한 고요 속에서는 쉽게 잠이 들지 못하는 요즘입니다. 해야 할 일도 하루의 끝까지 미뤘다가 겨우겨우 해내고, 이렇다 하게 힘을 쏟고 있는 일이 마땅치 않아서인지 잠이 잘 오지도 않더라고요. ‘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는 말처럼, 잠들기 전이라도 머리를 비워두고 싶은데, 어쩐지 ‘고민하지 말자’는 생각이 더 많은 생각을 낳는 것 같습니다. 공허한 적막감이 마음 편한 친구가 되어주는 순간. 그래서 새벽 세 시는 저에게도 익숙한 시간입니다.
 
통학러였던 저는, 학교 수업이 끝나고 버스 시간까지 공강이 생기면 늘 도서관으로 향했습니다. 도서관 특유의 냄새와 익숙한 풍경이 좋았거든요. 시험기간 때면 늘 벼락치기를 했었다는 점을 미루어볼 때, 공부와는 별개로 그저 그 공간을 좋아했던 것 같아요(!) 만약 도서관 컴퓨터 이용자 기록이라는 게 있다면, 아마 저는 꽤 상위권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도서관에서 책을 고를 때면 의아하게도 매번 눈에 들어오던 책이 바로 <익숙한 새벽 세시>였습니다. 까만 표지에 덩그러니 하얀 글씨로 쓰인 제목은 왜인지 어김없이 눈에 밟혔어요. 책 제목이 그녀의 음악 중에서 가장 좋아하던 곡의 제목이기도 했고, 그러다보니 은연중에 그녀가 써내려간 글들이 궁금해졌던 것 같아요. 꽤 자연스러운 과정이었습니다.
 
<인디뮤지션의 책방> 마지막 이야기. 오지은의 에세이, <익숙한 새벽 세시>와 함께합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 수록되어 있었지만,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현실적인 공감을 많이 느낄 수 있던 책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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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하루를 여는 순간이겠지만, 사실 저에게 ‘새벽’은 하나의 핑계와도 같습니다. ‘새로운 시작’으로 받아들이기에 눅눅하기만 한 제 방의 공기는 변변치 않은 생각들까지 떠올리게 만들거든요. 그럴 때면 누군가가 미워지기도 하고, 제가 부끄러워졌다가, 문득 일어나지도 않은 까마득한 일들이 두려워집니다. ‘새벽감성’이라는 말이 생겨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겠지요. 짐작해보면, 새벽은 많은 이들에게 좋은 빌미가 되어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오지은의 에세이는 삶의 모든 조각들이 하나씩 ‘죽어가는 것’처럼 느껴져 결혼 한 달 만에 혼자 교토로 떠났다는 말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홋카이도․ 삿포로․ 오오누마 등 여러 곳을 여행 다니며 느꼈던 일상과 함께 생일날 홀로 떠난 강원도 여행, 템플스테이, 정신과 진료를 받았던 기록까지-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어떤 생각이 떠오를 때 써놓은 조각글을 엮어놓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익숙한 새벽 세시>는 다른 에세이에 비해 지극히 현실적입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말에 대해, 저자는 실패했을 때는 ‘가능성은 있었는데 결국 모자랐던 네 책임’이라는 뜻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또, ‘예쁜 비눗방울을 가지는 것은 결국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비눗방울을 불어야하는 일’이라며 꿈을 이루는 것은 어쩌면 꿈을 계속 만들어 가야하는 일이라고도 이야기합니다. 대부분 뮤지션의 에세이가 그렇듯, 이 책도 마찬가지로 그녀의 음악과 많이 닮아있습니다. 밝음보다는 흐림에, 봄보다는 겨울에 가까운 느낌이었다고 할까요.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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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런 무거운 이야기들이 오히려 저를 안도하게 만들었습니다. ‘다 잘 될 거야, 힘내.’라는 속 빈 말보다는 ‘나도 그래.’ 하는 동조가 더 큰 위로가 될 때가 있거든요. 고등학생 때 ‘성인이 된 나’는 당연히 훨씬 성장해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지금도 그 방법을 전혀 터득하지 못했고, 대학교 4학년쯤이면 또렷하게 보일 줄 알았던 길은 사실 한 발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천진난만하게 떠오른 풍선이 언젠가는 바람이 빠지고 마는 것처럼, 대부분의 사람도 이런 방황과 고민을 경험했겠구나, 싶어서 묘한 위로가 되었습니다.
 
또한 책을 읽으면서,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중 하나는 ‘자신에게 후회를 남기지 말라’는 말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회색빛 이야기 안에서도 피식 웃음이 새어나오는 부분이 있었고, 동시에 독자에게 건네는 자극과 응원의 메시지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 사방이 함정이다. 아무도 완벽한 사람은 없는데도, 허상의 완벽한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며 픽픽 쓰러져 간다.
 
- 예전에 있었던 일들, 그래 그건 어쩔 수 없다. 다른 인생을 부러워하는 것도 의미없다. 그 인생을 살아보지 않았으니까. 정말 어떤지도 모르면서 뭘 부러워하겠는가. 원하지 않았지만 겪게 된 것들, 다행히 결과물로 남길 수 있고 남들에게 쓰임새까지 있으니 바랄 것이 없다. 나의 모자란 부분은, 그냥 나의 모자란 부분이다. 어쩔 수 없이 씌워진 저주라고 징징거리는 것도 이제는 그만할 때가 되었다. 나는 가끔은 장점도 있고, 가끔은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는, 실수도 하는 모자란 사람, 남들과 같은 그런 사람이다.

- 도달할 수 있는 곳이별 볼 일 없는 곳이라도갈 수 있는 곳이 아직 남아 있다면가야지. 그리고 불러야지. 노래를.
 
책을 읽다보니 그 책을 읽고 있는 평범한 사람에 점차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엉성하고 모자라 보이는 저를 굉장히 미워하던 편이었습니다. 거울로 구멍 송송 뚫린 제 모습을 마주할 때마다 견디기 힘들었고, 타인과 비교하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생각하면서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릴 때도 많았어요. 물론 이런 아픈 생각들이 책 한권으로 쉽게 치료되지는 않겠지만, ‘너의 망상과 달리 상대는 별 생각이 없다’는 말이 참 고마웠어요. 기대를 크게 높이지는 말되 스스로를 무시해서는 안되고, 발전할 줄은 알되 그 과정에서 자책하지는 말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새벽’의 사전적 의미는 ‘먼동이 트려 할 무렵’입니다. 칠흑같은 어둠이 깊게 내려앉고 있지만, 사실은 날이 밝아오기 전의 바로 전 단계라는 뜻인데요. 잠시 나쁜 생각에 빠지더라도 자신의 우울까지 사랑할 수 있는, 하지만 그 감정에 너무 깊이 휘둘리지는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멀리서 찾을 게 아니라 물론 저부터도요!
 
자칫 우울한 새벽에 읽었다가는 더 많은 고민을 안고 잠들게 할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새벽에 읽으면 더더욱 좋은 책임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일상 속 그녀의 감상과 사색을 듣고 싶은 분들께 추천 드리고 싶습니다.
 
<인디뮤지션의 책방>이라는 주제로 피처 기사를 쓰면서 저 또한 많은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몰랐던 책을 알게 되고, 읽었던 책도 다시 살펴보면서 기존에는 느끼지 못했던 감상을 선물 받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저의 개인적인 도서 리뷰가, 많은 분들에게 아티스트들의 또 다른 활동을 전해드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저는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아요:) 다음 기획 기사는 더욱 알찬 콘텐츠로 여러분을 찾아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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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예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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